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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론세스바예스

부자의 산티아고 순례길

by 생각은스파게티

다 함께 먹는 아침 식사를 기다리며 밖을 나가 보니 이미 걸음을 시작한 사람들이 보인다. 부엔 까미노라 인사하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커피를 국그릇에 받아 마신다고 한다. 그래, 모닝커피는 홀짝이기보다 들이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모님이 직접 만든 빵은 왠지 손길이 가지 않는다. 멋쩍으실 것 같아 관심을 보였더니 알코올과 건포도가 들어간 '잉글리시 푸딩'이라고 알려주셨다.


역시... '맛'의 나라 영국.

왼쪽에 있는 빵이 잉글리시 푸딩. 맛은 글쎄...

아빠의 계획에 따르면, 첫날에 넘을 피례녜 산맥은 초심자에게 너무 높은 난이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당일 목적지까지 가방을 보내주는 '동키 서비스'를 오늘만 이용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백팩을 맡기고 길을 나선다.

가방아 오후에 살아서 만나자




Saint-Jean-Pied-de-Port
Roncesvalles (Orreaga)

25.20km

드디어 출발! 부엔 까미노.

'좋은 순례길 되세요'라는 뜻이다.

우리의 여정도 순탄하길.


걷기 시작하자마자 아빠의 업무 전화가 왔다. 한국은 한참 일할 월요일 오후다. 일을 마치지 못하고 오니 두 자아가 충돌하는 기분이다.


나 역시 맘이 놓이질 않네. 나의 회사가 생애 처음으로 걱정되었다.

여러 동물들을 만나며 산책하듯 걸었다.


오늘 걷는 구간은 '나폴레옹 루트'라 불린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할 때 행군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여행이지만, 그 당시 병사들은 얼마나 걷기 싫었을까?

가방이 없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빠른데, 굳이 빠를 필요는 없지만 늦어서 좋을 것도 없지. 아직은 템포를 잘 모르겠다.


아빠는 벌써 좀 힘들어하시네… 큰일이다. 항상 나란히 걸을 수야 없지만, 얼추 속도를 맞추려고 한다.


오리손 Orrison


두어 시간 걸어서 오리손 도착.

마을인 줄 알았더니만 산중에 있는 휴게소구나!

어제 기차에서 만난 브리짓을 다시 만났다. 어제 쏟아진 소나기가 굉장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또 옆 사람과도 인사하게 되고. 괜히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한국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도 계셨다. 여든의 연세보다도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부터 목을 축이시는 맥주 한 잔이 더 놀라웠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오리손을 지나면 본격적인 피례녜 산맥의 등산이 시작된다. 그러나 날이 흐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게 느낌이 좋지 않다.

기타 아저씨가 연주를 들려주기로 약속했다

올라오는 길에 유독 기타를 매고 가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뮤지션이냐는 질문에 수줍게 미소 지으며 '배우는 중'이라고만 답했다.


나는 가방에 짐을 최소한으로 남기기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기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이 언제까지인지 모르겠다. 이번이 정상인가? 기대했다 실망하길 무한 반복. 마음 놓고 가다 보면 어련히 길이 있을까 싶은데도 자꾸 맘이 놓이질 않는구먼.


근데 나는 정말 여기에 왜 왔을까? 어차피 이렇게 힘든 날들이 계속될 뿐인데. 더 모르겠네.

어딘가 오란다가 생각나는…^^;

아빠의 생각은 유튜브대로 흘러간다. 툭하면 '유튜브에서 본 장면인데' 혹은 '유튜브에서 대단한 것처럼 소개하더니 별거 아니구나'라고 하신다.


물론 나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튜브와 같은 매체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영화의 다음 장면을 스포 당하는 느낌이다. 우리만의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몰입이 깨지는 순간들이었다.

이 분 쉬는 게 넘 편해 보여서 잠시 옆에 누워 있었다.
이것의 용도는 무얼까? 나는 화장실이라는 답을 찾았다.


오늘 최고로 가고 싶었던 푸드 트럭에 도착했다! 바나나가 어쩜 이렇게 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잠시 발을 말리며 기운을 끌어모은다.

어느덧 국경을 넘었다. 사실 국경을 넘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어느 순간부터 스페인이 되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에게 국경이란 의미는 매우 강렬한데 이들에게는 이렇게 흐릿한 개념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봉주르'라고 인사했는데, 이제부터는 '올라'라고 인사해 본다. 나무들도 스페인인 걸 아는지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빨간 막대기가 국경선

아빠에게 '철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걷다 보면 한참 뒤에 등장하게 되는 곳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서부터 돌멩이를 가져와 이곳에 놔둔다고 한다.


여기서 돌멩이는 각자가 지닌 죄악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여행 전부터 지니고 있던 죄악을 이 길에 내려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나는 집에서부터 돌멩이를 챙기지 못한 대신 순례길을 시작하는 오늘 돌멩이를 주웠다. 하나는 내 죄악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그것이다.

여보 내가 대신 죄악을 짊어지고 갈게

국경을 지나고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확실히 몸이 덜 힘드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오랜 길을 마치고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이다! 아빠가 공립 알베르게 예약을 해둔 덕에 엄청 수월하게 자리를 배정받았다.

리모델링을 했는지 시설이 좋았다.
추억(?)이 가득한 이층 침대...

보통 일행이 오면 같은 이층 침대를 통으로 배정해 준다. 대충 이 시스템을 보니 아빠와 같이 온 나는 앞으로 이층 침대에서 자게 되겠다는 걸 직감했다.


이층 침대를 올라가려다가 아빠한테 슬쩍 ‘일층에서 주무실 거죠?’ 라 물어봤다. 그러니까 정말 놀라시면서 되려 쏘아붙였다.


“당연하지! 여기서는 원래 연장자를 대우해 주는 문화가 있다고. 나이 든 사람은 일층에서 자야지.”


이미 이층 사다리를 잡으려고 뻗은 손을 내려놓았다. 흔히 연장자에게 더 편한 환경을 우대하곤 하지만, 그건 규칙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선의에서 우러나온 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일층에서 자는 걸 기대했다기보다 서로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말 한마디를 나누길 기대했던 건데. 일순간에 주워 담기 힘든 분위기가 됐다.


나도 못 참고 한마디를 보탰다.

"내가 본 유튜브는 그런 거 상관하지 말라고 하던데. 우리 정보가 달랐나 보네."


아빠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나 보다. 에둘러 다른 화제를 꺼내도 말씀이 없다.

이층 침대 사건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는 서둘러 샤워와 빨래를 마쳤다. 손빨래는 정말 오랜만에 하는데 굉장히 힘들다. 끝나고 빨간 조끼를 입은 봉사자분께서 탈수기는 돌려주시던데 ‘wow’가 절로 나왔다.

알베르게를 지키는 봉사자 분들

7시쯤 저녁을 먹으려는데 오전에 오리손에서 만났던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 오후 5시쯤이 되어 겨우 이곳에 도착했는데 숙소를 구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방이 없어서 노숙을 하시려다가 마지막으로 공립 알베르게에 부딪혀보러 가시는 길이었다. (물론 이미 공립은 만석이었다.)


저녁 예약 시간에 늦더라도 이분들을 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대로 따라가서 통역을 자처했다. 겨우 상황을 설명하니 봉사자 할아버지는 직접 알아보시겠다고 하고 나가보셨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다행히 주변 호텔에 방이 있다고 한다. 봉사자가 방을 구했다는 걸 알려드리니 거의 절을 하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정말 다행이다.


호텔에 가는 중에 봉사자분이 알려주신 성당 위치와 미사 시간을 통역해 드리니 이 노부부는 다시 감사의 혼절을^^; 작은 도움인데 이렇게나 좋아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여기에 오려고 5년이나 준비하셨다는데 예약을 딱 빼먹으셨다고. 모두가 첫날이니 잔 실수도 많겠지만, 이 여행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두 분이 단연코 1등이었다.

뒤늦게 간 저녁 식사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생선 친구

할아버지와 뒤늦은 통성명과 번호 교환도 하고 방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나를 두고 오늘의 천사라 부르시기까지 했다. 천사라니요 과분합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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