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아버지 강성범3
“우리 아들이 비 맞고 집에 갔다잖아!”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정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성범은 정양의 잔소리를 무시한 채, 간절하게 떠오르는 술 생각을 접으며 빈방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만큼은 취하고 싶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내 앞의 술잔만 생각하며 영혼을 갉아먹던 그때처럼.
간절한 술 생각을 접으며 소파에 널브러졌어도, 정양은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복도를 지나쳐 빈방까지 따라 들어와 드러누울 때까지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잔소리를 들어놓았다. 하도 애원하길래 차를 빌려줬더니 연락도 없고, 갑자기 비는 오지, 학원 끝난 애는 찬바람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다고 하지. 이제 곧 중간고사 기간인데 감기라도 걸려서 열나면 시험에 지장이 있고, 어쩌고저쩌고.
“다 큰 애인데 버스 타고 오면 되지. 꼭 차를 타야 해?”
성범의 반문에 정양이 기가 막힌 듯한 얼굴을 했다. 딸까지 잃은 아비의 심정을 생각해서 병원 진료까지 미루고 차를 빌려준 그녀였다. 소라가 죽은 그날, 성범을 가게로 불렀다는. 그래서 기어코 술을 먹이고 말았다는 약간의 죄책감도 있었기에.
“끝까지 미안하다고 안 하는 거 봐. 그러니까 제 마누라 도망치고 자식까지 죽지!”
끝내 참을 인을 삼키지 못한 정양의 입에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졌다. 그녀가 말을 끝나자마자, 마이크가 날아들었다. 벽에 부딪힌 무선 마이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귀를 찌르는 듯한 기계음에 놀라서 머리를 감싸 쥔 정양이 성범을 쳐다보았다.
겁먹은 눈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가득 찬 독기가 누굴 하나라도 죽일 기세였다. 마음을 가라앉힌 정양은 바닥을 뒹굴던 마이크를 잡았다. 전원도 켜보고, 동그란 은판을 손바닥으로 두들겨도 봤지만, 완전히 망가진 듯 반응이 없었다.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너 같은 새끼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데. 그렇지?”
마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정양이 빈손에 대신 예약 리모컨을 들었다. 마구 날아드는 리모컨을 손으로 막으며 성범이 몸을 움츠렸다. 하지 말라며 악도 써보고, 위협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정양은 그를 소파 구석에 몰아놓고 한참이나 매질을 했다.
정성범은 그런 하찮은 남자였다. 겉으로는 몸을 크게 부풀리며 으르렁 거려도, 막상 사람 하나 제대로 치지 못하는 나약해 빠진 인간. 정양은 복도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후에야 머리를 정리하며 나갔다. 기다리고 있으라는 경고를 한마디 남긴 채.
홀로 남은 성범이 방금 맞은 옆통수를 문지르며 소파에 늘어졌다. 얼룩진 천장이 꼭 자신의 인생 같았다. 비루하고, 초라한. 엿 같은 인생.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와 맥주를 목구멍에 들이붓고 싶었다. 그리하며 기도까지 막혀 완전하게 죽음을 맞이하길.
더는 우울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성범이 마이크를 들었다. 잠시 문을 연 그가 복도까지 울릴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성범은 당당하게 30분만 넣어달라며 외쳤다. 이윽고 노래방 기계에 안내 음성이 들리며 1시간이 들어와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성범이 짧게 웃었다. 정양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약한, 하잖은 인간.
성범은 망가진 마이크를 들고 기계 앞에 섰다. 5019를 누르자, 익숙한 반주와 함께 애국가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는 목이 터져라, 음정을 따라 불렀다. 애국가는 머리가 나빠서 유행가 가사도 잘 못 외우던 그가 선생님께 맞아가면서 외운 유일한 노래였다.
그렇게 4절까지 가사 한번 틀리지 않고 부르다 보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애국가를 아무리 불러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고, 마이크 대신에 술을 찾는 게 일상이 되었다. 술은 성범을 꼴통보다 더한 최악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성범이 그나마 성실하게 다니던 공사판을 끊고 매번 드나들던 술집의 웨이터가 되었을 땐 아내가 떠났다. 어린 소라와 둘이 남은 성범은 배신감과 공허함 또한 술로 채웠다. 웨이터로 일하면서도 손님이 남긴 술을 몰래 마시기 일쑤였다.
그때 함께 술을 훔쳐 먹던 이가 바로 정양이었다. 성범은 나이 많은 정양이 쫓겨나지 않게 웨이터의 능력을 다했고, 정양은 손님에게 받은 팁을 나누며 계속 가게에 붙어있었다. 그것도 잠시였지만. 나이를 먹는 이는 정양뿐이 아니었다. 더는 구닥다리 너스레가 통하지 않았고, 성범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손님들이 질색하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나란히 가게에서 정리되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소라에게 근근이라도 보내주던 용돈을 보내주지 못하게 된 건. 소라가 보육원에서 크는 동안에 성범은 속절없이 망가졌다. 가끔 술값이 떨어질 땐 정양의 노래방을 기웃거리며 손님이 남긴 술을 얻어 마시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도 정양은 대단한 엄마였다. 힘들어도 자식을 버리지 않고, 희생하는 진짜 엄마. 성범은 그래서 저양이 좋았고, 또한 그래서 정양이 밉기도 했다. 정양은 그에게 딸마저 떠날 게 분명하다며 장담했지만, 소라는 그러지 않았다. 원망하는 대신에 술에 절은 아버지를 일으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신.”
가게가 마감할 때까지 주야장천 애국가만 불러대는 성범의 마이크를 뺏은 정양이 성범을 쏘아봤다. 목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는데도, 성범은 마이크를 붙들고 있었다. 그녀가 지쳐서 비틀거리는 성범을 밀쳐내며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술잔 하나와 소주, 그리고 사이다와 강냉이가 그들의 아침이었다.
“너 마시라고 가져온 거 아니다. 나 마실 거야.”
술잔에 술을 따르며 정양이 말했다. 성범은 소주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갈증에 사이다를 따 마셨다. 목을 찌르는 듯한, 아찔한 통증에 바닥에 음료를 뱉어낸 성범에 정양이 등짝을 갈겼다.
“또! 사고만 쳐. 아주.”
“보리차 없어?”
“네 돈 주고 사 먹어.”
그녀의 핀잔에 그가 침 한번 꿀꺽 삼키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개를 옆으로 흔든 정양이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보육원 일을 물었다. 성범은 대답하지 않았고, 정양은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소라의 엄마. 아무리 제 자식 버리고 간 비정한 어미라고 해도 엄마는 엄마였다.
“원장이 그 여자 이야기를 하더라.”
“누구?”
"누구긴 누구야."
“하긴. 진짜 안 찾아볼 거야? 자식이 죽었는데 알리기는 해야지.”
“찾는다고 올까?”
그의 물음에 정양은 답하지 못했다.
“나는 소라가 죽어서도 버림받을까 봐 겁나. 그래서 못 하겠어.”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성범의 것은 아니었다.술 한잔을 비운 정양이 테이블에 차 키를 올려놨다. 아들 아침밥 챙겨주려면 서둘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놈의 밥,이라며 성범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 문을 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약속된 시간에는 꼭 돌아오라고 경고하며.
성범은 방을 나서는 정양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원피스 사이로 나온 두툼한 팔뚝도, 퍼진 엉덩이도, 어느 것 하나 과거 소라의 엄마보다 나을 게 없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똑바로 살기만 했어도 어쩌면 정양 못지않게 온전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을 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매정한 여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이 철철 흘러넘쳐서 성범을 불쌍히 여기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소라까지 낳았을지도. 한번은 성범이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나랑 왜 결혼했냐고, 무일푼에 부모까지 없는 천애 고아가 뭐가 좋아서 받아줬냐고 말이다.
잠깐 고민하던 소라의 엄마는 밥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허겁지겁 숟가락을 드는 모습이 짠해서, 어린 시절에 함께 해주지 못했음이 미안해서. 당시에 성범은 양손으로 밥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보육원 시절, 굶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빨리 먹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다.
종종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다 보면 비위 상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젓가락으로 집기 불편하면 손으로도 집어 먹기도 했으니까. 네 사람이 4개짜리 찐만두를 시켜도 나눠 먹을 줄 모르고 만두부터 먹어 치웠다. 동료들은 성범과 식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거친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왕성한 식욕 때문에 누군가는 그를 황소개구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 자주 가던 함바집에서 일하던 이가 바로 소라의 엄마였다. 식탐에 더는 참지 못한 동료가 멱살을 잡았을 때, 성범을 잡고 늘어지던 여자. 성범은 정말이지 잘해보고 싶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애초에 가족이란 걸 가져본 적 없던 사람이라서 모든 게 서툴렀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떤 책임을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철부지. 거기에 능력은 없으면서 욕심만 가득한 후진 인간이라는 게 드러나는 데에는 일 년도 걸리지 않았다.
성범은 살자, 우리 같이 살아, 아빠. 라고 말하던 소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동료와의 싸움을 말렸을 그때, 실수로 얼굴을 얻어맞고도 괜찮다며 따스하게 웃던 그 여자의 모습을 빼다 닮은 얼굴이었다. 미련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