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하찮은 아버지, 강성범2

by 김구일

원장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다. 애써 염색으로 세월을 가리고 싶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기품으로 흐르는 노년의 여성. 성범은 한때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었다. 마주 앉은 원장이 성범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발끝이 간지러워진 그는 무릎에 얹은 손을 그만 슬그머니 뒤로 물렸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성범의 마음은 어딘가 불편하기만 했다. 아마도 그녀가 매번 하는 밥에 대한 질문 때문이랴. 성범에게 밥이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일 뿐이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 친구들과 너스레를 떨며 마시는 소주 한잔에 국밥, 생일에 받는 미역국 등 소위 정이 담긴 밥상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성범에게 안식을 주는 건 밥이 아닌 술. 늘 무언가를 억누르기 위해 술을 찾았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지금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아오르려고 했다.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커피잔을 들었다. 벌컥벌컥, 세 모금 만에 마셔버린 커피에 텅 빈 잔을 바라보던 원장이 작은 탁자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소라가 작년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가져왔던 목도리였다.

“이거‥.”

“네가 찾아오면 주라고 맡겼단다.”

"원장님께요?"

"여길 올 줄 알았나보지."

원장은 그 옛날, 어린 성범에게 사탕을 건네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이 그녀가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가 건넨 목도리를 얼떨결에 손안에 쥔 그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비도 모자라서 자식까지 이 보육원에서 키워낸 원장에게 꼭 못 볼 꼴을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색이 예쁘네. 꼭 소라를 닮았어."

"그러게요."

“한번 둘러 봐. 직접 짠 거 같은데.”

“무슨요.”

부정적인 대답에 원장이 성범을 빤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에 거부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몰아치는 듯했다. 성범은 못 이기는 척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목에 닿는 촉감이 까글거렸지만, 따듯했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그가 목도리를 훌렁 벗어 자리 옆에 두며 물었다.

“소라는 어땠나요? 그러니까 여기서요.”

“부모가 애 크는 거 보는 건 당연한 건데, 여기로 애를 보내는 부모들은 그 당연한 거조차 누리지 못하니 얼마나 안쓰러워.”

돌아온 질책 어린 말에 성범은 할 말을 잃었다. 애써 그녀의 말을 흘려넘긴 성범이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소라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찾은 사진이었다. 오래되어 모서리가 헤져버린 사진속에는 소라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왜?”

“그중에 소라랑 친했던 애들이 있었나요? 교우관계는 영 몰라서요.”

사진을 자세히 보던 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노안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새였다.

“가만히 있어 보자. 나이가 들면 오래전 기억이 자꾸 사라져. 너도 알다시피 보육원을 거쳐간 아이들이 좀 많아야지."

자리에서 일어난 원장이 책상 뒤의 책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두꺼운 서류철을 가져온 그녀가 제자리에 앉았다. 돋보기를 낀 채로 페이지를 넘기는 원장의 손길에 증명사진으로 남은 원생들의 얼굴이 차례로 지나갔다. 성범은 가만히 서류를 응시하며 딸의 얼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소라를 맡길 때, 그는 아직 20대 초반의 철없는 청년이었다. 공사 현장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까맣게 타버린 얼굴에 세탁도 하지 않은 옷을 대충 주워입고 나간 꼴이란. 그런데도 원장은 성범의 지저분한 얼굴을 정성스레 쓰다듬었더랬다. 그 시절의 성범이 생각하기에 원장의 손길은 같잖은 동정이었지만.

무례한 태도로 그녀의 손을 쳐내던 아빠를 소라는 불안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고, 그것이 부녀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네가 처음 소라를 데려왔을 때 천사를 보는 줄 알았어. 어쩜 생긴 게 그리도 순하고 예쁜지. 방긋방긋 웃는 얼굴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지.”

“저를 안 닮아서요.”

“무슨. 내가 보니 아빠 판박이구먼. 네 어렸을 때랑 똑같다.”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안경 너머로 웃음 짓는 원장에 성범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성범이 오늘 보육원부터 찾은 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늠이 서질 않아서였다. 주변 사람들의 표현대로 술만 퍼먹고 다녔지, 딸에 대하여 아는 것도,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여기 있네.”

이윽고 소라의 기록 카드를 찾은 원장이 파일을 내밀었다. 증명사진에 담긴, 10살의 소라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억 난다. 소라는 늘 잘했어. 잘 먹고, 잘 자고, 잘 어울리고. 봉사자들이 오면 소라만 챙기는 통에 아이들이 가끔 질투할 정도였지, 아마?"

성범에게 말을 건네며 카드를 훑던 원장의 시선 끝에 교우 관계란이 보였다. 김현우라고 쓰인 정갈한 글씨를 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던 그녀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작게 감탄을 흘렸다. 동시에 현우라는 이름을 확인한 성범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이름에 초조한 마음에 혀로 입술만 축이고 있었다.

“그런데 소라 친구들은 왜?”

안경너머로 원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느껴진 성범이 멈칫했다. 원장은 그를 불쌍히 여겼으나, 신뢰하지는 않았다.

“여기 김현우가 있나요? 이 애 맞아요?”

성범이 누군가를 콕 찝어 물어봤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열댓 명 정도 되어 보였다. 소라는 맨 왼편, 나무 기둥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그런 소라의 옆에 앉은 남자아이가 현우인 것 같았다. 그냥 감이 그랬다. 목덜미를 살짝 덮는 긴 커트 머리에 앞머리가 눈가를 가리고 있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풍기는 분위기가 아이답지 않게 우울해 보이는 인상의 아이에게서 어쩐지 찝찝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성범이 그간 소라와 나눴던 대화를 돌이켜 보려고 애썼다. 흔한 이름이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 같은…. 고심하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소라가 면회를 왔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아버님 앞으로 퀵서비스가 왔더라고요.'

그날, 면회실을 찾은 간호사가 그랬다. 김현우라는 분이 스프링 노트를 보냈는데, 스프링 노트는 반입금지 물품이라며. 갈 때 찾아가라는 말에 소라는 한참이나 멍하니 간호사가 떠난 자리를 응시했더랬다. 뭐가 그리도 허망한지 멍하니 서 있던 딸의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맞냐고요!”

“이유를 먼저 말해. 왜 찾고 싶은지.”

“소라 장례 치르면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라도 불러야 하잖아요.”

“네가 장례를 치른다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조문을 가마."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요. 알려주세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대체 왜 소라 장례는 치르지 않는 거니? 비용 때문에 그래?”

“사정이 있어요.”

“무슨 사정? 소라 엄마 찾으려고 하는 거야?”

“그 사람 이야기를 왜 하세요?”

“성범아.”

“그냥 좀 알려달라고요!”

성질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성범에 원장이 멈칫했다. 그녀는 표정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사고의 시발점이 되는 순간을. 지금의 성범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할 때가 딱 그랬다.

“거기 서서 이야기해.”

“아무 짓도 안해요. 그냥, 정말로 소라를 위해서라고요.”

“지금 네 얼굴 좀 봐라.”

차분하게 답하는 원장에 성범이 홱 고개를 돌렸다.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표독스럽기 짝이 없었다. 특히나 이런 얼굴이라면. 소라가 모아놓은 얼마간의 돈과 수급비로 해결하기도 급급한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원장님. 저요, 평생을 소라 괴롭히면서 살았어요. 그날도… 아비란 놈이 술이나 처먹고 앉아서 낄낄거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평생 속죄하며 살아.”

“속죄할게요. 근데 저요, 딸한테 조금이라도 빚 갚아야 해요. 내가 아빠라고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온갖 아르바이트에 뒷바라지에. 그런데 정작 소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했더라고요. 제가 궁금한 건 단지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을 이는 누구일지 정도에요. 이젠 정말 하나만이라도 해주고 싶어요. 살아서는 해주지 못한 아비 노릇, 딱 하나만이라도 해주고 싶다고요. 도와주세요. 제발요.”

성범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가슴 부근을 내려쳤다. 소라가 편지를 남겼다. 쥐뿔도 없는 아빠에게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그 파렴치한을 잡아달라며. 만약 소라가 죽던 그날에 소라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더라면, 그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지는 않았을 거다. 자의든, 타의든. 그러니 빈 손으로 보육원을 나설 수 없었다.

찰나의 침묵 끝에 원장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또한 보육원에서 자란 부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성범이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살아온 인생까지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소라를 위한 일이라고는 해도 최소한의 확인은 필요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원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보육원에 간호사가 있어. 원래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바람에 대체자로 들어왔는데, 어쨌든 그 선생이 소라를 잘 알 거야. 한번 물어볼게.”

“그냥 김현우라는 아이랑 연락 닿게 해주시면 안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 선생님한테 한번 물어 봐.”

“하지만,”

“물어보고 연락줄게. 알았니?”

원장이 힘주어 말했다. 그녀의 단호함에 성범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었다. 그도 충분히 알고있는 사실이었지만,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 원장에게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로, 겨우 목도리만 쥐고 보육원을 나온 성범이 주차해 놓은 소형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자마자 조수석에 던져놓은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자신이 겪었던 모멸감, 소외감은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었기에 느껴졌던 감정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잘 알면서도 소라를 방치해버린 자신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시발!”

그가 참지 못하고 쥔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다. 긴 경적이 포효하듯이 보육원 전체를 울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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