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떠났다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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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떠났다.



꿈을 찾아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공항의 유리창에 비친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고, 그 눈빛에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아이가 떠난 자리는 묘하게 텅 비어 있었다. 떠나는 이는 앞을 향하지만, 남은 이는 그 자리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째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 년 먼저 그 길을 걸어간, 바다 건너의 낯선 땅에서 단단해져 돌아온 녀석이. 첫째는 둘째와 달리 걱정이 많다. 무엇 하나를 결정할 때마다, 망설임이 길고, 머뭇거림이 짙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옷을 고를 때도, 학용품을 고를 때도, 늘 선택은 힘겨운 과제였다. 그래서 손이 더 많이 갔다. 그 손길은 번거롭기도 했으나, 그만큼 애틋했다. 첫째는 언제나 보호가 필요한 아이였다. 그러나 공항 게이트를 지나 발길을 돌린 순간부터, 더는 그늘이 되어줄 부모가 곁에 없는 세상에 스스로 맞서야 한다. 그 사실이 아버지의 가슴을 조이게 했다.



어제도 통화를 했다. 목소리는 평정하려 애쓰는 듯 들렸으나, 말끝마다 불안이 묻어났다. 기숙사는 괜찮은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작은 물음 하나하나에 안도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둘째는 전화를 받으며 능청을 부렸다. “내가 먼저 다 겪어봤지. 여기는 이렇게 해야 돼. 모르면 나한테 물어봐.” 그 말투에는 ‘먼저 경험한 자’의 거들먹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첫째를 향한 다정한 위로라는 것을. 자신이 겪은 불안과 외로움을, 첫째가 그대로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숨어 있다.



지금 한국은 늦더위가 한창이다. 햇볕은 여전히 매섭고, 아스팔트는 뜨겁다. 그러나 그곳은 섭씨 22도라고 한다. 첫째는 춥다 했다. 낯선 하늘과 낯선 바람 속에서 아이는 홀로 서 있다. 멀어진 거리만큼, 느껴지는 온도차는 단순한 날씨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마음속 불안이며, 아버지의 마음속 공허다.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의 불안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둘째가 그랬다. 작년에도 같은 길목에서 흔들렸고, 같은 하늘 아래서 서툴게 버텼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둘째는 단단하다. 그는 이미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집을 구하고, 장을 보고, 과제를 해내고, 외로움에 익숙해졌다. 그는 낯선 나라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제는, 같은 길을 걷는 첫째의 어설픔을 웃으며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안다. 첫째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지금의 떨림은 내일의 의젓함이 된다. 불안은 단련의 불꽃이고, 흔들림은 단단함의 뿌리다. 그 길의 끝에는 성숙이 기다리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변화를 가장 늦게 믿지만, 결국 가장 크게 확인한다. 나는 이미 둘째를 통해 보았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첫째 역시 머지않아, 같은 자리에서 웃을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난다. 누구는 먼저 단단해지고, 누구는 조금 늦게 어른이 된다. 그러나 결국은 다 성장한다. 첫째가 암스테르담에서 마주할 두려움은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다. 지금은 약해 보이는 그 아이가, 언젠가는 동생을 다독이는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다린다. 멀리 떨어진 땅에서도, 바람과 온도가 달라도, 그 기다림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는 흔들리며 자라고, 나는 그 흔들림을 지켜보며 나이 든다. 그것이 부모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