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 다루기
웅산을 오르며 욕망을 덜어내고픈 자신을 생각한다
필자는 ‘자연인’ TV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화면 속 자연인은 현실의 복잡함과 소음에서 물러나, 깊은 산속에서 홀로 지내며 욕망을 덜어낸다. 그들이 산에 들어간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삶에 지쳐서일 수도, 관계에 다쳐서일 수도,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자연인들의 살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한 가지를 떠올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그 무한한 욕망을 다 성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욕망을 적절히 조절해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가끔 웅산을 오르며 그 자연인의 삶을 내게 대입해 보기도 한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결론은 늘 같다. 나에게는 쉽지 않다. 아름다움 뒤에는 불편과 고립이 있다. 계절의 위협도 있고, 몸을 스스로 돌봐야 하는 현실도 있다. 사람과의 거리를 견디는 외로움도 따라온다. 그래서 필자는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대신 TV 화면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르고, 그 정도의 거리에서 만족한다.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욕망은 어디까지 뻗어 가며, 우리는 그 욕망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야 하는가. 필자에겐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갖고 싶은 것도 많았다. 욕구를 성취하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었고, 때로는 무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 과정이 내 삶을 굴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욕망은 끝이 없다. 하나를 채우면 다음이 나타난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으니 완전한 충족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한때는 욕망을 확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욕망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겉으로는 초연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더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없애는 척’ 하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위선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욕망은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인정한 뒤 조절하는 대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로 좁혀진다.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자연인이 산속에서 ‘덜어내는 삶’을 택했다면, 필자는 도시에서 ‘다루는 삶’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 할 수 없다면 태도만이라도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싶다. 필자가 말하는 통제 기술은 거창하지 않다. 작고 현실적인 습관들을 조절하는 것이다.
첫째, 올라오는 욕망이 내게 필요한가를 알아차리려 한다. 욕망은 종종 ‘필요’로 위장한다. 그때 10초만 멈춰 묻는다. “이건 필요인가, 습관인가, 불안의 보상인가.”
둘째,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지연한다. 내 경험상 하루만 미뤄도 열기가 줄고, 며칠이 지나면 많은 것이 “굳이”가 된다.
셋째, 빈틈을 다른 행동으로 채운다. 산책이나 독서, 가벼운 운동, 짧은 정리 같은 것들로 대신한다.
넷째, 최소한의 규칙을 세운다. 완전 금지가 아니라, 주 1회나 하루 30분처럼 지킬 수 있는 선에서 마치는 규칙으로 정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살 때 결제 버튼 앞에서 10초 멈춘다. “지금 필요한가, 불안해서 사려는가”를 한 번 묻는다. 그리고 금액이 조금 크다 싶으면 하루 미룬다. 다음 날 다시 보면 열기가 줄어 있고, ‘굳이’라는 말이 떠오를 때가 많다. 손이 심심해 휴대폰을 켜려는 순간에는 대신 책을 두 쪽만 읽는다. 아니면 책상 위에 놓인 물건 다섯 개만 제자리에 옮겨 놓는다. 그 정도의 정리가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규칙도 크게 잡지 않는다. 뉴스나 영상은 하루 30분, 간식은 정해 둔 시간에만 먹는 정도로 조절한다. 욕망을 이기겠다는 결심보다, 욕망이 지나가게 만드는 장치를 마련하는 쪽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습관은 머리로만은 잘되지 않고, 반복해서 연습할 자리가 필요하다. 정년퇴직 후의 삶을 사는 필자에게 그 자리는 웅산이 적격이다. 산길을 오르며 숨을 고르고 풍경이 단순해지면, 마음도 잠잠해진다. 그때 내가 무엇에 끌려왔는지, 무엇을 과하게 쥐었는지 비교적 솔직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자연인은 산속에서 욕망을 줄이고, 필자는 도시에서 욕망을 적절히 제어하며 산다. 방향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고 믿는다. 흔들림을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필자가 70대 중반에 이른 지금, 몸과 시간에 분명한 제약이 따른다. 젊은 시절 이후 다양한 경험도 했다. 이제는 내 욕망의 속도가 곧 주변 사람의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욕망을 더 채우기보다, 의식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조정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욕망을 통제한다는 말은 결국 내 만족을 조금 늦추고, 주변의 표정과 관계를 더 또렷이 보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자연인 프로를 보는 이유는 그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내 삶에 필요한 질문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욕망을 줄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욕망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웅산을 오른다. 흔들림을 줄이기 위한 작은 연습으로.
욕망 조절의 마음을 웅산에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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