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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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사이언스 파크의 가을은 잿빛이었다. 나무들은 낙엽을 다 떨구고, 그 잔가지를 흔들며 바람을 맞았다. 그 사이로 녀석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바람이 코끝에 닿는지, 레인코트의 모자가 살짝 들썩였다. 첫째가 그 모습을 찍어 보냈다. 휴대폰 화면 속의 둘째는, 낯선 땅의 길 위에서 어느덧 그곳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녀석의 자전거는 이름이 있다. 로시난테. 작년 봄, 중고시장 골목 어귀에서 사 온 자전거였다. 녹이 조금 슬어 있었고, 브레이크가 뻑뻑했다. 하지만 가격이 싸고, 무엇보다 그 자전거의 묵직한 프레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둘째는 그것을 닦고, 페달을 바꾸고, 체인을 윤활유로 문질러 새것처럼 만들었다. 그때 나는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였다. 돈키호테의 말 이름이었다. 세상과 싸우려는 허약한 이상가의 친구, 그 말처럼.



4개월 동안 방치된 로시난테는 다시 녹이 슬었다. 타이어의 공기는 빠졌고, 체인에는 먼지가 붙었다. 둘째는 도착하자마자 타이어에 바람을 넣었다. 안장 높이를 조절하고, 녹슨 체인에 기름을 발랐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길 위로 나갔다. 낯선 땅에서의 첫날, 그 아이는 또다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는 암스테르담의 일상이다. 그곳에서는 차보다 자전거가 먼저 달리고, 신호보다 페달이 먼저 움직인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낸다. 둘째도 그 속도로 산다. 비가 와도 간다. 바람이 불어도 멈추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공부보다도 더 오래 남는 훈련일 것이다.



그 아이가 입은 레인코트는 약간 컸다. 팔은 접어야 했고, 통이 컸다. 그 옷은 암스테르담에서 산 것 중 가장 작은 사이즈였다고 했다. 그래도 컸다. 낯선 도시의 공기와 맞지 않는 옷의 크기처럼, 이방인의 삶에는 늘 조금의 헐거움이 있다. 그러나 그 헐거움이 자리를 잡을 때, 사람은 어른이 된다.



로시난테는 더 이상 낡은 자전거가 아니다. 그건 둘째의 발이 되어 도시를 건너는 수단이고, 혼자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가야 할 길이 있고, 그 길을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는 이제 그걸 안다. 길 위에서 균형을 잡는 법, 낙엽을 피하지 않고 밟고 가는 법,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바람을 맞는 법.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사람이 단단해진다.



그곳의 바람이 이곳까지 불어오는 듯했다. 세상에 부모로 산다는 건, 결국 멀리서 아이의 등을 바라보는 일이다.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그 등을 보며,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는 일이다. 아이의 삶은 자전거와 같다. 부모가 옆에서 잡아주던 손을 놓는 순간,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부모의 몫이다.



둘째는 아직 작다. 그러나 그 아이의 레인코트 자락엔 바람이 스며들고, 그 바람 속엔 세상의 냄새가 있다. 그 냄새를 견디며, 배우며, 조금씩 나아간다. 나는 그 아이가 로시난테와 함께 가을의 암스테르담을 달리는 모습을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녹슨 자전거를 다시 꺼내 닦고, 바람을 넣고, 또다시 타는 일. 비가 오면 코트를 여미고, 바람이 불면 페달을 더 세게 밟는 일. 그렇게 사람은 자기의 길을 만들어간다.



나는 멀리서 그를 바라볼 뿐이다. 언젠가 로시난테가 완전히 낡아 멈추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쯤이면 둘째는 이미 다른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세상이라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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