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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한조각 Mar 28. 2021

답답함은 누구의 몫인가

미리미리 준비하면 어때?

'여보 나 전환면접 날짜 잡혔어.'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이 전환면접 날이 오고야 말았다.

2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다.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맞이한 이 소식은 시베리아 벌판에 맨몸으로 홀로 서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살을 에이는 추위와 앞으로 어쩌지 하는 외로움을 넘어선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나만 그런가?






신랑이 다니는 회사는 4년 전에 다녔던 회사이다. 처음 2년의 계약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바로 이직을 했다. 운도 좋게 대기업에 들어가서 여의도로 출근을 했었다. 대기업에 다니게 되었다고 신나서 출근하던 것도 잠시, 몇 개월 되지 않은 시점에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파리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지금의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퇴사했던 직원이 다시 오는 경우는 창립이래 처음이라고 했었다. 


이직하면서 다짐을 했었다. 자기 계발도 하고 책도 좀 읽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 다짐은 이틀도 안 갔던 것 같다. 

'시간 활용 잘해서 자기 계발한다며, 지금 운동 갈 때야? 술 마실 때야?' 나오려는 말을  뒤로 삼키며 가만히 지켜보며  지나온 1년이었다. 고르고 골라 한마디 조심스레 건네보았다. 


'여보 내일 배움 카드 같은 거 신청해서 배우고 싶은 거 배워보면 어때?'

'응 그런 거 좋겠지.'

'그래, 그런 거 잘되어있다더라, 한번 알아보고 배울만한 거 배워봐요. 저녁에 늦게 와도 괜찮아.'

'응 알았어.'


대답은 잘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시간이 안 난다. 애들이랑 있어주고 싶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저녁 운동 약속은 어쩜 그렇게 잘 가는지.


참을 인자를 그리기를 수십 번. 


내가 대신 가서 배울 수도 없고 이를 어쩌나, 

아이들 셋, 집 대출도 있고 앞일이 걱정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걸까.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잔소리처럼 들린다고 했던가.

신랑에게도 나의 말들이 그렇게 다가왔나 보다. 

아니, 말도 안 하고 내가 열심히 지내는 모습만 보았는데도, 그게 답답하고 불편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물론, 가장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 그 자리를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애썼다, 수고했다.' 얘기하고 안아주고 마사지해주고 그러면서 늘 '아빠 기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말이다. 




휴.. 

얼마 전부터 느껴지는 가슴의 답답함이 심상치 않다. 주변에 물어보니 화병 증세라고 하던데 화병에는 무엇이 약일까. 지금의 이 상황은 마치 더 답답하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먼저 움직이게 되는 눈치게임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눈치게임에서의 진 사람은 바로 나. 만약을 대비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들 셋 모두 학원 여러 개를 돌리면서 바로 내가 일을 시작해서 벌 수 있는 돈은 학원비를 충당하기에도 부족하게 생겼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는 것도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아이들 돌보며 가사를 다 하면서 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종종 재발하는 메니에르가 몸에 가시처럼 돋아 있지 않나. 역시 내가 앞에 서는 것보다는 신랑이 앞서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다시 시작되는 친절한 질문, 



'여보, 혹시 이거 한번 들어볼래?' 

'이 사업 아이템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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