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국물로 새해를 맞고
새해 맞이 모습
설날은 한국에서 ‘시간이 갈아 끼워지는 날’이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다. 어제의 내가 잠깐 멈추고, 오늘의 내가 새로 서는 날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지방을 넘는 순간 사람은 괜히 옷깃을 만진다. 나도 그랬다. 특히 그날 아침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어릴 적 나는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다. 살림은 빠듯했지만, 설만큼은 마음을 넓히려는 노력이 있었다. 채울 수 없는 형편을 대신해 정성이 집안을 메웠고, 그 기운은 아이였던 내게도 조용히 배어들었다.
새 옷은 늘 새것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사 온 적도 있지만, 대개 우리 집 ‘새 옷’은 어머니의 손을 거쳐 새것처럼 다시 태어난 옷이었다. 옷깃이 닳고 소매 끝이 얇아져도 어머니는 외면하지 않았다. 전날 밤 늦게까지 바늘과 실로 헤진 곳을 다듬고, 마지막엔 다림질로 주름을 곧게 세웠다. 천이 반듯해질수록 내 마음도 덩달아 가라앉고 단정해졌다. “설날엔 얼굴이 단정해야 한다”는 말은 치장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람 앞에 서기 전에 마음부터 바로 세우라는 당부였다. 나는 그 뜻을 다 알진 못했지만, 설 아침만 되면 괜히 등을 펴고 어른스러워지려 했다.
그 단정함은 옷차림에서 끝나지 않았다. 속을 덥히는 일이 먼저였다. 그래서 우리 집의 새해는 새벽 부엌에서 시작됐다. 마당 한쪽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으면 불씨가 탁탁 튀고, 연기는 굴뚝으로 느릿하게 올랐다. 검댕 묻은 솥은 덜컹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았고, 솥뚜껑 손잡이는 손때가 배어 반질했다. 우리 집 새해는 사골이 아니라 멸치국물에서 열렸다.
어머니는 부엌문을 반쯤 열어 둔 채로 일을 했다. 찬 기운이 스며들어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멸치를 한 움큼 털어 넣고, 무 말린 조각이든 파뿌리든 있는 대로 더해 천천히 우려냈다. 국물은 맑았고 깊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담백하고 구수한 냄새가 부엌 기둥을 타고 장독대 쪽까지 퍼졌다. 그 냄새에는 “오늘만큼은 따뜻하게 먹이자”는 마음이 실려 있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을수록, 뜨끈한 국 한 그릇은 더 중요한 약속이 됐다. 바람이 세게 불어 문풍지가 들썩이면 어머니는 몸으로 문을 막고, 불길이 약해지면 장작을 더 넣었다. 끓는 소리가 커지면 뚜껑을 살짝 들어 김을 빼며 맛을 가늠했다. 움직임은 바빴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국물이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새해의 마음도 그렇게 서서히 데워졌다.
나는 방 아랫목 이불 속에 웅크린 채로도 그 기운을 느꼈다. 연기 섞인 새벽 공기, 장작 냄새, 멸치국물의 구수함이 한 덩어리로 문틈을 타고 들어올 때마다 ‘아, 새해가 왔구나’ 하고 알았다. 달력이 아니라 냄새가 새해를 알려 줬다. 맑은 국물 속에는 말로 하지 않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무탈하기를, 아프지 않기를, 먹을거리가 끊기지 않기를.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새해 인사가 먼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솥에서 먼저 나왔다. 달그락거림이 잦아들면 상이 차려질 신호였고, 나는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발끝의 온기가 빠져나가도 마음은 이미 부엌 쪽으로 기울었다. 내게 새해는 달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이 붙고, 멸치가 국물로 풀리던 그 자리에서 한 해가 끓기 시작했다.
우리 집 설 준비의 중심은 찰떡이었다. 찹쌀을 불리고 찧어내고, 김 오르는 떡을 손으로 치대 모양을 잡는 일이 설 전날의 큰일이었다. 손바닥에 달라붙던 따뜻한 감촉이 아직도 선하다. 어머니는 뜨거운 김을 피해 손을 떼었다가 다시 붙이며 떡을 다듬었고, 나는 옆에서 보다가 몰래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곤 했다. 뜨겁고 쫄깃한 그 한입이 내가 기억하는 설날의 맛이다. 풍성하진 않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안도감이 집 안에 퍼졌고, 그 마음이 가족을 조용히 묶어 주었다.
대문 밖 동네는 평소와 달랐다. 겨울 논밭은 잠잠해도 집집마다 연기가 올랐고, 누군가는 마당을 쓸고 누군가는 장독대를 정리했다. 설 아침의 동네는 분주하면서도 말수가 적었다. 대신 짧은 인사에 뜻이 다 담겼다. “무사했냐.” “잘 지내자.” 격식보다 마음이 먼저였다.
집 안쪽에는 조용한 빛이 켜졌다. 차례상을 차리는 손은 바쁘되 흐트러지지 않았다. 촛불과 향, 과일과 전, 국물의 김이 차분히 올라오면 말이 줄어든다. 나는 차례를 단순한 ‘의식’으로만 보지 않는다. 집집마다 방식도 다르고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속뜻은 분명하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이름들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도록, 오늘만큼은 밥상 위에 또렷이 불러 놓는 일. 고개를 숙이는 건 과거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를 세워 준 뿌리에 예를 올리는 행위였다.
그래서 전통은 나에게 ‘낡음’이 아니라 ‘버팀’이다. 흔들릴 때 붙잡을 난간이 될 수 있다. 다만 누군가에겐 그 난간이 높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전통은 지키는 만큼 손질해야 한다. 설이 따뜻하려면 형식이 중심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설날의 핵심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의 세배는 친척 방문보다 마을 방문에 가까웠다. 우리는 몇 명씩 몰려다니며 어른들께 차례로 절을 올렸다. 방바닥은 따뜻했고, 어른들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씩씩하게 자라거라.” “학교는 잘 다니나.” 말은 짧았지만 마음은 꽉 찼다. 그 말을 들으면 등이 펴졌다. 기대받는다는 느낌이 몸 안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덕담을 넘어 ‘포용’이었다고 생각된다. 가난한 집 아이도 말없는 아이도, 절하는 순간만큼은 동등했다. 어른들은 티밥 몇 개, 때로는 동전 몇 닢을 손에 쥐여 주었다. 기억에 남는 건 물건의 무게보다 손끝의 온기였다. “이건 네 몫이다.” 그 말은 ‘너도 이 마을의 사람’이라는 확인이었다.
세배가 끝나면 아이들의 시간이 왔다. 제기차기를 하며 누가 더 오래 차나 겨루고, 웃음은 겨울 공기를 밀어내며 퍼졌다. 팽이치기도 했다. 단단히 언 마당에 팽이를 내려놓고 줄을 감아 힘껏 당기면 ‘윙’ 소리를 내며 오래 돌았다. 제기는 하늘로, 팽이는 땅으로. 어른들이 마음을 다잡는 동안, 아이들은 몸으로 새해를 맞았다.
설날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떡국은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뜻을 품고, 동그랗게 썬 떡에는 해처럼 둥글게 살라는 바람이 묻어 있다. 무엇보다 우리 집 떡국은 멸치국물이었다. 진득한 풍요는 없었지만, 맑고 깊은 국물은 우리 집의 방식대로 한 해를 버티게 했다. 곁에는 만두 대신 찰떡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밥상 앞에서는 마음이 먼저 든든해졌다. 같이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이다. 함께 먹으면 갈등도 조금은 풀린다. 말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밥상 앞에서는 한결 누그러진다. 결국 같이 먹는 일은 같이 살아갈 마음을 다시 묶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날엔 대단한 이벤트가 없어도 된다. 한 상에 둘러앉아 “올해는 어땠냐” 묻고 “무탈했지” 답하면 충분하다. 설은 화려한 축제가 아니라 관계를 점검하는 날이다. 안부를 묻는 건 안전을 확인하는 일이다. “잘 지냈냐”는 말은 결국 “살아줘서 고맙다”에 가깝다.
또 설날은 전통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새것과 오래된 것 사이를 오가며, 삶이 얹히는 만큼 형태도 달라진다. 어떤 집은 차례를 간소화하고, 어떤 집은 가족 식사로 대신하며, 어떤 집은 영상통화로 세배를 한다. 모양이 달라져도 중심은 같아야 한다. 서로를 확인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마음을 다시 세우는 것. 그래서 나는 ‘그대로’보다 ‘제대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날이 주는 선물은 화려함이 아니라 방향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가 아니라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가라는 방향. 나는 가난했던 농촌의 설에서 그 방향을 배웠다. 고개를 숙이는 법, 어른의 말을 듣는 법, 덕담이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 전통은 결국 기억의 기술이다.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방식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일 때 더 오래 간다. 억지로 붙든 전통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서로를 살피는 전통은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설날을 떠올리면 거창한 상차림보다 먼저 멸치국물 냄새가 떠오른다. 어머니 손길로 반듯해진 옷, 찰떡의 온기, 따뜻한 방바닥, 어른들의 짧은 덕담. 거기에 제기차기의 웃음과 팽이의 윙윙거림이 겹치면 내 기억 속 설날은 완성된다. 그 모든 것이 한 가지를 말해 준다. 새해는 멀리서 오지 않는다. 부엌에서 국물이 끓고, 밥상에 사람이 모이고, 안부가 오가며, 마당에 웃음이 번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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