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2학년 시험을 치르기 위해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라는 말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유학 첫해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긴장과 설렘, 그리고 조금은 지친 표정. 그런데 시간이 휙 하고 지나가더니 어느새 다시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보낸 두세 달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참 다채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마치 정지해 있던 시계를 다시 돌리듯, 아이는 ‘한국의 시간’을 바쁘게 채워 넣었다. 그 시간들을 하나씩 돌아보면, 짧지만 밀도 있는 성장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꼽을 일은 운전면허 취득이다. 귀국하자마자 바로 학원에 등록시켰다. 나는 운전면허는 삶의 기본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수 있고, 자립의 상징이기도 하다. 둘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금세 이론시험과 기능시험을 통과하더니, 마침내 도로주행까지 한 번에 붙었다. 게다가 2종이 아닌 1종 면허였다. 운전면허증을 손에 쥔 날, 그 카드 한 장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통행의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 인생의 핸들을 잡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이었다.
두 번째는 라식 수술이었다. 안경을 벗고 싶다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했던 터라, 귀국하자마자 예약을 잡았다. 수술 후 첫 일주일은 쉽지 않았다. 눈이 시리고, 빛이 번져서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세상이 다시 선명해졌다고 했다. 안경 없이 외출하는 게 이렇게 자유로운 일인 줄 몰랐다며, 그날따라 오래 창밖을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마치 시야뿐 아니라 마음의 시야까지 넓어진 듯했다.
셋째로는 인턴과 각종 홍보활동이었다. 여름방학 기간 동안 둘째는 여러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과 학생 홍보단에 지원했다. 처음엔 일정이 빡빡해 보여 걱정도 되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더 단단해졌다. 사회의 공기를 조금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자신의 전공이 어떻게 세상과 연결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이 먹였다. 이건 집사람의 전적인 작품이다. 그동안 못 먹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 입에 맞는 것, 전부 차례로 해줬다. 김치찌개에서 불고기, 잡채, 고등어구이까지. 외식도 많이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살은 빠졌다. 아마도 마음이 편해져서일 것이다. 타지에서 긴장하며 살던 몸이 이완되자, 불필요한 것들이 자연스레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게 둘째는 다시 짐을 꾸렸다. 캐리어를 닫는 손끝에는 한층 여유가 묻어났다. 1년 전의 출국은 두려움과 설렘이 반반이었다면, 이번엔 훨씬 단단했다. 이미 한 번의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쳤고, 이젠 스스로의 리듬을 안다. 기숙사에 도착하면 해야 할 일들, 어디서 장을 보고 어떤 자전거를 타야 하는지, 어떤 마트의 물가가 저렴한지도 다 안다.
그녀는 이제 ‘초보 유학생’이 아니라, 자기 삶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이다.
비행기 출발 알림이 뜨고, 작은 실루엣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동시에 알았다. 이 아이는 잘 해낼 것이다. 첫 학년의 혼란과 두려움을 이미 통과했고, 이제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그녀의 두 번째 암스테르담 생활이 시작된다. 낯익은 거리와 익숙한 운하, 그리고 다시 맞이할 강의실과 친구들. 처음의 설렘 대신 차분한 결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시험 준비로 바쁜 나날이겠지만,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유를 찾길 바란다.
이국의 공기 속에서도 건강하길.
힘들 땐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길.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길.
아이의 유학이란 결국 부모의 또 다른 ‘이별 수업’인지도 모른다.
보내고, 기다리고, 또 보내는 일.
하지만 그 이별은 슬픔보다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그 아이의 소식을 기다린다.
암스테르담의 바람 속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그녀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