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질수록 웅산은 점점 더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이 계절이 주는 서정적인 풍경을 사랑이와 함께 누린다. 사랑이는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반려견으로, 웅산을 오르는 길 위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를 땐 안고 걷지만, 느슨한 산길에 들어서면 사랑이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흔들고, 마치 가을빛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듯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나는 그런 사랑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이 길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웅산에는 온갖 벌레와 곤충들, 그리고 새들이 합창을 하면서 나를 반겨 주었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 그늘을 내어준 숲은 어머니 젖가슴처럼 푸근했다. 나는 이 같은 푸근함을 지난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만끽했다.
웅산의 길목마다 물드는 단풍은 화려하지만, 그보다 더 따뜻한 풍경은 우리가 함께 걸으며 나누는 일상을 기록한 것을 보는 즐거움이다. 여름날 함께 흘린 땀방울의 기억이 가을의 선선한 공기 속에서 달콤한 보상처럼 되살아난다. 함께 지나온 계절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잇는 끈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나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연이 있다. 바로 광석골 쉼터에서 마주하는 들고양이들이다. 매일 느즈막한 오후에 나는 그곳을 찾아 밥을 나누어주곤 한다. 처음에는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멀찍이 서 있던 아이들이었지만, 4년을 넘긴 지금 그들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발걸음을 옮기면 풀숲이나 철쭉숲 속에서 나와 고개를 내밀고, '야응' 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 울음소리는 단순한 배고픔의 신호가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고 반가워하는 마음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고양이들의 눈빛 속에는 작은 신뢰와 교감이 깃들어 있고, 나는 그 눈빛을 통해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경험을 하곤 한다.
사랑이와 함께 산을 오르는 길과, 들고양이들과의 짧은 만남은 서로 다른 풍경 같지만 사실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산길 위에 쌓여 있는 단풍잎들, 공원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들, 그리고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랑이의 발걸음까지 모두가 내 삶을 채우는 귀한 동행이다.
웅산의 가을은 이 모든 인연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사랑이는 단풍잎을 밟으며 즐겁게 앞서 걷고, 고양이들은 멀리서 나를 향해 아는 척한다. 나는 그 장면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 품으며, 이것이야말로 내가 매일 써 내려가는 가장 진실한 산책 기록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더 깊어지는 관계의 온기 서린 연대기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 낙엽의 계절이 단지 자연의 변화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머문다. 나 역시 생의 가을 어귀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나온 날들 위에 차곡차곡 쌓인 단풍처럼, 내 삶의 풍경에도 시간이 만든 색깔이 고동색으로 짙어지고 있다. 젊음의 들뜬 걸음은 어느덧 사색이 깃든 발걸음으로 바뀌었고, 사랑이와 고양이들의 존재는 이제 내 안의 고요한 중심을 일깨우는 이정표가 되었다. 낙엽을 밟으며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소리를 듣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처럼, 기억 속의 순간들이 되살아난다.
오늘도 나는 웅산을 오른다. 사랑이와 함께, 그리고 들고양이들의 인사를 가슴에 품으며.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가는 길 위에서 나는 또다시 가을의 의미를 되새긴다.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맺어진 우정과, 가을의 선선함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교감으로. 그것은 결국 나를 둘러싼 모든 생명과의 대화이며, 내 인생의 가을을 함께 걸어가는 존재들과 나누는 소중한 기록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기록 속에서, 더욱 단단하고 따뜻한 내가 되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