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였다면

결국 그 시절 그 어려움 또한 사랑이었다.

by 안선화

어리고 어렸던 그 시절‘사랑’만했던 우리에게도 그것은 추억이었다. 지갑에 단돈 만원이 없어 걷고 또 걸었던 그 시간도, 시장 안 떡볶이 한 접시에 깔깔깔 웃어대며 함께 배를 채우던 그 가난마저도 사랑이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가난이더라. 결국엔 서로가 서로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영원할 줄 알았던 마음은 현실에 부딪혀 변해가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가난으로 시작한 우리의 끝은 결국 헤어짐이었다.



“행복했다고 믿었던 우리의 젊은 날,

과연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주말 느지막이 혼자 예매를 하고 집 근처 영화관으로 향했다. 요즘 개봉작 중에‘만약에 우리’라는 작품. 내용도 모른 채 선택한 영화였지만 시작과 동시에 잔잔한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잘 녹여낸 작품이라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들로 어느새 영화관은 꽉 찼고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여러 커플들 사이에 당당히 홀로 눈물을 훔치며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시간, 끝나지 않길 바랐던 시간은 끝이 났고 엔딩크레딧에도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과 슬픔이었다. 혼자가 된 이후에 쉼 없이 달려만 왔던 시간들 속에서 무언가 잊고 있었던 감정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래, 맞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가진 것 없어도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잘 견디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빛이 내릴거라 믿었던 시간들. 물론 결론은 영화에서처럼 우리도 이별을 맞이하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쳐갔던 그 현실 또한 사랑이었고 내 인생이었다. 다만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우리는 서로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추억할만한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지만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눌 만큼의 편한 관계로 끝이 나진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미워하고 화를 내며 법정 다툼을 하며 불편하게 끝을 맺은 것도 아니지만 뭔가 풀리지 않은 끈이 아직도 있는 기분으로 애매모호한 관계로 지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헤어짐이 아쉬워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결혼을 하고 곰팡이 가득 핀 전셋집에서 첫 아이를 낳아도 우리는 참 행복했는데. 새벽이슬 밟으며 일을 나가고 밤늦게 들어와 나를 안아주던 네가 있었는데. 삼겹살 만 원 어치에 김치를 가득 넣어 세끼로 나눠 먹던 시절이었는데. 그렇게 우리도 죽고 못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차에 시동을 켠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쉬움만 가득한 우리의 젊은 날이 온몸을 휘감았다. 손끝까지 전해지는 아픔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할걸, 내가 조금만 더 참아 볼걸, 내가 조금만 더 잘해줄걸. 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결국엔 이렇게 될 일이었으니 지쳐만 가는 상황에 자꾸만 날카롭게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웠겠지.




인생은 끝없는 선택과 후회가 반복되는 과정이다. 나무가 열매를 맺고 꽃이 만개하기까지 그들도 그들만의 아픔과 고통이 있다. 모든 과정은 힘듦의 연속이다. 결국엔 나와 남편의 끝이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그 과정속에 예쁘게 피어난 아이들이 있으니 마냥 후회로 가득한 삶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때로 돌아가 ‘만약에 우리’였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내 모든 청춘을 함께한 그와 그 시간들. 추억을 상기시키며 이제는 ‘우리’가 아닌 ‘서로’의 해피엔딩을 빌어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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