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참는 것이 아니라, 더위와 함께 사는 법을 알았던 사람들. 에어컨 대신 시, 냉수 대신 마음의 서늘함으로 여름을 견딘 옛 선비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한 울림을 전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조금 지쳐가는 여름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지금처럼 냉방기기와 시원한 음료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이 무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조선시대 선비들은 단순히 더위를 참아낸 것이 아니라, 계절과 자연을 친구 삼아 여름을 ‘살아냈습니다’. 그들에게 여름은 ‘버티는 계절’이 아니라, ‘조율하며 살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절기의 흐름에 따라 몸과 마음의 리듬을 조절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더위도 한풀 꺾인다’는 믿음 속에서, 삼복더위에는 삼계탕이나 추어탕 같은 계절 음식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냈습니다.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계절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여름을 견디는 방법이었습니다.
선비들은 여름이면 계곡이 흐르는 정자를 찾아갑니다. 발은 찬물에 담그고, 손에는 부채 하나. 시원한 산들바람이 마루 끝을 스치면, 그 속에서 시를 읊고 차를 마셨습니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 뒤 물가에서 조용히 수련을 했고, 율곡 이이는 명상과 독서로 마음을 고요히 다스렸다고 하지요. “더위가 심하나, 책과 벗하니 마음은 서늘하다.”라는 말 속에, 그들의 여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머문 공간 또한 자연에 열려 있었습니다. 초가의 창호지는 햇살을 부드럽게 걸러주었고, 대청마루는 바람의 길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얀 모시옷과 삼베옷은 땀을 말려주고, 햇볕을 튕겨냈지요. 옷과 집, 삶의 방식 모두가 자연과 이어져 있었기에, 무더위도 그들에겐 거스를 대상이 아닌, 함께 흐를 대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덥지 않으면, 몸도 덥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책을 필사하고, 시를 짓고, 자연 속에서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면의 서늘함을 찾았습니다. 정약용은 “청풍(淸風)은 송간(松間)에 나고, 백로(白露)는 대상(苔上)에 내리네”라고 노래했고, 박지원은 “모시옷을 적시는 땀도 산속 물소리에 씻기나니”라며 여름의 풍류를 남겼습니다. 그들의 기록에는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오히려 그 속에서 고요를 찾고 삶을 즐기는 여유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바람을 버튼으로 부르지만, 선비들은 마음의 창을 열고 바람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느림 속에서 계절을 받아들이고, 하루의 흐름을 음미했던 그들의 삶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더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내는 시간으로 여겼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우리도 이 여름을 조금은 다르게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 차 한 잔 들고 창문을 열어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 하나 들이켜 보는 건 어떨까요. 여름은 그렇게, 마음속에서부터 다시 서늘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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