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조용히 떨어지는 빗소리는 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데, 오늘은 다르다. 저기압의 무거운 공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제 아침 내가 끓인 된장찌개 때문이다.
어제 아침, 정성 들여 끓였다. 된장의 구수한 향에 돼지고기, 부드러운 두부, 양파와 버섯까지 듬뿍 넣은 찌개는 아침 밥상 위에 제법 그럴싸하게 올라갔다. 반쯤 먹고 남은 찌개를 보며, ‘내일 아침에도 먹어야지’ 생각했다. 그건, 작은 즐거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마산 지혜의 도서관에 다녀왔다.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덥고, 여름의 문턱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도서관은 시원했다.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나는 AI에 관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아내는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다가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눈 말 없는 대화 같은 시간.
저녁은 외식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찌개는 냄비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 메일로 받아둔 주요 신문기사 요약본을 읽었다. 챗GPT에 포스팅할 거리들을 정리하며, 에이전트 AI에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책상 앞에 앉아 한 시간 넘게 몰두했다. 글이 술술 써지지 않는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설거지를 하며 문득 냉장고 속 찌개가 떠올랐다. “그래, 이걸 데워 먹어야지.” 하이라이트에 냄비를 올리고 불을 켰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모든 게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내방으로 돌아왔다.
다시 자료를 보고, 문장을 고치고, 집중했다. 찌개도, 불도… 잊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내방에도 스며들었다. 서서히, 하지만 명확하게 퍼지는 그 냄새. “설마…”
부엌으로 달려갔다.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훅 끼쳐오는 연기와 냄새. 매캐함에 눈이 따가웠다. 가슴도 답답했다. 찌개는 몽땅 시커먼 재로 변했고, 내가 정성 들여 만든 그것은, 이제 냄새만 남겨놓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풍기를 돌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비 오는 날의 저기압은 이 냄새를 더 깊숙이 붙들고 있다.
잠시 뒤, 잠에서 깬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이마를 찌푸린 채 묻는다.
“이거 무슨 냄새야?” “…된장찌개… 그거, 데우다 그만…”
호된 꾸지람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야단맞을 일을 했으니 당연했다. 마음도, 집 안 공기도, 눅눅하고 텁텁했다. 부주의는 이렇게 찾아온다. 단 몇 분의 방심이, 하루를 통째로 뒤흔든다. 지금도 집안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빗소리는 여전히 들리며, 집 안엔 아직도 탄 냄새가 감돌고 있다. 이 냄새는 몇 날 며칠 내내 나를 혼낼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냄새 속에서 조용히 반성하는 중이다.
작은 실수는 작지 않다. 하루의 리듬은 사소한 집중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에센스 #된장찌개사건 #비오는날의기억 #에이전트AI #부주의의대가 #소소한실수큰교훈 #브런치글쓰기 #감성글 #조용한반성 #냄비태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