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속에 담긴 아버지와의 추억

아버지와 함께 미꾸라지를 잡던 기억

by 이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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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농수로의 낙차에서 건져 올린 미꾸라지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보양식이자,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었다.


"흙탕물 속에서도 귀한 건 자란다. 미꾸라지처럼, 그리고 우리의 기억처럼.“


나의 어린 시절, 농촌의 봄은 배고픔과 싸우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엔 특별한 ‘단백질 보고’가 있었다. 바로 집 앞 농수로, 그 중에서도 낙차였다. 어머니의 솜씨로 추어탕이 완성될 때면, 배고픔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미꾸라지를 잡던 내 손과 아버지의 손을 떠올린다.


"봄이 오면, 낙차로 향하던 발걸음“


1. 우리 집 앞 ‘영양 보물창고’, 낙차


우리 집 앞 농수로는 봄이면 미꾸라지들이 모여드는 천연 보양터였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낙차 밑에는 검은 흙과 썩은 풀이 뒤섞인 작은 생태계가 펼쳐져 있었다. 농사철이 아닌 시기에 물이 적게 흐를 때면, 그곳은 마치 미꾸라지의 보금자리처럼 조용히 생명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낙차에서 흙을 뒤집고 미꾸라지를 손으로 잡아 대야에 담았다. 어느새 손에 익은 감각으로 미꾸라지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2. 찬바람 속, 아버지와 함께한 미꾸라지 사냥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안계중학교 입학시험 발표 다음 날이었다. 나는 합격자 발표를 보고 귀가하던 도중에 ‘박씨고개’ 아래 한 논두렁 밑에서 우글거리며 엉켜있는 미꾸라지 무리를 보았다. 다음날 아버지와 나는 그 논으로 가서 얼음을 깨고 논바닥을 호미로 젖히면서 엉켜있는 미꾸라지 무리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손을 호호 불며 이렇게 잡은 미꾸라지를 바케스에 담을 때, 아버지의 손은 나보다 훨씬 더 익숙하고 든든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웃으며 한 바케스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3. 어머니의 손맛으로 거듭난 추어탕


그날 잡은 미꾸라지는 어머니의 손길을 거쳐 인생 최고의 추어탕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래기와 함께 고아낸 진한 국물은 겨울의 냉기를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어머니는 거친 농촌의 현실 속에서도 가족을 위한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요즘도 내 마음 한편에 깊게 새겨져 있다.


"한 홉의 미꾸라지가 가족의 건강을 지키던 시절, 어머니의 솜씨는 그 무엇보다 귀했다."


4.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추어탕의 의미

위암 수술 후, 나는 다시 추어탕을 자주 찾게 되었다. 육고기보다 부담 없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어서다. 서울에서, 중국 청도에서, 그리고 지금의 진해에서도 추어탕은 나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다. 자주 들르는 진해의 어느 추어탕집에서 나는 어릴 적 그 낙차의 기억을 떠올리고, 아버지와 함께한 그날의 냄새에 젖곤 한다. 추어탕은 이제 단지 음식이 아니라 내 삶을 이어주는 '맛의 기억'이 되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맛과 함께 오래도록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겨울 끝자락 논두렁에서 아버지와 손을 맞잡고 미꾸라지를 잡던 순간, 어머니가 가마솥 앞에서 흰 김을 맞으며 추어탕을 끓이던 모습. 그 모든 기억은 내 인생의 ‘따뜻한 국물’처럼 지금도 가슴속을 데운다.


추어탕은 나에게 단지 음식 그 이상이다. 그것은 아버지와 나의 협동이자, 어머니의 사랑이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딘 가족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추어탕을 먹으며, 지난날을 조용히 되새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자신의 ‘맛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추어탕을 즐기는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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