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더 나답게

나의 버킷리스트

by 이천우

노후, 더 나답게


필자의 버킷리스트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돌봄 속에서 자라고, 학생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 사회로 진출한다. 그러나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해서 곧바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돌아보면, 젊은 날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온 시간이 아니었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가정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으며, 자녀를 키우는 일은 늘 삶의 앞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미루거나 접어 두어야 했던 때가 적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이 앞섰고, 좋아하는 것보다 책임져야 할 몫이 더 무거웠던 것이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도 삼켜야 하며, 억울하고 서러운 일을 겪어도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내 뜻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세계였다. 때로는 눈치를 보아야 했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버틴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가족 때문이었고, 자녀들의 앞날 때문이었고, 부모로서의 책임 때문이었다. 자녀를 공부시키고 제 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자기 삶을 상당부분 희생하며 살아가는 법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긴 세월을 참고 견디다가 어느 날 문득 정년이라는 문 앞에 서게 된다.

그다음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젊은 날처럼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남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에 조금은 덜 얽매여도 되는 시간, 그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필자는 노후란 자기 삶을 조금은 자기 뜻대로 살아 볼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 하루를 되는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아끼는 일과 마음이 끌리는 일을 다시 붙들어 보는 시간 말이다. 그런 뜻에서 내게 노후는 단순히 늙어 가는 시간이 아니라, 조금 더 나답게 살아야 할 때라고 믿는다.


물론 노후라고 해서 모든 것이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이 받쳐주어야 하고, 경제적인 형편도 무시할 수 없으며, 가족관계 역시 삶의 평온을 좌우한다. 마음은 청춘이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가고 싶은 길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리가 성할 때 가고 싶은 곳에 가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먹어야 하고, 마음에 품은 일이 있으면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까닭은 분명하다. 시간은 넉넉하지 않고, 건강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실이 노후를 더 의식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때문에 나는 노후에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을 적어 놓은 목록이 아니라, 남은 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약속에 가깝다.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돌아보게 하는 삶의 이정표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까지 자기답게 살고 싶어 한다. 편안하기만 한 삶보다 마음이 살아 있는 삶을 원한다. 배우고, 움직이고, 쓰고, 노래하고, 사랑하며 하루를 채워 가는 삶이야말로 노후를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김형석 교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된다. 백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읽고 쓰며 사람들 앞에 서는 그의 모습은, 노년이 단지 늙어 가는 시간이 아니라 끝까지 정신의 불을 지피며 살아가는 시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삶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본질은 더 또렷해지고, 사람의 마음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끝까지 배우고, 끝까지 생각하고, 끝까지 사회와 마음을 나누는 삶은 노후를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라 자기 삶의 깊이를 완성해 가는 시간으로 바꾸어 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필자는 나이 듦을 핑계로 물러서기보다, 오히려 남은 날일수록 더욱 치열하고도 따뜻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도 가끔 내 노후의 버킷리스트를 조용히 떠올려 본다. 그것은 대단한 성공의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마음에 품어 왔던 것들, 언젠가는 꼭 해 보고 싶었던 것들, 그리고 남은 삶에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에 가깝다. 다만 그것들이 단순한 바람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후의 버킷리스트는 적어 두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실천으로 옮겨 갈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필자는 앞으로의 삶을 막연히 보내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 있던 일은 미루지 않고, 해야 할 공부는 다시 시작하며,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동안 생기 있게 살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글쓰기다. 『사랑이 머물렀던 여행길』의 속편을 펴내고 싶고, 에세이집도 몇 권 내고 싶다. 지나온 시간의 결을 더듬어 보고, 내 곁을 스쳐 간 사람들, 풍경과 감정을 문장 속으로 정리하고 싶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살아온 시간을 다시 어루만지는 일이고, 사라져 가는 기억을 붙잡는 일이며, 내 삶을 스쳐 간 소중한 순간들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글쓰기는 내게 작업이면서 동시에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고, 지나온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필자는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쓰고, 생각이 살아 있는 한 쓰고, 세상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는 한 쓸 것이다. 잘 쓴 글보다 진실한 글을 남기고 싶고, 화려한 문장보다 마음이 닿는 문장을 남기고 싶다. 내 삶이 평범했다면 평범한 대로, 힘겨웠다면 힘겨웠던 대로, 기뻤다면 기뻤던 대로 숨기지 않고 쓰고 싶다.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동안 필자는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견뎌 왔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내게 삶의 중요한 방식이며, 노후에도 놓지 말아야 할 사명 같은 일이다.


또 하나는 신학 공부다.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오면서 신앙은 내 삶의 바닥에 늘 조용히 흐르는 물줄기 같았다. 바쁘게 살아갈 때는 그 물줄기를 깊이 바라볼 겨를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흐름을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사랑과 용서와 감사는 또 어떤 무게를 갖는지를 더 깊이 배우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삶의 바깥보다 삶의 안쪽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신학 공부는 내게 남은 날들을 조금 더 맑고 겸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이 되어 줄 것 같다.


이 마음 역시 막연한 관심에 머물고 싶지 않다. 필자는 남은 생에서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과 믿음이 따로 떨어지지 않도록 더 성실히 배우고 싶다. 젊은 날에는 앞을 향해 달려오느라 미처 다 살피지 못했던 영혼의 문제를,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차분히 마주하고 싶다. 살아온 날들이 많아진 만큼 삶의 끝도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 동안 믿음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마음의 시선을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며 살고 싶다.


요즘 내가 심혈을 기울이며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AI 입문서인 『AI와 함께 걷기』도 노후의 중요한 소망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 빠르게 달라지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는 AI를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무턱대고 낙관하며, 또 어떤 이는 여전히 그것이 자기 삶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AI는 일부 전문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AI를 어렵고 낯선 기술로만 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 삶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이 차가운 기술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이 AI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그렇다고 쉽게 휩쓸리지도 않도록 돕는 작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는 이 책에 단순한 AI 관련 내용만 담고 싶은 것이 아니다. AI를 둘러싼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이해해야 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며, 어떻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노후에 얻는 큰 보람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2판, 3판, 나아가 그 이후의 수정판까지도 꾸준히 다듬으며 시대의 변화에 맞게 계속 업데이트하고 싶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되고, AI 시대를 건너가는 데 조용한 길동무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책도 달라져야 하고, 독자의 질문이 달라지면 설명도 더 깊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AI와 함께 걷기』는 한 번 쓰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필자 스스로도 함께 성장하며 오래 다듬어 갈 책으로 삼고 싶다.


또 필자는 체력이 허락하는 동안 글을 쓰고, 산을 오르고, 운동기구를 붙들며 근력을 지키고 싶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쉽게 지치고, 마음이 무너지면 삶의 의욕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노후의 건강은 단지 오래 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바탕이다. 내가 글을 쓰고, 배우고, 여행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다면 그 토대에는 결국 건강이 받쳐줘야 한다. 그러므로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오를 수 있을 때 오르며, 움직일 수 있을 때 몸을 움직이고 싶다. 내 두 발로 땅을 딛고, 내 숨으로 바람을 마시며, 아직 살아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싶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노후의 품위를 지키는 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50대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에 따라 체력이 떨어진다고 소극적으로 생활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생각을 바꿨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몸을 단련하고 근력을 붙들어 체력을 강화해야겠다고. 산을 오르는 일도, 운동기구를 붙드는 일도,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다. 몸을 돌보는 일은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다. 마지막까지 내 힘으로 걷고, 내 힘으로 움직이고, 내 힘으로 쓰고 싶다. 그것이 내게는 존엄이고, 나답게 늙어 가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3년 전부터 민요와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 우리 소리에는 사람 사는 정이 깃들어 있고, 한과 기쁨, 흥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매주 화요일 ‘창원의 집’에서 민요와 판소리를 배우는 시간은 필자에게 단순히 노래를 익히는 배움의 자리가 아니다. 그 시간은 가슴 깊이 맺힌 한을 풀어내고, 우리 소리의 가락과 장단에 밴 삶의 정서와 숨결을 온몸으로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한 소절 한 소절 따라 부르다 보면 옛사람들의 한과 흥,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필자의 마음도 어느새 함께 울고 다시 따뜻해진다


앞으로는 장구와 북도 더 배워 장단을 맞추며 직접 소리를 한층 깊게 익히고 싶다. 가능하다면 작은 발표회도 열어 보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기쁨이 있다는 것, 떨리는 목소리로라도 사람들 앞에서 한 자락 소리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을 필자는 노후에 더욱 실감하게 된다. 더 나아가 민요와 판소리를 배우는 시간은 단순한 취미의 시간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는 생의 숨결을 깨우는 시간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배움을 꾸준히 이어 갈 생각이다. 늦었다고 물러서지 않고, 서툴다고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배우는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사람도 쉽게 늙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꼭 다시 걸어 보고 싶은 길이 있다. 내가 학문적으로 존경하는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가 공부했던 빈과,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그라츠 대학을 찾아가는 일이다. 사실 그 여행은 막연한 꿈으로만 품어 온 것이 아니었다. 한때는 실제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일정까지 짜 두었었다. 슘페터가 공부했던 빈의 거리와 빈 대학을 걸어 보고, 그가 근무했던 그라츠 대학도 찾아가 보고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었다. 그러나 뜻밖의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을 덮치면서 그 계획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여행은 내게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한때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가 멀어진 소망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언젠가 사정이 허락한다면, 오래 품어 온 그 길을 꼭 천천히 걸어 보며 대학자의 생각에 빠져들고 싶다. 그것은 책으로만 만나 온 한 사상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 청년기와 장년기의 사유를 다시 더듬어 보는 조용한 순례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여정을 단순히 외국의 명소를 보는 일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존경해 온 한 학자의 숨결을 따라 걷는 일이자,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학문의 열정을 다시 일깨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은 언젠가 꼭 다시 걸어야 할 길이다. 미뤄졌을 뿐, 사라진 꿈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망보다 더 깊고 더 따뜻한 바람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부부가 노후에 서로를 보듬으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일이다. 젊은 날에는 함께 교단에 섰기에 서로를 충분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생계의 무게가 있었고, 자녀를 키우는 수고가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하루를 버텨 내는 일이 더 급했던 날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노후에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서로의 수고를 더 잘 알아주고, 서로의 외로움을 더 따뜻하게 감싸 주며, 아플 때 곁에 있어 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노후의 부부란 단지 한 지붕 아래 함께 늙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다독여 주는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함께 차를 마시고, 함께 산책하고, 때로는 조용히 앉아 아무 말 없이 같은 창밖을 바라보는 일, 그 평범한 시간들이야말로 노후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순간들일 것이다. 젊은 날의 사랑이 불꽃처럼 뜨거웠다면, 노년의 사랑은 아궁이 속 잔불처럼 오래 가는 따뜻함에 가깝다. 크게 타오르지는 않아도 오래도록 방 안을 덥혀주는 불, 바로 그런 사랑 말이다. 서로의 주름을 보고도 미소 지을 수 있고, 서로의 약해진 걸음을 기다려 줄 수 있으며, “당신이 옆에 있어 행복하다”라는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필자는 노후의 행복을 혼자만의 성취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책을 쓰고, 공부를 하고, 소리를 배우고, 여행을 한다 해도,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삶은 한쪽이 비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가장 큰 버킷리스트는 결국 배우자와 함께 따뜻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다.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때로는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후에 가장 빛나는 사랑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남은 생에서는 그 사랑을 더 아끼고 더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젊은 날에 바빠서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다정한 일상 안에서 솔직하게 건네고 싶다.


결국 내가 바라는 노후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글을 쓰고, 배우고, 책을 다듬고, 산을 오르고, 소리를 배우고, 오래 마음에 품은 길을 다시 걸어 보고,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평온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그 삶이 아주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일 것이다.


노후는 쇠퇴의 시간만은 아니다. 잘 살아 내기만 한다면, 오히려 가장 자기다운 얼굴로 삶을 완성해 가는 시간일 수 있다.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는 삶, 더 빨리 가는 삶이 아니라 더 천천히 음미하는 삶, 더 큰 성공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더 따뜻하게 사랑하는 삶으로 옮겨 가는 시간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노후를 두려움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다. 남은 날이 줄어든다는 생각보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더 자주 생각하고 싶다.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더 감사하며,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다짐은 결코 약한 마음이 아니다. 필자는 남은 시간을 그저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다. 쓰고 싶은 글은 써 나갈 것이고, 배우고 싶은 것은 배워 갈 것이며, 걸어 보고 싶은 길은 다시 준비할 것이다. 몸이 허락하는 동안 움직일 것이고,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사랑할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삶에 대한 열정까지 접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남은 날이 귀하기에 더 진지하게 살고, 더 충실하게 살고, 더 나답게 살아내고 싶다.

나는 늙어 쇠락해 가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는 책 한 권을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의 하루를 보듬으며 늙어 가고 싶다. 그러다가 언젠가 하느님께서 조용히 부르시는 날이 오면, “참 고맙게 잘 살았습니다” 하고 미소 지으며 기꺼이 응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노후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늦지 않게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마음,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마음, 그리고 오늘 주어진 하루를 감사한 자세로 살아 내는 마음. 그 마음들이 하루하루 조용히 쌓여 한 사람의 생을 저녁노을처럼 물들일 때, 노후는 비로소 쓸쓸한 끝이 아니라 오래 살아 낸 삶이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닮아 가는 가장 잔잔하고도 깊은 시간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킷리스트는 살아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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