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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말 Dec 10. 2022

정리 감옥에서의 3박 4일

  최근에 엄마 집을 정리할 일이 있었다. 엄마가 몇 년 동안 사시던 집인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1년 넘게 비워져 있던 집이었다. 이렇게 공간을 묵히는 것은 경제적으로 낭비라 이참에 이곳에 있는 짐을 다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 엄마가 살고 계신 곳은 원룸이다. 엄마가 그곳에 필요한 물건들을 이미 많이 갖다 놓으셨고 지금까지 별 불편함 없이 살고 계셨기에 정리할 집에서는 별로 갖고 갈 물건이 없다고 하셨다. 그 말이 맞는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나와 동생은 3박 4일의 일정으로 정리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는 우리보다 하루 늦게 합류하기로 하셨고 우리가 먼저 가서 집 상태를 확인했다. 정리가 일찍 끝나면 남는 시간 동안 놀러도 나가고 외식도 하면서 조금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짐의 양을 가늠하고 나니 예정된 시간 안에 못 끝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면서 '어떡하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방 2개와 주방에 꽉꽉 채워져 있는 짐 을 나누거나 팔 것, 버릴 것, 남길 것으로 구분하고 남길 물건은 박스에 포장해야 했다. 그런데 처분해야 할 물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일단 당근 마켓 어플을 켜고 팔거나 나눔 할 물건들을 사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책상, 수납장, 의자, 책장, 책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들부터 올렸다. 거의 무료로 나눔 하거나 저렴하게 올렸기 때문에 거래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당근 마켓 알림이 수시로 울리는 가운데 다른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서 얼마나 끝도 없이 짐이 나오는지 물건이 계속 나가는데도 표시가 하나도 안 났다. 한참 치우다가 방을 둘러보면 치운만큼 짐이 저절로 불어나는 것인지 정리를 시작한 상태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 드디어 엄마가 도착했고 우리는 엄마에게 '이거 버려도 되지?'라고 수시로 확인하며 정리 속도를 높이려고 애썼다. 도대체 이걸 왜 모아놨는지 모르겠다 싶은 물건들이 나올 때마다 폭풍 잔소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도 자신이 모아놓은 물건들을 보시더니 '아이고 내가 미쳤네'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엄마도 몇 년 사이에 조금 달라지신듯했다. 예전과 달리 이젠 제법 쿨하게 물건들을 버리거나 팔라고 말씀하신다. 정말 다행이었다.


  뜻밖의 복병은 동생이었다. 정리하다 나온 물건들을 갖고 가겠다고 해놓고는  짐을 다시 엄마한테 맡기려 한다거나 (엄마는 원룸으로 가시는데도) 물건을 팔거나 처분하는 것을 가끔 반대했다. 아보카도 나무도 엄마가 싣고 가서 계속 키워야 한다고 주장해서 동생을 설득하느라 조금 힘이 들었다. 내가 싹을 틔우고 키우다가 엄마에게 맡긴 아보카도는 어느새 '나무' 되어 있었다. 베란다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이  방울씩 떨어지게 만든 엄마의 자동급수 시스템 덕분에 사람이 집에 없어도 혼자 무럭무럭 자랐다. 키는 2미터가 넘어 천장에 줄기가 닿을 정도가 되었고  부분도 한아름이 훨씬 넘었다. 겨울인데도 베란다에서 키워서 그런지 잎이 모두 푸르렀다. 그래서 처분하기가 정말 아까웠지만 결국은  키워줄 분께 보내기로 합의를 했다.


  나의 휴대폰에서는 당근 마켓 알림이 하루 종일 울렸다. 거래 약속이 계속 있었고 정리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밥은 거의 간식으로 때우거나 배달시켜 먹었다. 하루 종일 버리고 팔고 나누고 하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그리고 당근 마켓 알림 소리로 잠이 깼다. 당근 마켓의 하루 게시글 한도가 20개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3 4 동안 거래한 물건은 50개가 넘었고 나중에 확인하니 매너 온도가 10도나 올라 있었다.


  엄마 집에는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온 물건도 많았다. 엄마는 작은 가구나 쓸만한 물건들을 잘 가져오신다. 문제는 그런 물건들이 쌓이기만 하지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굳이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 쓰지 않더라도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야금야금 늘어난 물건들은 공간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다. 가져올 때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았더라도 버릴 때는 스티커를 붙여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공짜가 아닌 경우도 있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가 어려운 것이 엄마의 유전자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쓸만한 물건을 보면 곧잘 주워온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별로 안 하고 가져오다 보니 얼마 안 있어 다시 버려지는 일도 많았다.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엄마가 짐이 많은 데는 내 책임도 있었다. 내가 제주로 이사를 할 때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짐을 엄마한테 맡겼기 때문이다. 맡긴 물건들 중 필요한 것을 택배로 몇 번 받았음에도 아직 많은 물건이 남아있었다. 왜 자식들은 출가하면서도 부모의 집에 짐을 남겨두고 필요 없는 물건을 부모님께 자꾸 드리거나 맡길까?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나뿐만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집이 버리기는 아깝지만 별로 필요는 없는 물건들의 무덤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정체된 물건들은 그 자체로 미니멀 라이프에 큰 방해가 된다. 부모님께 내가 쓰던 것을 드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쓰지 않으니 부모님이라도 잘 써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나의 취향으로 고른 물건들은 결국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은 자식이 맡아달라니 거절하지 못하고 집에 쌓아두시기 마련이다. 어차피 공간만 차지하고 나중에 버려질 물건은 내 선에서 빨리 처리하는 것이 낫다. 앞으로는 내 물건 때문에 부모님의 생활에 제약이 생기지는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물건은 내가 책임지자!


  이제 정리가 거의 끝나간다. 마지막 날까지 당근 마켓 알림은 바쁘게 울렸다. 부엌살림은 자질구레한 것이 많아 아예 큰 통에 담아두고 자유롭게 나눔 하였다. 커다란 원목 책상도 우여곡절 끝에 겨우 주인을 찾아갔다. 이제 내가 그동안 맡긴 물건들을 택배로 부칠 준비를 했다. 다 꺼내놓고 보니 양이 상당했다. 그중에서도 필요 없는 것을 추려 내고 나니 박스 5개 분량이 나왔고 기타(악기)는 택배로 보낼 수가 없어 직접 가지고 와야 했다. 시외버스의 경우에는 화물 싣는 곳에 실었는데 비행기가 조금 걱정되었다. 수하물 맡길 때 악기라고 말씀드리니 일반 수하물 보내는 것처럼 보내면 낙하 구간이 있어 파손될 수도 있으니 탑승 전에 직원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항공사 직원분이 탑승 전에 게이트에서 바로 받아서 비행기에 실어 주시고 짐 찾을 때는 직접 기타를 들고 나와주셨다. 이런 서비스가 있는 줄 몰랐는데 너무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집에 돌아오는 , 3 4 동안   없이 일만 하고 놀지는 못했지만  일을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하고 개운했다. 짐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비워서 쓸데없는 월세가  이상 나가지 않게  , 엄마 집에 있던 나의 짐을  가져와서  이상 엄마의 공간을 점령하지 않게  , 짐을 치우면서 나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다짐도 굳어진 것, 이 세 가지로 노동의 가치는 충분히 있었던  같다. 이제 한 달 뒤 나의 이사(+미니멀 라이프)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성공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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