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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누범실라 Aug 17. 2023

첫번째 이야기. 작가가 되기 위하여 사직서를 던졌다.

18살 꿈 많은 시절에 꾸던 꿈을 이제는 이루어보려고 한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작가였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경찰이었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소방관이었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자동차정비사였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카레이서였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간호사였다.

고등학생 때 나의 꿈은 다시 작가였다.


처음 꿈이 작가였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방황 속에서 다시 찾은 꿈이 작가였다.

수많은 꿈을 꾸었지만 나보다 더 우유부단하던 엄마는 글쟁이는 굶어 죽는다며 안된다. 경찰은 언제 칼 맞아 죽을지 몰라서 안된다. 소방관은 밤낮없이 일하고 사람 죽어나가는 거 봐서 안된다. 자동차정비사는 사람 개처럼 대하고 돈도 안 돼서 안된다. 카레이서는 뭐냐? 누가 알아주냐고 차에 갇혀 폭발해서 죽고 싶은 마음 없으면 말 같은 소리 하라며 안된다 하셨고 간호사는 의사 따까리라며 대우도 못 받는다 하시며 안된다 하셨다.


안 되는 이유는 넘치고 넘치는데 된다 하는 이유는 하나도 없으셨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35살인 지금 다시 작가가 되기 위해 잘 다니던 직장 때리치고 뛰쳐나오니 이제야 그때 경찰 시킬 껄, 소방관 시킬 껄, 간호사 시킬 껄 이라며 껄껄 타령 중이시다. 부모말만 듣고 그때는 부모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줄 알고 모든 걸 다 믿고 따른 나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어느 것 하나 책임져줄 수도 없고 지난 선택을 후회만 할 거라면 자식의 앞길을 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식의 인생은 자식 본인 스스로의 것이지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나의 잘못도 있지만 그렇게 위축하게 만들고 소심하게 만든 것은 부모의 잘못이니까.


나는 89년생 뱀띠이다.

80년대 마지막 시대에 태어났다. 솔직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내일 당장 먹을 것, 입을 것 먹고사는 걱정에 난 어떻게 자랐는지 기억도 안 나고 뭐가 유명했었고 나는 Z세대인지 X세대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이렇게 자라온 배경이 모든 꿈을 포기하더라도 어떻게든 대학을 가서 집을 나가고 이 촌구석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릴 때는 왕따를 다했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술만 먹으면 우리들을 재우지도 않고 밤새 술주정을 하며 라디어도 아니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들들 볶기 바쁘셨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손지검도 발길짓도 물건을 던지는 것도 망설이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나와 4살 터울 친오빠는 그런 집에서 죽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우리는 보호받지 못하고 엄마의 사랑만 눈칫밥 먹듯 겨우 받아먹으며 죽지 않기 위해 버텼다.

덕분에 오빠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지금 아빠는 쳐다도 안 보고 연락도 자기 꼴리는 대로 받아주지 먼저 하는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이런 집구석에서 꿈을 꾼 것만으로도 황송할 정도였다.

친오빠는 꿈이란 게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돈을 벌고 빨리 이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이었으니까..

아들이라는 이유로 더 사랑을 받아야 하는 집안의 가장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더 많이 맞고 더 많은 욕을 먹고 더 많은 괴롭힘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들의 유년기는 탈출에만 몰입되어 꿈을 꾸지 못하고 시도도 못하고 흘려보냈다.


그래서 이제 이 나이 먹고서야 꿈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모아둔 돈 1000만 원, 보증금 100에 월세 18만 원짜리 시골 아파트, 월 40만 원 할부 1년 6개월 남은 중고자동차, 월 6만 원 내년에 10월에 끝나는 학자금대출

이룬 것은 없다시피 하고 가진 것은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일 정도로 적지만 빚이 있지 않은 게 어디인가? 이 정도면 나름 부모가 만들어준 빚 다 갚고 나름 성공했다 생각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누리는 수많은 권리와 혜택 그리고 사랑을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불만인 적은 없다. 그 아이는 그 아이고 나는 나니까?

왕따도 당하고 가정폭력도 당했지만 이게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아빠를 이길 수 있으니까! 지금은 누구도 날 괴롭힐 수 없으니까!


살아온 시간을 계속 돌아보고 후회하고 원망하고 아직도 삶의 일부로 여긴다는 어항에 갇힌 금붕어나 다름없을 것이다.

태어난 건 좁디좁은 어항 속이지만 결국 어항은 깨졌고 운 좋게 큰 호수에 떨어졌다.

이제 더 넓은 곳을 헤엄칠 수 있고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브런치에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 꿈꾸지 못한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를 글로 쓰고 싶었는데 여러 개를 저장하고 브런치를 둘러보니 소설이 없다.. 이건 계획착오였다.

왜 소설이 없지? 분명 옛날에는 본 거 같은데? 라며 내가 본 것 같은 글을 찾아보니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 같은 것들이었다.

뭐 제대로 문학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으니 이게 시인지 소설인지 뭔지 구별을 못할 수밖에 지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자신은 없다.

난 1000만 원으로 월 120만 원 가까이 되는 공과금을 내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기에 그런 곳에 돈을 쓸 여유가 없다.

그냥 이렇게 하면서 알아가면 될 거 같았다.

적어 놓은 소설들을 다른 웹소설 연재하는 곳을 찾아 다 옮겼다.

그리고 며칠을 생각했다.. 소설도 쓰지 못하는 브런치에서 난 뭐가 될 수 있을까?

옛날에 쉬는 시간이면 짬을 내서 브런치에 올라온 짧은 글들을 읽으며 재미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사람의 이야기 나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결혼이야기, 이혼이야기, 연애이야기 수많은 이야기들은 나의 휴식시간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기에

나도 이곳에서 글을 쓰고 누군가의 빛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서 어떤 장르던 도전을 할 것이고 무조건 성공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작가지망생이 된 지금 나를 이곳에 한번 적어 내려가 보려고 한다.

단 한 번도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성적은 뒤에서 1,2등을 다툴정도로 뇌가 깨끗한 사람이지만

결국 독자들에게 나의 진심이 전달되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살아온 시대가 살아온 길이 굴곡지고 험난해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도 쓰고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것 또한 작가가 될 수도 있는 작가지망생의 컬러라 생각해 주기를 바라며


35년 동안 혼자서 상상하고 꿈꾸고 갈망하던 작가의 길로 이제 들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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