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문밖부터 시작되는 침묵의 공기가 나를 천천히 고인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사진 속 고인은 조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을 기도로 살았고, 믿음을 삶의 중심에 두고 걸어온 분. 그 단단한 믿음은 홀로 딸 셋을 키워낸 세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빈소 한쪽, 조용히 손님을 맞는 세 따님이 눈에 들어왔다. 상복을 입고도 또렷한 눈빛, 정중한 인사. 말 한마디 없이도 알 수 있었다. 이 어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자녀의 삶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이들의 차분한 태도와 성실함 속에 고인의 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면 늘 고인의 이름 아래 적힌 유가족들의 이름을 본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름을 따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대입하게 된다. 언젠가 나 역시 저 자리에 이름이 올라가겠지. 그리고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떠올리며 조용히 머리를 숙이겠지.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언젠가 들은 이 말이 다시 마음 한구석을 때린다. 인생은 그렇게 예고 없이 순서를 바꿔가며 우리를 데려간다. 그래서 더더욱, 살아 있는 지금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남겨진 이들의 모습으로 전해진다. 오늘 내가 만난 그 세 따님처럼. 그들의 단정한 태도와 깊은 애도 속에서, 나는 그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을지를 조용히 상상해 본다.
장례식장을 나서는 길, 문득 얼마 전 만난 시인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말했다. “지금 이 만남이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그 말은 유난히 내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덧붙였던 한마디. “세상 모두는 아름다워. 세 살짜리 손도, 아흔 살의 손도.” 그 말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마지막인 듯 살아야겠다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한 문장으로 남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