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켓 Mar 02. 2017

눈길 (Snowy Road, 2015)

: 상처 위에 소복이 덮어지는 하얀 눈처럼

얼마 전, 부산 소녀상 강제 철거 사건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소녀상에 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2015년에는 귀향, 올해는 눈길이 개봉되어 처참했던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영화 <눈길>은 2015년에 <귀향>과 불과 4일 차를 두고 이미 KBS 1 TV에서 방송되었던 드라마이다. 그래서인지 상영관이나 스크린 수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두 영화는 누구도 쉽게 얘기하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를 비슷한 듯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귀향>에서는 끔찍했던 사실 그 자체를 과감하게 표현했다면, <눈길>은 조금 더 피해자들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으로 인해 <귀향>에서는 지옥도라던가 적나라한 장면이 굳이 필요했었느냐는 말과 함께 윤리적 문제까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렇게 참혹했던 역사조차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여러 대사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또, 그들의 입장을 대신하여 말해준다.
위안소로 끌려가 하루하루를 버티던 영애는 결국 그곳을 탈출하고, 종분은 그런 영애를 쫓아간다. 영애는 목숨을 포기하는 두려움보다 위안소에서의 생활이 더 끔찍했던 것이다. 가까스로 영애를 구한 종분에게 영애는 말한다.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섭다고. 누가 자신들에게 신경이나 쓰겠냐고. 겨우 열 몇 살 나이의 소녀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고 여전히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영애와 종분이 있다면, 현재에는 종분과 은수가 있다. 어른들에게 끌려가는 동안에도 누구 하나 지켜주지 못했던 종분과는 다르게 비행과 탈선으로 엇나가던 은수에게는 바로잡아 줄 종분이 있었다.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고 종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은수는 말한다.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야. 그 새끼들이 잘못한 거지." 참 이상하게도 상처입힌 사람은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손가락질은 늘 피해자들에게 돌아온다. 상처 준 사람은 기억조차 못 하는데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차라리 없던 일이라 생각하며 잊고 살아가려 한다. 그런 피해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아도, 추운 눈길을 걸어온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면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들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아역으로 데뷔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김새론'과 '김향기'는 그동안의 경력을 증명하듯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인터뷰에서 김향기는 자신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연기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이 영화를 대하는 조심스럽지만, 책임감 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또한, 영애역을 맡은 김새론은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다양하면서도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아왔다. 이번 <눈길>에서 역시 섬세하지만 단단하고,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연기자로서의 성장을 보여주었다. 추운 날씨와 영화의 주제 특성상 많이 힘들었을 텐데, 김새론과 김향기는 배우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더는 아역이 아닌 성인 연기자의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는 은은하고 차분하게 아팠던 시대를 읽어준다. 마치 종분에게 소공녀를 읽어주던 영애처럼 말이다.

<눈길>이라는 제목은 종분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말함과 동시에 피해자들이 받았던 정부의 무관심과 차가운 눈길,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아픈 역사에대해 가져야 할 관심과 눈길이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기록이고. 그런 기록을 덮으려고만 하는 이 나라는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가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하얀 목화솜 이불처럼 그들의 상처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싱글라이더 (A single rider, 201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