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더링, 존재하기_ 부유하는 몸으로

벽, 돌, 길 10

by 혜투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어도 불안했다. 희미하고 무른 몸은 곧 무너지거나 쓸려나갈 듯 위태로웠다. 한눈에 봐도 마른 나는 “네가 클라이밍을 한다고?” 같은 의아함과 신기함이 섞인 반응을 종종 마주한다. 약한 몸에 대한 불안감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심어준 것이었다. 가녀린 여자아이들이 으레 듣는 소리가 있다. “이렇게 하면(두 동강 내는 시늉과 함께) 손목 부러뜨릴 수 있겠다”, “그 다리로 어떻게 걸어 다니냐”, “너무 말라서 징그럽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시비들을 무시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젠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체중과 키, 외모에 대한 평가가 범람하는 사회에선 개인마다 상처받는 지점이 다양하다. 나의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고민하게 만드는 온갖 말에 영향받지 않기란 힘들다. 특별히 아프거나 문제 되는 건 없었지만 내 몸을 싫어했다. 움직이는 일 자체를 꺼렸고 거울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나는 내가 아니길 바랐다. 신체는 점점 투명해져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지키고 싶지 않았으니 소중한 게 없었다. 그런 삶은 가치가 없어진다. 뭐든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용케 죽지 않았다.

매번 붙드는 것이 있었다.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애타게 무언가를 찾았다. 처음에는 드라마였고 또 음악이었다가 그다음은 책이었다. 모두 아름다워 끌렸지만 기본적으로 나의 속성과 비슷했다. 난 명확히 좋은 것이나 최선의 것을 고르지 못했고 전부 상관없다 말하는 사람이었다. 부유하는 몸과 마음으로는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의미가 날아가버렸다. 그것들도 물리적인 실체로 남지 않고 곧 증발했다. 오로지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했고 자주 도움이 되었지만, 어떤 감각도 오래 간직할 수 없어 허탈한 마음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 강렬한 물성을 지닌 채 존재를 감각하게 해 준 것이 바로 클라이밍이다. 플라스틱 돌의 단단함은 손아귀와 발끝에 선명히 새겨지고 거친 질감은 팔꿈치와 무릎에 흉터를 남긴다. 홀드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선 채로 완벽히 균형이 맞은 순간에는 강렬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확신이 생긴 찰나, 몸의 주체가 되어 생각한다.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두 손으로만 버틸 때면 중력이 끌어당기는 나의 무게를 실감한다. 선명해진 몸이 머리 아래로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 ‘난 여기 이렇게 있다’ 고 알게 된다. 그리고 예상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도, 팔다리가 이리저리 잘 돌아간다는 것도. 역설적으로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굳건히 버틸 힘이 생겼다. 여태 몸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여긴 적이 있었나. 자꾸 나를 내던지고 끝까지 몰아붙이는 클라이밍을 하면서 다치지 않고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생소한 욕심을 발견했다. 흐릿한 몸과 관념으로만 떠다니던 삶이 형태와 무게를 가지고 내려앉았다.

여전히 왜 살아야 하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잡으려 했던 일련의 시도들과 지금 손에 쥔 플라스틱 돌을 보면서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내 살고 싶었던 거다. ‘살아있으니’ 사는 것보단 주체적이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는 것보다 긍정적이니까, 살고 싶다면 살아야겠지. 거창한 의미보다 구체적인 삶에의 의지를 다진다. 그동안 내가 간절히 기대어 살았던 건 모두 다른 이들의 이야기였다. 이것은 나를 살게 한 최초의 내 것, 나의 이야기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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