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은 곧 존재의 형식이다
나는 거의 매일 웅산(熊山)에 오른다. 특별한 일은 없다. 산은 어제의 산이고, 길은 여전히 그 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매일 그 산을 오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달라진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햇살이 따사롭든, 나는 반려견 사랑이를 데리고 똑같은 코스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아침 이른 시간, 아직 잠에서 덜 깬 공기 속에서 우리는 나란히 걷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도 나인가? “
12,000보. 대개 그 정도를 걷는다. 걸음마다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종아리가 욱신거릴 때, 심장이 박동을 높일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단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을 가쁘게 만드는 그 행위 속에서 나는 삶을 능동적으로 맞이한다. 반복되는 루틴 같지만, 그 안에서 매일 새로운 나의 생동감을 느낀다.
SNS 활동도 나의 일상 속 반복이다. 내 젊음을 바쳤던 국립창원대 명예교수협의회, 나의 전우 해군 OCS 68차 동기들, 함께 뒹굴며 놀던 초중고 동창들, 브런치 스토리, 그리고 여러 사회 활동과 페이스북. 사람들과의 소통은 한편으로는 익숙함의 연속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거울삼아 비추어보는 시간이다. 오늘 내가 나눈 인사, 공유한 생각, 웃음 짓게 한 사진 하나가, 음악 한 가락이, 어제의 나와는 조금 다른 결을 만든다. 반복 속에 있는 작은 변화들,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힘일지 모른다.
정년퇴직은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연구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책을 쓰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가장 고된 산행이다. 문장을 고르고 생각을 펼쳐 나가는 일은 가끔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나의 사유는 깊어지고, 한 문장이 완성될 때마다 나는 이전의 나를 조금은 넘어서려고 몸부림친다. 말 없는 통찰을 페이지마다 담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한 치열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니체는 말했다. "반복은 삶을 긍정하는 자만이 견딜 수 있다." 삶을 수용하는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매일의 루틴 앞에서 쉽게 무너질 것이다. 야스퍼스 또한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반복을 통해 자신을 초월한다." 우리는 어디에도 도망칠 수 없다. 그렇기에 같은 길을 다시 걷는 것, 똑같은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노력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루틴을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루틴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 행위 안에는 우리가 견디는 힘, 변화를 꾀하는 의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숨어 있기에.
나는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나는 날마다 새로워지려고 애쓴다. 그것이 바로 노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삶은 어쩌면 거대한 반복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반복 안에서 우리가 의미를 발견하려 할 때, 일상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당신도 오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어제의 나와는 다른 오늘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당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긍정하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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