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삼 남매 육아에서 자아를 발견하다.
엄마는 모두다 그런 줄 알았다.
엄마가 되면 과거에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왜 전공했던 그림은 안 그리는지, 집안일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안 하는지, 다른 엄마들처럼 예쁘게 하고 다니지 않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내가 바로 그 모습이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고무줄 달린 바지는 유니폼이었다. 헤어스타일은 늘 질끈 묶었고, 얼굴에는 볼터치보다 강한 기미 주근깨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은 손을 잡고 한 명은 업고 나머지 한 명은 유모차를 태워서 걸어가다가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흠칫 놀라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9센티미터의 높은 구두를 신고, 펜슬 스커트에 하늘하늘한 셔츠, 염색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 다녔는데, 그때 모습을 아는 사람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힘들게 첫 아이를 갖고 나서 감사하게도 줄줄이 연년생으로 아이를 셋이나 낳게 되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내가 넷째라고 막연히 넷은 낳아야지 했었다.
고마워서.
늦둥이로 나를 낳고도 예쁘다 귀하다 키워주셨던 엄마가 고마워서. 셋째까지 낳고 보니 아이 넷 키우는 것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5년을 임신, 출산, 모유수유가 반복되었다. 미용실 근처도 못 가고(덕분에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발 기부에 두 번 참여하게 되었다.) 몸무게는 늘었다가 조금 줄었다가 왕창 늘었다가를 반복하고, 취미 생활은커녕, 아침에 세수나 하면 다행이고, 샤워하는 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화장실에서 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은데.
아이를 오롯이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왜 이런 포인트에 폭발하는지 이해가지 않는 모습들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우울증인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혹은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숨겨진 자아가 이런 모습이었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결혼하기 전엔 몰랐던 내 모습, 아니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내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들 중심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을 갖기로 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인 '나'를 바꿔가기로 했다.
먼저, 한 아이 출산할 때마다 5킬로씩 남아있던 살, 그리고 막내를 낳고 세 자릿수를 찍은 몸무게를 줄여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마만이었을까? 나를 위한 상을 차린 것이. 부엌에 서서 밥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 앉아서 먹는 것만으로도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결혼 전 달고 살던 자기 계발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내 메마른 감성을 되살려줄 연애소설도 읽고, 육아에 대해 어디에도 물어볼 곳이 없어서 육아서도 읽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살피고, 아이들 육아에 대해 알아 갈 수 록 아이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다. 내가 이렇게 자기애,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희생이 아니라 아이도 성장하고 나도 성장하는 육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중요한 이 시간을 현명히 지내보려고 한다. 어떤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이가 어릴 때는 높이 뛰어오르기 위해 잠깐 웅크리고 있는 시기라고 했다. 개구리뒷다리가 접혀있고 웅크려져야 높이 뛸 수 있다고 말이다.
천천히, 하지만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나도 높이 뛰어오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