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는 ‘마음’ 먹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허함. ‘함께’라는 단어에서 ‘혼자’라는 관계로 바뀌는 어색한 과정. 이 모든 것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를 위해 하는 이혼이 과연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고민하기에는 나와 남편의 사이가 늘 안 좋았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날카로운 말들이 솟구치는 나날이 반복되면서 지치고 지겹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나에게 그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나쁜 사람이었겠지.
우리의 의견은 항상 일치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는데 까지가 오래 걸렸을 뿐. 법원에 서류를 접수하고 3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도 싸움은 없었다. 13년 동안 상처를 내던 두 사람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니 싸울 일이 없어졌나보다. 아니면 이제는 남이 되기 위한 정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에게 아직은 말할 자신이 없어 당분간은 비밀을 지키며 살자는 생각 또한 같았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먼저 집을 정리하고 그 다음 전입신고를 통해 최종 서류를 정리하면서 함께 차를 정리하기로 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집을 대강 정리하고 아이들의 아빠가 본가로 들어가는 것으로 서류까지 정리하기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그에게서 이틀 후 전입신고를 끝마쳤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으로 등본을 떼 보았다. 아이들 이름 밑에 동거인으로 올라와있던 그의 이름이 사라졌다.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여전히 엄마, 아빠로 살아가고 있었고 헤어졌지만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었기에 사실 관계로만 보자면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숙려기간 동안에도 아이들이 원하면 완전체로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종이 한 장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컸다.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이제는 내가 혼자 오롯이 책임을 져야한다. 내 밑에 졸졸졸 이어져있는 아이 셋. 아이들의 양육권과 친권은 절대로 줄 수 없다는 내 말에 그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고 완만하게 이루어진 합의였다. 대신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아이들이 원할 때, 아빠가 필요한 순간, 그리고 휴일이나 주말에 꼭 아이들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아빠까지 빼앗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던 사항이고.
서류 정리 전까지의 나는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로 일도 구했고 집을 정리하며 남은 재산도 없었지만 빚도 없었기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지긋지긋한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넘어서 감사하기까지 했으니.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살아갈걸 그동안 왜 고민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마냥 기쁘던 나는 이 종이 한 장으로 금세 시무룩해졌다. 마음이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슬펐다.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었을 테고, 아직 이 상황을 모르는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했고. 나는 결국 하루 정도 꽁꽁 숨겨놓았던 등본을 이내 찢어 버렸다. 혹여 라도 아이들이 볼까봐. 부부였을 때보다 더 편안해진 관계인데 이제는 싸우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할까.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어딘가 서류를 내야 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 들면 안 될 텐데. 빨리 시간이 흘러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이 되어야 할 텐데. 지난 13년 동안 마냥 지옥만은 아니었으니 너도 나도 참 수고가 많았다며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이제는 동거인으로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의 이름을 나는, 흐릿하게 지워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