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오래전부터 사람을 가르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것이 시험이다. 시험은 학교에서만 치는 것이 아니다. 채용에서도, 승진에서도, 심지어 사람의 신뢰를 얻는 일에서도 시험은 있다. 이름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시험은 결과로 사람을 줄 세운다. 점수와 등수는 네 존재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것으로 네 가치를 매긴다. 이 불편한 사실을 부정해도, 시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험은 제도 속에 있고, 제도는 삶의 뼈대다. 시험은 너를 평가하는 공식 문서이며, 그 문서로 평가한다. 문서를 근거로 너를 부르고, 너를 뽑고, 너를 거른다. 시험은 잔인하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이 만든 공식 언어다. 세상이 만든 언어를 모르면, 세상과 대화할 수 없다.
시험의 공정성을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피평가자인 너에게 그 공정성 논쟁은 무의미하다. 시험이 공정하지 않다고 해도, 시험은 그대로 치러진다. 불공정하다고 시험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탈락시키는 일이다. 제도는 네 항변보다 크고, 오래 지속된다. 시험의 규칙이 불합리해 보여도, 규칙은 당분간 바뀌지 않는다. 너는 그 규칙 속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점수는 그 제도의 문을 여는 열쇠다. 너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문 밖에서 소리쳐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세상이 만든 문 안으로 들어가서야, 너는 문을 고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문을 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시험은 그 문이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세상의 언어를 잘 구사한다는 뜻이다. 그 언어를 먼저 익혀야 한다.
시험에 순응하는 것은 네 영혼을 파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앞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네가 네 꿈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네 꿈을 지키는 방법이다. 세상의 판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판 위에 올라서야 한다. 판 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판을 움직일 힘이 없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은 그 판 위로 올라가는 티켓을 얻는 일이다. 순응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의 첫 수다. 네가 지금 시험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은, 언젠가 시험의 규칙을 새로 쓰기 위해서다. 순응하지 않고 부딪히는 것은 멋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싸움은 네가 힘을 얻기 전에 끝난다. 힘을 얻기 전의 패배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네가 시험에서 이기면, 그 다음에는 시험을 바꿀 수 있다. 시험을 바꾸려면 네 말에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은 성과에서 나온다. 성과는 점수와 기록에서 시작된다. 기록이 쌓이면, 사람들은 네 말을 듣는다. 네 말이 제도를 움직인다. 그때 가서야 네가 원하는 시험을 만들 수 있다. 네가 후배들에게 더 나은 제도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겨야 한다. 시험에서 이기지 못하면,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패배자의 불만보다 승자의 제안을 더 오래 듣는다. 그러니 지금은 잘 봐라. 시험을 잘 봐라. 세상이 만든 틀 안에서 먼저 이겨라. 그 다음, 네가 그 틀을 부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