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일상과 감상을 기록해야겠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작가를 아버지로 둔 자의 숙명 같은 것이랄까요. 나름 재능이라면 재능인 것이 읽는 것을 좋아하고, 끄적거려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라 이런저런 핑계로 기록하지 않고 넘겨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남모를 상실감이 요즘 마음속에서 덩치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책을 낸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든 카테고리도 여럿 있습니다. 물론 다 기록하지 못한 것들을 모아놓은 카테고리지만요. 브런치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그날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도 주변인들을 향한 부치지 않을 편지라던지 시문집이라던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작은 도서관의 착공 계획 정도는 세워졌달까요.
그렇지만 이제 더 미루지 못할 때가 왔다고 여겨집니다. 켜켜이 쌓아 올린 아쉬움과 상실감이 나 혼자 조용히 간직할 수 있는 상념과 오래된 기억을 넘어 신체적 증상을 동반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낀 신체적 증상은 아주 오랫동안 '현대인의 것'으로 치부하며 넘겨온 것들이었습니다.
무력감과 우울감, 육아와 동반되는 자기 번뇌와 자기 증오감, 번아웃, 피로, 귀찮음... 어떤 감정은 그냥 내 성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까이, 그리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오는 날 작은 눈덩이를 만들고, 계속 굴려가며 커다란 눈사람의 머리와 몸통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내 안에 나타나는 증상들은 처음엔 작고 가벼워 모른 체 하기 수월했습니다. 손이나 발로 쉽게 부서뜨리거나 녹일 수 있는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가슴이 너무 답답해 숨쉬기조차 힘들어 돌아봤을 때는 이미 아주아주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 쉽게 녹지도 부서지지도 않은 채 무겁게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폭세틴과 스타브론의 복용법과 부작용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증상들이 단순히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맞벌이하며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그 와중에 취미 생활과 공부를 착실히 해 나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맞벌이하며 어린아이 둘 육아를 하고, 공부를 해 나간다'는 워딩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바빠져 한숨이 쉬어집니다. 그러니 그 와중에 기록할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던지 황소가 바늘구멍을 지나간다는 속담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도 주변의 아이를 키우는 동년배들을 보면 육아와 일 말고 다른 것은 엄두도 못 낸다는데 저는 공부도 하고 간간히 취미 생활도 하고 있으니 황소 뿔 정도는 바늘구멍에 욱여넣긴 했을까 자기 위안 삼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덩치 큰 눈사람에게 제압당하며 겨우 숨을 뱉어내던 어느 날, 갑자기 터진 눈물이 도무지 멈추질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고.. 요즘 좀 피곤해서 지쳤을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우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는 채로 잠들기 전까지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곤욕을 치렀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눈물이 계속 난다는 것이 아닌 왜 이렇게까지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내 행동의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돌아보지 않았길래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울고 있는가 하는 반성이었겠지요.
그래서 기록을 해야겠다고 더더욱 생각을 했나 봅니다. 뭐라도 써 내려갔었다면, 욕지거리라도 써 내려간 날이 쌓여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내 속내를 모르고 엄마 잃어버린 아이처럼 울고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프롤로그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쓴다는 것은 제가 눈사람에게 아직 완전히 지지는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나를 해치던 내가 나를 해치던 뭔 일이 나긴 나겠다 싶은 긴 두려움을 뭐라도 써보자는 행위로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은 단연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입니다.
그래서 이 프롤로그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눈사람에게 담요도 덮어보고 털모자도 씌어보고 목도리도 걸쳐보면서 다시 따수워 져야 하니까요. 그 덕에 저는 언뜻 보면 아주 괜찮습니다. 심지어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간간히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속내를 드러내 보려고 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결국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이유도 모른 채 서럽게 울지는 않게 하리라는 믿음으로 말이죠.
글은 종종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느끼는 다양한 신체적 증상 중 하나는 정신이 맑지 않고, 무언가 자주 까먹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야 할 말을 종종 구분하지 못하는 등의 산만함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은 담백하고 간결하고 깔끔한 맛이지만, 거기까지 욕심을 내다간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이렇게 시작합니다. (약간은 산만한)다양한 글을 읽는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좋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마음써 주시기만 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