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를 안고

반려견과 함께

by 이천우

사랑이를 안고


필자는 매일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한다


우리 집 반려견 사랑이는 올 7월 14일이 되면 열두 살이 된다. 큰딸이 분양받아 몇 달 키우다가 우리 집으로 왔다. 그때의 사랑이는 작고 빠르고 단단했다. 집 안을 미끄러지듯 뛰어다녔고, 낯선 소리에도 방방 뛰며 짖어댔다. 눈이 반짝였고, 발이 가벼웠다. 나는 그 시절을 “어린 강아지의 용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건 젊은 몸이 가진 자신감이었다.


세월은 어떤 생명체도 비켜 가지 않는다. 요즘 사랑이는 움직임이 느려졌고,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래 걷고 나면 숨을 고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예전에는 “한 번 더!”를 외치듯 뛰던 아이가, 이제는 “여기서 잠깐”을 먼저 행동으로 나타낸다. 말이 없지만, 나는 그 신호를 알아듣는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를 대하는 속도가 달라졌다. “괜찮아?”라는 말을 더 자주 하고, 손길도 자연스럽게 자주 쓰다듬는다. 빨리 끝내는 게 아니라, 무리하지 않게 맞추는 쪽으로 바뀌었다. 노견을 키운다는 건, 상대의 세계를 “예전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연습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 사랑이와 웅산 기슭의 길을 한 시간 남짓 산책한다. 이 산책은 운동이기도 하지만, 우리 둘의 일과(일상의 고정된 순서)다. 근래 사랑이는 걷다가 자주 멈춘다. 숨을 고르고, 주변을 한 번 보고, 다시 한두 걸음 옮긴다. 예전이라면 그냥 지나갔을 멈춤인데, 이제는 그 멈춤이 사랑이의 속도다. 사랑이가 어느 정도 걸었다고 생각되면 나는 사랑이를 안고 걷는다. 팔에 닿는 체온이 따뜻하고, 그 온기는 내 마음 깊은 데까지 닿는다. 내가 안아 주는 동안 사랑이는 얌전히 몸을 맡긴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강아지를 드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 된다. 멈춤이 늘어날수록 돌봄이 늘고, 돌봄이 늘수록 애틋함이 커진다. 이건 사랑이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최근 들어 내 삶에서 실제로 늘어난 행동이다.



안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편의를 주는 일을 넘어선다. 사랑이를 안는 동안 나는 내 호흡도 함께 느려지는 걸 느낀다. 발걸음이 느려지고, 주변 소리도 또렷해진다. 젊을 때는 “오늘 할 일”이 앞서서 풍경이 배경으로 밀렸는데, 요즘은 풍경이 먼저 들어오고 그다음에 생각이 따라온다. 사랑이의 걷는 속도는 내 삶의 속도를 조정하는 걸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늙으면 느려진다”고 말하지만, 정확히는 “느려져야 보이는 것”이 늘어난다. 사랑이 때문에 나는 그걸 매일 체감한다.


집에서는 사랑이는 앞 베란다 전용 공간에서 지낸다. 우리 집 아파트는 13층이고 남향이라 밝고, 전망이 트여 있다. 사랑이는 그 베란다 공간을 뛰어다니며 생활한다. 베란다와 거실, 내 방은 유리창으로 이어져 있어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사랑이의 위치를 자주 확인하게 된다. 사랑이는 나를 보고, 나는 사랑이를 본다. 이 단순한 시선 교환이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고, 하루는 길어진다. 바깥에 나가면 말할 사람은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면 조용함이 남는다. 젊을 때는 그 조용함이 “휴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빈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집 안에서라도 누군가가 내 시야 안에 있고, 내가 바라보면 바로 반응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노후에 왜 “눈으로 확인하는 관계”가 커지는지, 나는 내 생활에서 분명히 느끼곤 한다. 사랑이의 눈은 나에게 성과도, 실수도, 그럴듯한 설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 있네”라고 말해 준다. 나는 그 안정감을 사랑이와의 눈 맞춤에서 얻곤 한다.


요즘 사랑이는 산책을 마치고 쉬다가 내게 더 자주 안기려 한다. 내가 소파에 앉아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사랑이는 베란다에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낑낑거리며 다가온다. 그때 나는 사랑이를 안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사랑이는 부부 사이에 끼어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그 작은 몸이 끼어드는 순간, 대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다가도 우리는 저절로 웃게 되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손이 사랑이의 등을 쓰다듬는 쪽으로 움직인다. 말의 방향이 바뀌는 게 아니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사랑이는 우리 부부 대화에서 자주 ‘분위기를 정리해 주는 존재’가 된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가까이 와서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한다.

사랑이는 아직 건강한 편이다. 다만 노견이라 그런지 잠을 많이 자고, 주인에게 더 자주 몸을 닿으려 한다. 이 변화는 반려견의 애교라기보다, “안전한 곳을 확인하는 방식” 같기도 하다. 몸을 붙이면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그게 커지는데, 사랑이도 비슷한가 싶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의 ‘더 가까이’가 귀찮지 않다. 오히려 그 요구가 사랑이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나 여기 있어. 너도 거기 있어?”라고 확인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와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한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사랑이와 나는 12년 가까이 함께 살며 정이 들었다. 그래서 이별을 생각하면 “그때 나는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냥 “괜찮다”라고 말하며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나는 요즘 그 질문을 아예 생활 속으로 가져온다. 두려움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을 더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를 자주 안고 집안을 걷는다. 특별한 행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오늘의 평범한 순간을 조금 더 오래 붙잡으려고 한다. 산책을 다녀온 뒤 물을 갈아 주고, 사료를 덜어 주고, 몸을 씻기고, 발을 닦아 주고, 그 다음에 사랑이를 안고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베란다로 천천히 몇 바퀴 돈다. “오늘도 함께 집안 구석구석을 걸었다”는 기억을 한 장 더 쌓아 두고 싶어서다. 대단한 추억이 아니라, 사소한 반복이 쌓여서 마음을 지탱한다는 걸 요즘 나는 믿는다.


내가 느끼기에는 노후 세대에게 반려견은 큰 위로가 된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첫째, 반려견은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 준다. 산책을 나가고, 물과 밥을 챙기고, 상태를 살핀다. 그 반복이 하루를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아 준다. “오늘은 그냥 누워만 있을까” 싶은 날에도 사랑이는 나를 바깥으로 끌어낸다. 억지로라도 문을 열게 만들고, 햇빛을 보게 만든다. 노후에는 ‘큰 목표’보다 ‘작은 규칙’이 더 현실적인 힘이 된다. 사랑이는 그 작은 규칙을 매일 제공한다.


둘째, 반려견은 말로 평가하지 않는다. 내 성취나 실패를 묻지 않고, 내가 다가가기만 하면 자신이 느낀 그대로 반응한다. 사람 관계는 좋을 때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설명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서로의 상황을 묻고, 조심하고, 오해를 풀고, 때로는 부담을 줄이려고 말을 아끼기도 한다. 반려견과의 관계에는 그 복잡함이 없다.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불편하면 슬쩍 피하고, 무서우면 숨는다. 단순해서 오히려 정확하다. 그래서 마음이 덜 닳는다.


셋째, 반려견은 접촉을 요구한다. 손길, 눈 맞춤, 안기기. 그 단순한 접촉이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해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사랑이를 안고 있을 때 온기에 젖으며 잠깐이라도 걱정이 멈추는 걸 분명히 느낀다. 그건 위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잠깐의 쉼표”다. 그런데 노후에는 그 쉼표가 의외로 크게 느껴진다. 하루가 길어질수록, 쉼표의 가치도 커진다.


결국 위로(慰勞)는 멀리서 오지 않는다. 내 곁에 있는 존재가 오늘 하루를 공감하면서 같이 살아 주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는 내 삶의 중심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내 하루를 ‘같이’라는 방향으로 정렬해 준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자주 말한다. 사랑아, 오래오래 함께 살자. 사랑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은 사랑이에게만 하는 말일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오늘을 오래오래 살아 보자.” “지금 이 순간을 그냥 허투루 보내지 말자.” 사랑이를 안고 걷는 짧은 시간은, 내 노후의 고독을 무너지지 않게 잡아 주는 손잡이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손잡이를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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