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이야기 - 너의 우직함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운동을 하는 첫째 아이를 두고 주위에선 두 가지 반응으로 나를 당황하게 한다. 첫 번째는 너무 많이 드는 돈에 대해 경제적 부담감을 안고 갈 수 있겠느냐라는 말과 함께 꼭“돈이 많은 가보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두 번째는 미래의 손흥민이 될지 어떻게 아냐며 “미리 싸인 받아놔야겠네~”라는 비아냥을 기대감으로 포장한다. 사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아이의 진로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오히려 ‘성공’하기 힘들다는 예체능에 뛰어든 나와 내 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그것이 결국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까봐 미래의 질투심을 끌어와 나를 대하고 있다는 것을.
위의 말들을 비단 나에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어른들도 이따금씩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다니는 내 아이에게 축구 잘하냐, 얼만큼 하냐, 그 정도 해서는 안 된다, 축구가 쉬워보이냐, 성공하기 힘들다, 미래의 슈퍼스타냐 등의 무례한 말들을 하곤 한다. 처음엔 내 스스로가 꼬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쾌한 기분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상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파이팅 같이 전형적인 응원만으로도 아이는 크게 기뻐할 것이고 고마워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내 아이에게 불필요한 말을 한다면 상대에 대한 무례함이니 그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것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시선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귀를 닫고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아도 외롭고 속상한 것은 가시지가 않는다. 어쩔 땐 조롱처럼 느껴진다. 과도한 관심에서 퍼지는 불필요한 시선과 말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최근에 일을 두 개나 시작했다. 이혼과 동시에 이루어진 일들이지만 아직 내 사정을 모르는 주위 지인들은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내가 사회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는 공식적인 훈련 이외에 사교육 및 레슨을 받지 않는다.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공교육만으로 서울대 갔어요, 라고 말하는 수능만점자 같은 미래를 꿈꾸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다. 사실 레슨이나 비싼 축구화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어느 날부턴가 나는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말을 흘려 듣기 시작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오로지 내 아이의 말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선택을 하면 나는 응원해주고 한계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그 선택 또한 존중해주기로 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늘 나의 선택을 걱정하지만 이 상황은 아이가 내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모든 것이 부담이었다면 아이를 어떻게든 설득하여 포기시켰겠지. 하지만 나는 감당하기로 했고 그에 대한 모든 과정과 결과도 내가 받아들이기로 했다. 쉽게 말해 오백만 원을 명품백 사는 것에 쓸 것이냐, 아니면 아이에게 지원할 것이냐를 두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백만 원어치의 학원비를 본인이 지불해 놓고도 아이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화를 낸다는 사실이다.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경우 내가 그런 감정을 표출할 것 같으면 사실, 아이에게 지원을 하지 않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잘 생각해보자.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원하는 지원이었다.
그 결과 값에 대해 탓을 하지 않는 것이 선택에 대한 책임이자 몫인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원래가 많이 힘들고 지친 과정이다. 하지만 9의 역경 속에서도 1의 행복으로 버티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 많이 없음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하는 것은, 1이지만 100의 기쁨만큼 다가오는 순간과 찰나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우직함으로 세상의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내 아이의 한 뼘 뒤 서서, 함께 걸어가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