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암스테르담 생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출국 전에는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막연한 설렘과 두근거림이 컸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생활의 작은 부분들이 차곡차곡 새로운 과제가 되어 쌓여갔다. 2주간의 기숙사 적응기를 끝내자마자 본격적으로 학교가 시작되었고, 이제는 통학이 새로운 일상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학교와 기숙사 사이의 거리는 약 4킬로미터. 한국의 감각으로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금방일 거리지만, 암스테르담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트램을 타자니 애매하고, 기차를 타자니 더 애매하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였다. 걸어서 다니는 것. 왕복 8킬로미터, 시간을 따지면 하루에 두 시간 가까이를 길 위에서 보내야 한다.
처음 며칠은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다고 한다. 낯선 거리를 걸으며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도시의 냄새를 익히는 것은 새로운 나라에 온 유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다리에 피로가 몰려왔다. 수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과제와 읽을 거리도 늘어났다. 하루의 절반은 책과 씨름해야 하는데, 체력은 이미 통학길에서 소모되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배고프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첫째의 말투에서, 나는 그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농담 삼아 “이러다 살 빠지겠다”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돌아온 반응은 의외였다. “아니야, 배고프니까 자꾸 단 것만 먹게 돼. 이러다 살 찔 수도 있어.” 피곤한 몸이 당을 원한다는, 아주 솔직한 고백이었다.
사실 첫째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제일 먼저 한 고민도 바로 이 통학 문제였다. 답은 명확했다. 자전거. 암스테르담은 자전거의 도시다. 거리마다 자전거 도로가 나 있고, 주차장보다 자전거 거치대가 더 눈에 띈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 모두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이동한다. 기숙사와 학교 사이 거리라면 자전거로는 불과 십여 분. 분명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우리는 도착 직후부터 자전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암스테르담의 자전거들은 모두 크기가 컸다. 성인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첫째가 페달을 제대로 밟기조차 어려운 것이 많았다. 시트 조절을 해도 한계가 있었고, 심지어 둘째가 타던 자전거를 가져다 시험 삼아 올라가 봤지만 역시나 페달질이 힘들 정도였다.
중고 자전거와 둘째의 자전거를 모두 포기하고 사이즈에 맞는 자전거를 새로 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새로운 벽이 나타났다. 가격.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는 생활 필수품이다 보니 선택의 폭은 넓었지만, 동시에 ‘좋은 자전거’는 한국보다 훨씬 비쌌다. 4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표를 보며, 우리는 네덜란드 물가의 차가운 현실을 다시금 체감해야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자전거 도둑. 암스테르담은 세계적으로 자전거 도난이 잦은 도시 중 하나다. 첫째가 같은 과에서 만난 네덜란드 친구는 진지하게 조언했다고 한다. “새 자전거는 웬만하면 타지 마. 어차피 몇 달 못 가서 없어질걸.” 학생들 사이에서는 ‘첫 자전거는 반드시 잃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회자된다고도 했다.
어제도 가족들이 온라인으로 모여 네덜란드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자전거들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가격, 크기, 배송, 잠금장치까지 모두 고민했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은 모델은 비싸고, 가격이 저렴한 건 사이즈가 안 맞거나 품질이 불안했다. 결국 시간만 흘렀다.
그 사이 첫째는 여전히 매일 아침 긴 거리를 걸어 학교에 다닌다. 걷는 길에는 운하와 벽돌 건물이 이어지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모습을 보며 첫째가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이 간다. ‘저 자전거가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단순한 바람일 수도 있고, 혹은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자연스럽게 도시와 어울리겠지’ 하는 다짐일 수도 있다.
다음 주에는 비 소식도 있다고 한다. 비가 잦은 나라답게, 본격적인 가을이 오면 하루 걸러 하루는 비가 내릴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두 시간씩 걸어 다니는 게 쉽지 않을 터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젖은 신발로 강의실에 들어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부모로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새 자전거를 사자니 가격과 도난이 걱정되고, 중고를 사자니 크기와 안전이 문제다. 하지만 어쩌면 이 또한 적응의 한 과정일 것이다. 불편함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균형을 찾아가고, 시행착오 끝에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유학 생활의 진짜 시작일지도 모른다.
첫째의 암스테르담 적응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마 한동안은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학교에 도착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 혹은 그 이상의 또 다른 난관을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차곡차곡 겪어내는 동안, 첫째는 어느새 이 도시의 풍경과 닮아갈 것이다. 걷는 발걸음이든, 자전거 페달이든, 그것은 결국 자신만의 속도로 맞춰가는 삶의 리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