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무사히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기숙사 가는 길이에요.”
짧은 한 문장과 함께 도착한 사진. 이른 아침의 유럽 풍경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기차 안은 텅 비다시피 했다. 사람 몇 명이 졸고 있고, 창밖으로는 흐릿한 안개가 운하 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 속에서 녀석은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작년 이맘때,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 얼굴은 없었다. 1년의 시간이 아이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다.
1학년을 마치고 여름 내내 한국에서 보내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더니, 어느새 다시 공항으로 향하게 되었다. 부모의 마음이란 늘 그렇다. 보낼 땐 마음이 무겁고, 막상 떠난 뒤엔 걱정보다 허전함이 먼저 밀려온다.
이번 항공편은 대한항공이 아니었다.
작년, 첫 유학길에 함께 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편도 150만 원, 왕복 300만 원이 넘는 항공권을 끊었다. 자리도 거의 남지 않아 비행기 맨 뒷자리, 소음이 가득한 그 구석에 겨우 앉아 14시간 넘게 날아갔다. 그때는 ‘그래도 처음 가는데 편해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돈을 내고 나니 후덜덜했다. 한 사람의 유학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 시험 같았다.
올해는 둘째가 스스로 항공편을 골랐다.
“아빠, 이번엔 남방항공이 훨씬 싸요.”
남방항공, 이름부터가 낯설었다.
하지만 왕복 80만 원. 대한항공의 3분의 1이었다. 그 가격이면 선택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아이도, 부모도 이제는 ‘효율적 유학’을 배워가고 있었다. 둘째는 실제로 타보니 기체 상태도 괜찮고, 기내식도 먹을 만했다고 했다. 서비스도 무난했고, 무엇보다 경유지에서의 대기시간이 길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역시 세상 일은 완벽하지 않다.
남방항공의 진짜 복병은 입국심사였다.
중국을 경유했으니, 입국장에 들어서면 이미 중국인들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둘째는 유학생 비자가 있으니 빨리 통과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EU 시민들만 빠르게 통과시키고, 비자 소지자도 일반 줄에 세웠다. 결국 또 기다림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중국인 승객들이 영어가 서툴다는 점이었다. 심사관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서류를 이리저리 꺼내느라 시간이 길어졌다. 한 사람당 5분 이상씩 걸리니, 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번 첫째가 같은 노선을 탔을 때는 입국심사만 2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그나마 낫다고 했다. 비자 확인만 하고 바로 통과되었다고. 그래도 본인은 억울해했다.
모든 절차를 마친 뒤, 드디어 둘째는 공항철도에 올랐다.
창밖 풍경이 익숙했는지, 피곤한 얼굴에도 여유가 비쳤다. 처음 암스테르담에 왔을 때의 어색한 눈빛은 사라지고, 이젠 자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사진 속 풍경은 그저 평범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안정’이라는 단어가 담겨 있었다.
이제 둘째는 ‘새로 오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다. 기숙사로 향하는 그 기차길은 작년과 같지만, 아이의 마음은 다르다. 이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도 알고, 역 근처 슈퍼가 어디 있는지도 안다. 세탁기 동전이 얼마인지, 어떤 자전거 도로가 막히는지도 안다. 작은 실수와 시행착오의 시간들을 지나, 이제는 ‘네덜란드의 생활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이국의 풍경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작년엔 그 사진을 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올해는 다르다.
“그래, 저 아이는 이제 잘 해낼 수 있다.”
그 믿음이 마음을 채웠다
.
아이를 떠나보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늘 복합적이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저리다.
내 품 안에 있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실감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떠남이 성장의 다른 이름임을 안다.
아이를 떠나보낸다는 건 결국 ‘신뢰를 배우는 일’이다.
그 아이가 스스로의 길을 잘 찾아가리라는 믿음, 그것이 부모의 마지막 교육이다.
이제 아이는 다시 네덜란드의 하늘 아래로 돌아갔다.
익숙한 운하와 자전거, 그리고 새로 바뀐 기숙사 방에서 또 다른 한 해를 시작할 것이다.
시험 준비로 바쁜 나날이겠지만, 그 속에서도 가끔 창밖을 바라보며 숨 고르는 여유를 잃지 않길 바란다.
기차 창문에 비친 아이의 옆모습, 새벽의 유럽 풍경,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질 두 번째 유학의 길.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그곳에 닿아 있다.
그래, 잘 도착했으니 그걸로 됐다.
이번 한 해도 성실하게, 그리고 무사히 보내길.
네 앞에 펼쳐질 암스테르담의 또 다른 계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