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이야기 - 매일매일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육두문자를 뱉어내며 울었던 그 긴 시간 동안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 건지…… 그런데 나는, 부족함이 나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처음과는 달리 점점 화가 나며 극심한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낼까 두려워 더 꽁꽁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둠 속을 헤매다 이불을 걷어차고 나간 순간, 생각했다.
오랜만에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채소들을 몽땅 꺼내 시든 부분들을 잘라내고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애호박, 당근, 양파, 뜨거운 물에 샤워시킨 스팸과 냉동실에 새우까지. 다지기가 있지만 칼이 더 편했기에 늘 아픔을 호소하는 내 손목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렇게 볶고 또 볶으며 버터 한 조각까지 넣고 완성한 볶음밥을 나름 예쁘게 접시에 덜어 세 아이 앞에 놓았다. “우와 맛있겠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입안 가득 음식을 넣는 동생들과는 달리, 첫째의 표정이 안 좋다. 숟가락으로 밥을 뒤적거리기만 하고 도통 입안으로 가져가지를 않는다. 나 또한 퇴근하고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나름 정성껏 만든 음식인데 그것을 두고도 저런 반응이 나오니 서운했다. 왜 먹지 않냐고 묻는 내게 첫째는 볶음밥이 먹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자꾸만 졸라대는 나 때문에 한 숟가락 입에 넣더니 이 마저도 너무 맛이 없다고 했다. 끝내는 저녁을 먹지 않겠다는 말까지. 아이의 이런 대답에 내 서운함은 이제 점점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내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이 부모이자 어른의 자세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사람 대 사람으로 ‘굳이’ 아이에게 따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아침부터 저녁까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으며 지금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라는 조금은 구체적인 일과까지 나열하며 호소하고 있었다. 그렇게 십분 넘게 이어진 신세한탄을 다 들은 아이는 이제 말이 다 끝났으면 방으로 들어가도 되냐는 제법 사춘기다운 멘트를 남기고는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서러움에 나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그리고 나 또한 눈꺼풀로 눈동자를 덮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치만 보는 동생들에게 미안했지만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걸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행동이었다. 사실 엄마라는 사람은 늘 모든 게 미안한 인간이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내 잘못인 것 같은 죄스러움도 있고. 특히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나 같은 경우에는 그 마음의 깊이와 크기가 더욱 크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 또한 많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눈치껏 밥을 다 먹고 숙제와 샤워까지 끝낸 동생들이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눕는 우리집의 패턴을 내 잔소리 하나 없이 지켜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을 때에도 나는 끝나지 않은 고민과 죄책감, 서운함, 분노 등의 감정들이 뒤엉켜 나의 오늘을 붙잡고 있었다. 몸에 붙어 있는 그 모든 감정들을 씻겨 보내버리자.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시간에 나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해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하는 생각들을 하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오랜 시간 지속된 샤워의 끝을 마무리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또 밤새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전쟁이다!” 앞으로 두고보자, 네 이놈. 이라는 말을 뱉으며 이불을 걷어 차고 아침밥을 짓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평소같으면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지만 이날은 잠을 거의 자지 못해 5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나선 우리집의 거실은 겨울의 새벽이 어둠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먼저 거실의 불을 켜고 부엌의 불을 켰다. 그런데 식탁 위에 하얀 종이가 놓여있다. 스프링의 공책을 한 장 찢어 아무렇게나 반을 접어 놓은 투박한 쪽지를 열자 큰 아이의 글씨가 나왔다.
“엄마, 나도 요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미안해요. 자꾸만 버릇없게 굴고 말도 막 해서.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 돼. 앞으로 노력할게요. 엄마가 고생하는 거 알아요. 엄마의 어제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운동만 한 첫째의 글씨는 악필이었다. 물론 운동 때문에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책을 보거나 글씨를 쓸 시간이 없었기에 이해가 된다는 말이다. 내용 또한 짧고 간결했지만 이 몇 줄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이해가 됐다. 남들이 보면 별일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사춘기 아이와의 삶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의 입장 차에서 오는 트러블로 꽉 차 있다. 저런 사소한 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번 반복 된다면 정말 지치는 삶이 아닐수가 없다. 나는 아이의 쪽지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아침을 준비하며 혼잣말을 했다.
“전쟁은 끝났다.”
네 한마디에 울고 웃는 내가 얼마나 쉬워 보이는지 잘 알지만 평생 약자일 수밖에 없는 부모는 오늘도 미안함으로 밥을 짓는다. 흘러가는 시간, 그 속의 마음의 온도는 다르지만 결국 끝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