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5주년을 맞으며

사랑과 배려로

by 이천우

결혼 45주년을 맞으며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살려고 했지만 실상 고난도 적지 않았다



나는 3·1절이면 결혼 45주년을 맞는다. 학창 시절 만나 3년쯤 연애하고 결혼했다. 나는 20대 후반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해군 장교로 입대했다. 아내는 20대 중반에 국립 사범대학을 졸업해 중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결혼할 조건은 갖춘 편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운 좋게 국립창원대학교 전임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 무렵엔 남편이 정규직이면 아내가 가정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 후에도 교사로 40년 가까이 일했다. 워킹맘을 배려하는 문화가 미약했던 시절 아내는 늘 빠듯한 일상을 버텨야 했다.


결혼 초 아내는 창북중학교에서 근무했다. 당시 전세 살던 마산시 합성동에서 통근할 수는 있었지만, 교통이 불편했다. 북면-마산 시외버스는 늘 만원이었고, 길은 꼬불꼬불해 버스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내는 첫딸을 임신한 몸으로 그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어느 날 하혈을 했고, 진단은 절박유산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당분간 누워지내라고 했다.



우리는 학교 근처인 북면 시장통에 방을 구했다. 오래된 집이라 미닫이문이었고, 천장 쪽으로 쥐가 다니기도 했다. 연탄 부엌이었지만 시장이 가까워 먹거리는 구하기 쉬웠다. 아내는 그 방에서 몇 달을 지냈다. 나는 군복을 입고 북면에서 진해로 출퇴근했다.


30여 년 뒤 아내가 담임했던 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선생님 남편이 군인이었다”는 걸 기억했다. 해군 대위 계급장을 단 군복 입은 내가 학교 근처에서 자주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아이가 첫째 딸이다. 그 딸이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장통 방을 떠올리곤 한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새댁을 챙겨주던 따뜻한 손길이 또렷하다. 젊을 때 우리가 버틴 힘은 결국 사랑이었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하루를 넘기게 해 주던 실제 힘이었다.


45년이 흘렀다. 나는 줄곧 국립창원대학교에 재직했다. 아내는 경남 도내 여러 학교로 전근을 다니며 교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셋째 아이를 잃기도 했다. 휴일에 아내가 당직을 서는 날이면 나는 학교로 가서 함께 교무실을 지키며 책을 보곤 했다. 서로의 일을 함께 버티는 방식이었다.



돌아보면 교직 생활은 힘들었어도 우리에게 잘 맞는 일이었다. 우리는 부부로 40여 년을 교단에 섰고, 함께 정년퇴직했다. 그 기간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로 변하고 얼굴은 주름졌지만, 두 딸을 교육시켜 전문직으로 키워냈다. 지금 각자 자리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자랑스럽다. 정년 이후 경제적인 부분도 큰 걱정은 없다.

이제 우리는 70대다. 젊은 시절부터 가톨릭신자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나는 거의 매일 웅산을 오르고 풍호운동장 철봉 같은 운동기구로 몸을 관리한다. 아내는 발레를 배우며 체력을 다진다. 최근에는 AI라는 새로운 기술도 익히며 함께 노후의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멈추기보다 할 수 있는 만큼 배우고 움직이며 살고 싶다.


결혼 45주년을 맞으며 한 가지를 정리해 둔다. 젊을 땐 사랑의 힘으로 버텼다. 이제는 사랑에 배려를 더하며 살고 싶다. 불필요한 욕심은 비우고, 하루를 깊이 살아내는 쪽을 선택하겠다. 노후에는 큰 복을 바라기보다, 아프지 않게 움직이고 잠을 잘 자며 하루의 질서를 지키는 삶이면 좋겠다. 그런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그 안에서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하느님이 부르실 때 과장 없이 조용히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론 감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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