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의 전쟁은 시스템이었다

영웅이 아닌 시스템

by 이천우

유방의 전쟁은 시스템이었다


유방의 전략은 현대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책보다 현장, 이론보다 운영


우리는 종종 리더십을 ‘지식’이나 ‘지휘력’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유방의 사례는 이 통념을 깨뜨린다. 그는 교과서를 뒤적이기보다 현장을 살폈고, 이론을 따지기보다 운영을 실험했다. 그의 강점은 아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한 제국의 창업을 가능케 한 유방의 방식—즉, 작동하는 체계를 만드는 감각—을 현대의 조직 언어로 다시 풀어보려 한다.


사람·공급망·시간을 엮는 운영술


유방이 만든 조직은 천재 한 명이 끌고 가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는 복잡한 전장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사람, 식량, 시간. 그리고 그 세 가지를 유기적으로 엮는 데 전념했다.


사람: 장량은 전략과 외교를, 소하는 병참과 행정을, 한신은 전투를 맡았다. 유방은 각자에게 ‘전권’을 주었고, ‘결과’로 평가했다. 이 구조는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즉, "발견 – 임명 – 전권 위임 – 결과 책임"이라는 선순환 루프를 통해 탤런트를 구조화한 것이다.
→ 오늘날 넷플릭스(Netflix)도 유사한 전략을 사용한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자율과 책임’이라는 원칙 아래, 뛰어난 인재에게 전권을 주고, 성과로 평가하는 문화적 운영 시스템을 구축했다¹.


공급망: 유방은 병참을 전투보다 우선했다. 소하에게 둔전과 군량 시스템을 맡기며 보급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했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기능 개발보다 운영, 재무,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먼저 구축한 셈이다. 프로젝트를 앞세우지 않고, 프로젝트를 가능케 하는 기반을 먼저 닦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 이와 유사하게, 아마존(Amazon)은 제품 판매보다 먼저 물류 인프라와 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프 베조스는 이커머스 이전에 ‘풀필먼트 센터’와 ‘로지스틱 네트워크’를 설계하며 실행 기반을 먼저 다졌다².


시간: 그는 항우에게 크게 패한 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곧장 정면 승부를 접고 소모전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이는 실패를 곧장 학습으로 전환하고, 전략을 피벗한 ‘상황 적응형 운영’의 사례였다. 동시에 그는 외교와 심리전을 병행했다. 영포, 팽월 같은 인물을 설득해 항우 진영을 분열시킨 것은, 전투보다 이해관계를 흔들어 균열을 만든 심리적 전략이었다.
→ 넥슨(Nexon)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프로젝트도 출시 직전 전략을 대폭 수정한 사례다. 당초 계획을 철회하고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면서 장기적 신뢰와 완성도를 택했다³.


‘영웅’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싸우다


항우는 전투에선 천재였지만, 분봉과 동맹 관리, 병참 운영에선 무르익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믿었고, 유방은 시스템을 설계했다. 유방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들기보다, 작동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결국 ‘지는 전투를 이기는 전쟁’으로 전환시켰다. 이는 ‘누가 싸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되느냐’의 싸움이었다. 유방은 전장을 ‘개인의 무용담’이 아니라 ‘조직적 운영의 시험장’으로 정의했으며, 그 프레임 전환이 전쟁의 향방을 갈랐다.

유방의 승리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었다. 그는 패배를 반복하면서도 전면전을 고집하지 않았고, 매번 전략을 수정하며 장기전을 염두에 두었다. 특히 형양과 성고에서의 대치전은 그의 전략적 전환점을 상징한다. 항우에게 대패한 후 유방은 형양(滎陽)과 성고(成皐)라는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2년 가까이 버티며 직접 충돌을 피했다. 그 기간 동안 병참을 정비하고, 각지의 반항 세력을 끌어들이며 항우의 세력을 서서히 소진시켰다. 이는 군사적 대결보다 외교와 심리전에 방점을 둔 '시간 지배 전략'의 결정판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방은 철저히 조직을 관리하고 병참을 유지하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도록 견고하게 방어했다. 결국 항우는 더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유방은 전쟁 전체의 흐름을 지배했다. 이는 전장을 ‘전투의 총합’이 아닌 ‘시스템 간의 지속 가능성 경쟁’으로 이해한 자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는 마침내 초한전쟁의 마지막 승자가 되었고, 기원전 202년 한(漢) 제국을 세웠다. 농민 출신의 말단 관리에서 출발한 유방이 대륙을 통일하고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과정은, 단순한 무력의 결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 전략의 완성판이었다.

오늘의 조직과 개인을 위한 체크리스트


유방의 리더십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조직 운영에도, 그리고 개인의 삶에도 적용 가능한 통찰이다. 우리가 이를 전략으로 바꾼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채용·위임: 별을 알아보고 전권을 주되, 성과는 데이터로 점검하고 있는가?

병참 우선: 프로젝트보다 운영과 재무, 데이터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있는가?

전략 유연성: 실패했을 때 빠르게 물러서고, 목표는 유지하되 방법을 바꾸는가?

정당성 설계: 규칙은 단순하고 공정하게 구성되어, 현장의 저항을 최소화하는가?

외교/심리: 경쟁의 방식이 반드시 충돌이어야만 하는가? 상대의 내부 인센티브를 재배열함으로써 우회하는 전략은 가능한가?

이 다섯 가지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개인의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떠나도 남는 체계다. 그 체계가 곧 조직의 내구성이고, 그 내구성이 바로 유방의 리더십이었다.

그리고 이는 조직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는 늘 자원과 시간과 에너지라는 제한된 전장에서 살아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나만의 '작동 방식'을 갖추는 것이다.

즉, 1)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인적 구조), 2) 무엇을 먼저 구축할 것인가(기반 정비), 3) 언제 멈추고 바꿔야 하는가(전략 피벗), 4) 어떻게 나만의 규칙을 만들 것인가(운영 원칙), 5) 갈등 없이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관계 전략)—이 다섯 가지 질문은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유방이 가르쳐주는 것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오늘의 한 문장
영웅을 찾기 전에, 사람·공급망·시간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먼저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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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넷플릭스, 『No Rules Rules』, 리드 헤이스팅스 저.

² 브래드 스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³ 『던파 모바일, 출시 연기 후 1년간의 전면 개편 이야기』, 넥슨 인터뷰 기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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