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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한조각 Jan 08. 2021

머리 둘 곳, 한평 남짓

나만의 공간은 얼마만큼일까

나만의 공간인 주방

20살의 겨울,

태어나서 20살이 되도록 살던 곳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경매에 넘어가서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 1 때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약국이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 시기가 천천히 찾아오기는 했다. 청소년기에 외로워서 집에 별로 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주 어릴 때의 기억부터 생각해서 집과 관련된 좋은 기억이 영상처럼 지나갔다. 


태어나서 고1이 되기까지 돈 때문에 곤란하거나 부족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집이 망한 사실을 알고 집에서 쫓겨 나오기까지의 직전 몇 년의 시간이 세상에 나가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라는 신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어디서 알고 왔는지, 몰려온 사람들은  주방집기 중에서 팔릴 만한 것들을 챙겨갔고, 서재를 가득 채운 책장의 책들은 폐지로 리어카에 담겨갔다. 


다른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져가는데 정작 나는 그 어떤 것도 챙겨가지고 나갈 시간이 없었다. 

봄이면 라일락 향이 가득했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했었고,

가을에는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던 뒷마당의 추억 하나도 가져갈 시간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모두 담겨있는 그곳에서

내 몸 하나,

가방 하나 달랑 메고는 

뒤도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왔다. 

 

평수를 넓혀서는 이사 가도 좁은 데로는 못 간다고 누가 말했던가. 짐이 아무것도 없으니 50평대에서 한 평으로 이사 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가 앉았다. 천정이 높은 집에서 살아서 천장이 낮은 곳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답답한 느낌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일 순간 사라졌다.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없는 상황이 되자,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그동안 누렸던 것들이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지 못해 살았던 것인데 제법 열심히 살게 되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게임방에서 일을 하며 논문도 쓰고 돈도 벌었다. 쉬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게임방에서도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잠은 하루 4시간, 게임방 의자에 기대어 자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를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예쁘게 꾸미거나 여유 있게 지내지도 못했다. 


게임방 한편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 가건물 1평,

그다음 해에는 지하 방 2개, 

그다음에는 2층 햇볕 드는 방 2개,

그다음 해에는 방 3개 이름은 아파트였던 곳까지. 


한 평 남짓한 곳에서 꿈을 키우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었다. 





결혼하고는 다시 시작이었다. 

샀던 집은 부모님이 살으셔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께 드리고, 다시 맨손으로 시작. 


500에 40부터 시작해서

신혼부부 임대주택, 전세임대,

그리고 이제 꿈에나 가능할까 생각했던 분양받은 새 집. 


20대부터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생각해보면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나의 공간은 한평 남 짓이다. 

그 한 평의 공간에서 나는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몸부림치며 열심히 살고 있다. 


방 3개에 알파룸까지 있는 넓은 집이지만, 나의 공간은 주방 앞 한 평 남짓. 


한 평 남짓. 


거기에서 나는 또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 


나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서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 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싱크대 앞 한평 남짓에서 꿈을 꾸며 꿈을 이루어가는 엄마들에게 칭찬과 위로,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하루를 성실하게 살 아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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