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나의 안색을 살피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엄마 말고 또 있을까? 신랑도 아프다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말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말을 잇지 못하는 선생님. 알고 보니 의사 선생님의 독일 양어머니가 메니에르 환자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빠지는 케이스. 청력손실이 심하게 왔고, 보청기를 해야 했지만 그분은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으셨단다. 20여 년간 메니에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힘든 것을 다 알고 있으셨다.
나 또한 메니에르 진단을 받고 고막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치료를 받았지만, 청력 손상은 막을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찾아오는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도 있다. 입덧을 하루 종일 하는 듯한 메스꺼움, 갑자기 찾아오는 어지러움에 바닥에 쓰러져 무릎, 손목을 다치기도 했다.
갑자기 내 손을 잡아주시는 의사 선생님.
외관으로는 너무나도 멀쩡하지만 나 혼자만이 아는 어지러움과 이명, 그리고 울렁거림, 약해진 청력은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사지 멀쩡한데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시간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을 때여서 소아과 의사 선생님의 말과 따스한 손은 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잘 자고 잘 먹고 푹 쉬어. 그리고 운전 절대로 하면 안 돼. 일도 하지 말고 알았지? 준이 아빠 돈 많이 벌어서 준이 엄마 일 시키지 말고."
갑자기 어지러움이 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운전도 하지 말고 일하러 나가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온전히 아이들 챙기고 밥 잘 챙겨 먹고 잠 푹 자는 일에만 매진하라는 것이다.
일주일 가량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오는 어지러움 증상은 아주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고 나니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건강을 지키는 것,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은 내 삶의 첫 번째가 되었다. 건강한 식단을 챙기고, 꾸준한 운동을 하고, 자는 시간 전후로는 핸드폰을 멀리하고 잘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말이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하셨지만, 메니에르 진단을 받고 난 이후로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온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같이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
귀가 잘 안 들리면, 못 알아 들었다고 말하고 다시 얘기해달라고 하면 되고, 어지러우면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존감도 같이 일으켜 세워졌다.
나는 분명히 건강해질 것이고 아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는 도전하고 성장한다.
나는 매일 성공하는 삶을 산다.
나는 나를 귀하게 여긴다.
매일 아침 외치는 긍정 확언 중의 몇 가지이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던 여러 가지 일들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아픈 것을 미안해하지 않고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엄마의 자리를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