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 저작권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서 —
조용했던 책, 그리고 사라진 시간
모든 창작물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긴 숨을 고른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몇 해를 준비해 전문 서적을 출간했지만, 세상은 조용했다. 남은 것은 차가운 판매 수치와 꺼져버린 저술 의욕뿐이었다. 학생들은 복사본으로 지식을 대신했고, 내 시간과 열정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내가 쏟아부은 노력은 누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 그 질문은 지금도 마음 한편을 무겁게 짓누른다.
기술의 빛과 그림자, 창작자의 자리
AI 기술은 이제 텍스트를 자동으로 쓰고, 이미지를 합성하며 음악까지 작곡한다. 혁신은 눈부시지만, 그 속에서 창작자의 권리와 가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저작권 제도는 빠른 기술 발전에 따라 흔들리고 있으며,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창작 생태계를 지키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창작자·이용자·기술 제공자가 각자의 책임과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새로운 균형. 그것만이 함께 성장하는 길이다.
저작권, 창작자에게 허락된 숨
저작권은 문학·예술·음악·영상·소프트웨어 등 독창적인 표현물에 주어진 최소한의 보호망이다. 복제권, 공중송신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보호받고,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창작자의 땀과 시간이 깃든 결과물은 보호받아야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존중이 있어야 문화 발전과 합리적 공유라는 두 가치도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흐려지는 경계, 커져가는 절규
스트리밍,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석, AI 학습용 데이터 복제. 저작권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구글이 수억 권의 책을 스캔해 AI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을 때, 작가들과 출판사는 법적 싸움을 시작했지만, 일부 합의에 그쳤다. 심지어 비영리적 데이터 마이닝조차 저작권 침해의 위험을 품고 있다.
저작권 보호가 절대적인 세 가지 이유
첫째, 권리가 보장되어야 창작자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낼 수 있다.
둘째, 보상이 없다면 전문 창작자들은 시장을 떠난다.
셋째, 시간·노력·자본 투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는 산업 전체의 혁신과 문화 발전이 멈춘다.
2000년대 초, 불법 다운로드로 무너졌던 음반 시장과 iTunes로 합법적 디지털 다운로드 문화를 꽃피운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저작권 보호는 개인의 권리를 넘어, 산업과 문화를 지키는 일이다.
AI 앞에 선 창작자들의 싸움
법과 기술만으로 모든 침해를 막을 수는 없다. AI는 인터넷의 텍스트·이미지·음원을 학습해 원저작물과 놀라울 만큼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2023년 초,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세라 앤더슨과 동료들은 Stable Diffusion·Midjourney·DeviantArt에 맞섰다. 그들의 작품은 허락 없이 AI 학습 데이터로 쓰였고, 이름만으로도 유사한 그림들이 쏟아졌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세계와 나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싸움은 단순한 권리 주장이 아니었다. 인간 창작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내 이야기,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나 역시 그 아픔을 알고 있다. 수년을 매달린 전공 서적은 시장의 무관심 속에 묻혔다. 나는 다음 저술의 용기를 잃었다. 창작의 무게는 정당한 인정과 보상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함께 만들어야 할 미래
이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창작자가 설 자리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첫째, 학교와 기업은 저작권과 AI 윤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공정 이용(fair use) 범위를 재검토해 창작자와 이용자가 명확한 기준 아래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셋째, 저작권료 풀(pool)과 데이터 사용료 분배 모델을 도입하고, 투명한 분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산업계·학계·창작자가 함께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해 기술 변화 속에서도 지속적인 논의와 조율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억하는 세상, 존중하는 창작
AI 시대의 저작권 보호는 단순한 금지가 아니다. 혁신을 허용하되, 창작자의 권리와 기여를 존중하는 새로운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진짜 예술이다. “우리는 과연, 창작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창작이 존중받고, 지식이 올바르게 순환하는 세상을 꿈꾸며 나는 다시 펜을 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