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나보내는 연습

자녀와의 관계 정립

by 이천우

잘 떠나보내는 연습


부모와 자녀 간 화목한 모습



나는 가족을 생각하면 아직도 “같이 사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이번 설에 자녀들이 와서 집안 분위기가 시끌벅적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연휴가 끝나는 순간이 유독 선명하게 아픈 마음으로 남아 있다. 현관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소리가 멀어지면서 집 안이 다시 제자리로 가라앉을 때, 그때부터 남는 건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허전함이었다. 설거지가 끝난 싱크대는 깨끗한데도 그 깨끗함이 이상하게 차갑고, 방에 남겨진 이불 자국이 먼저 눈에 들어오며, 말소리가 줄어든 공기가 귀에 걸리는 듯하다. 결국 내 마음이 이렇게 푹 꺼지는 이유는 “명절이 끝나서”가 아니라, 내 일상이 다시 나 혼자만(부부만)의 일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그 허전함 앞에서 자주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아직도 부모로서 독립을 못 했나.’ 자녀는 이미 자기 삶의 주인이고, 자기 집과 일정,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머리로는 너무 잘 안다. 그런데도 마음이 그 사실을 따라가지 못하니,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도 한동안 멍해지고, 별일도 아닌데 휴대폰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게다가 안부가 늦어지면 괜히 가슴이 조여 오는데, 그 불안은 “걱정”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면서도, 바로 그 때문에 더 겁이 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미련이 숨어 있으면 어쩌나, 내가 나도 모르게 집착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이런 불안을 느낄수록 나는 가끔 더 차가워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우리 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각자 살면 되지”라고 말하면, 적어도 내가 덜 흔들릴 것 같아서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 가슴이 더 텅 빈다. 즉, 냉정해지는 방식은 겉으로는 깔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감정을 정직하게 다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깨닫는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차갑게 굴어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자녀가 떠나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녀를 놓는 게 아니라 내 불안을 놓고 싶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붙잡으려는 결론은 이렇게 단순화하고 싶어진다. “차갑게 굴기”가 아니라, 관계를 성인-성인의 관계로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전 방식대로 “내가 책임지고 챙겨야 한다”는 태도를 계속 견지하고 있으면, 자녀의 독립과 내 불안이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했으니 이제 남이다”라고 등을 돌리면, 내 마음은 더 공허해지고 관계도 불필요하게 거칠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균형으로, 서로의 삶을 존중하되,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돕는 사람으로 남기로. 완벽하진 않아도, 적어도 무너지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말이다.

사실 자녀가 떠난 뒤의 허전함은 내가 부족해서 생긴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허전함은 그만큼 내 삶에서 자녀의 비중이 컸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문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긴다. 즉, 허전함을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녀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려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연락을 더 원하고, 답장을 재촉하고, “왜 이렇게 바쁜데” 같은 말을 슬쩍 얹게 되면, 결국 내 사랑은 자녀에게는 간섭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나는 그 경계를 알고 있는 만큼 조심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 허전함이 나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어, 내 외로움을 자녀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변질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요즘 가족은 예전처럼 매일 함께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 살아가다가 중요한 날에 모이고, 큰일이 생기면 서로를 챙기는 형태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설과 같은 명절은 “다시 한집에서 살자”는 약속이라기보다, “우리는 아직 가족이다”를 확인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난 뒤 각자 자리로 돌아가면 허전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만 중요한 건 그 허전함을 누구에게 덜어내느냐, 라 하겠다. 나는 그 허전함을 자녀에게 덜어내지 않기 위해, 내가 감당할 몫은 내가 감당하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옮기려 다짐한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라고 믿고 싶어서다.


결국 부모로서 필요한 건 더 냉정함이 아니라 다음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 자녀의 독립을 인정하는 태도다. 자녀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녀의 삶이 자녀의 것임을 인정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부모”라는 자리에서 “응원자”의 자리로 조금 물러설 수 있다. 둘째, 내 허전함을 다룰 내 삶의 중심에 둔다. 자녀가 떠난 뒤 비어버리는 시간을 자녀로 메우려 하면 관계가 흔들리기 쉬우니, 그 시간을 내가 살아갈 일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게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내 삶을 내 것으로 채우는 일은 자녀를 붙잡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들고, 노년의 생활패턴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기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설 이후의 허전함은 내 사랑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사랑을 예전 방식으로 표현하면, 자녀와의 관계는 무거워지고 자녀의 삶은 답답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녀를 붙잡는 부모가 아니라, 잘 떠나보내는 부모가 되고 싶은 쪽으로. 떠난 뒤에도 걱정은 하되, 그 걱정을 자녀의 어깨에 얹지 않는 사람으로 정립하고 싶다. 내 외로움을 “안부”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전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말이다.


물론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연휴가 끝난 집안에서 마음의 빈 구석이 크게 느껴질 때마다, 누군가를 붙잡아 내 빈자리를 메우는 대신 그 빈자리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허전함을 내 몫으로 남겨두는 연습으로. 왜냐하면 그 연습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독립된 부모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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