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진 이후로 맞이하는 첫 번째
1985년 1월 16일 네 번째 출산을 한 최연숙 씨는 그렇게 아이 넷의 엄마가 되었다. 서른을 갓 넘긴 어린 엄마가 품고 있는 아이만 해도 벌써 셋인데 그 뒤로 하나가 더 태어나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억울하고 서운하고 아쉽기도 했을 것 같다. 배움은커녕 제대로 된 청춘조차 없었으니 그야말로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가 인생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채워진 최연숙 씨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한 마디 건넨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엽고 작은 인간 하나를 품에 안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아주 중대한 일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는 만큼 나의 인생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삶이 아이에게 녹아 들어가는 것만큼. 지금이야 젊고 예쁜 엄마들이 많고 그만큼 본인의 인생 또한 잘 가꾸며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디 그랬겠냐 말이다. 그저 하루하루 하루 벌어 먹고 살아가며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부일 수밖에 없는 성실한 분들이 이끄는 세상이었으니 그 세대가 이끈 지금의 80년대 생들은 기본적으로 온 몸에 성실 DNA가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러 후천적 망나니 DNA가 갑자기 생긴 이들도 있겠지만. 전자의 DNA를 듬뿍 갖고 태어난 나 또한 딸 부잣집 막내로 쓸데없이 책임감이 강해졌지만, 그래서인지 삶이 늘 고달프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아이를 낳은 것이다.
나는 혼전임신으로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첫 아이는 내 생일 바로 전날 내 배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모든 것이 기뻤다. 내 삶 속에 녹아들어 모든 것을 함께 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아픈 배를 부여잡고 미역국을 한 그릇 먹고 다음날 나는 병원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사람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물론 아이를 출산한 것에 대한 축하였다. 아무도 내 생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 나의 친정엄마만 빼고. 아이에 대한 관심과 축하가 서운한 것은 아니었는데 엄마의 생일 축하 그 한 마디가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는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고 2026년 1월 15일 열 네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렇듯 아이의 생일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와 잡채를 볶으며 아침상을 준비했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훈련을 다니는 아이에게 든든한 밥을 먹여주고 싶었다. 특별하진 않지만 생일날 아침은 늘 가짓수를 늘려 차리곤 했다. 하지만 피곤함에 예상보다 느지막이 일어난 첫째는 먹는 둥 마는 둥의 식사를 끝내고 부랴부랴 훈련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이 서운하기보다 안쓰러운 건 부모여서겠지. 내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네 삶을 더 응원하게 되는 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거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아이들이 남긴 밥은 절대 먹지 않는다던데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궁상을 버리지 못했는지 큰 아이가 먹다 남긴 미역국에 밥을 말아 빠르게 떠먹고 난 뒤 동생들을 깨웠다. 얼른 따뜻한 밥을 차려놓고 출근을 해야 했다. 저녁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먹여주기 위해 이른 퇴근을 해야 했기에.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아이 셋을 데리고 외식을 한 뒤, 케이크를 사 집으로 돌아와 촛불을 켰다. 네 식구의 안위와 행복을 빌며. 아이는 갖고 싶은 선물이 없다고 했다. 평소에 결핍이 별로 없는 요즘 아이들은 선물에 대한 기대가 없나 보다. 우리 아이도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인지 우리 아이 또한 생일 선물을 생략해도 된다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진다. 많이 노력하고 애쓰는 하루하루지만 특별하지도 않게 지나간 오늘의 밤이 찾아온다. 그렇게 모두가 잠든 시간, 밀린 집안일을 하고 노곤한 몸으로 소파에 기대 건조기의 빨래를 기다리다 보니 밤 12시가 지나 16일이 되었다. 늘 그렇듯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새벽까지 빨래 개기를 끝낸 뒤 잠을 청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회사 사람들의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동안 쇼핑몰에서나 받아봤지 이렇게 직접 많은 축하를 받아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나도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 아이에게 맞춰 살아온 걸까,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온몸이 찢어지게 아픈 고통을 감내하며 나를 낳은 엄마가 알면 많이 서운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즈그 엄마 생일보다 하루라도 늦게 태어나야 되는데 왜 전날 태어났을꼬……아이가 내 생일보다 먼저 태어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친정엄마만 있었다. 당시 나는 아이를 낳은 직후라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는 엄마의 딸이 더 소중하니까. 평생 이렇게 잊혀질 나의 생일을 미리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십 사년 만에 되찾은 것 같은 나의 생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으니.
위아래 흐름은 달라도 사랑의 줄기는 같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엄마와 내 아이를 사랑하고 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를 낳아준 엄마도, 나도, 나의 첫 아이도 이제는 모두가 만족하고 기뻐하는 2026년의 1월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