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하찮은 아버지, 강성범

by 김구일

성범은 노트에 적힌 문장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정갈하지 못한 글씨가 칼춤을 추는 망나니처럼 보였다. 붉은 물감, 이라고 했다. 딸의 몸에 든 멍과 피는 물감으로, 몽둥이는 붓으로, 절규는 환희로 표현한 거다. 너무도 아름답게.

무식한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었다. 유언장도 없이 한순간에 강물에 쓸려간 딸이 유일하게 남긴 건 이 편지뿐이었으니까. 처음에는 편지에 쓰인 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공사판을 전전하던 소위 ‘가방끈 짧은’ 놈이었고, 온갖 미사여구로 꾸며낸 문장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딸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성범은 이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처음에는 딸이 남긴 유언장인 줄 알았다. 평생을 살면서 딸이 필체 한번 본 적 없던 그였다. 당연히 딸이 남긴 것이겠거니, 생각한 그의 마음속에 의심이 피어난 건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 때문이었다.

‘소라야, 언제까지 널 용서해야 하는 거야.’

그 한 문장이 성범의 마음속에 콱 박혔다. 그는 여태껏 쉽게도 용서, 라는 관용을 받아들여야 했고 반대로 비굴하게 용서를 바라야 했다. 다 큰 어른이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빌며 자신보다 더 어린 사람들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이란.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비루한 삶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자신의 모습과 소라의 말간 얼굴이 겹쳐보였던 성범은 단어 하나라도 곱씹으며 뜻을 해석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학교 다닐 땐 칠판만 보아도 하품을 쏟아내던 인간이라 한 문장만 읽어도 집중력을 잃기 일쑤였지만,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했다. 궤변이라고 표현하기도 아까울 만큼의 쓰레기 같은 문장이 자신의 딸인 소라를 괴롭히고 있었음을. 이 편지는 딸이 쓴 게 아니었다. 어쩌면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진 이유도 이 문장을 휘갈긴 그놈 때문일지도 몰랐다. 죽음보다 더 끔찍했을 속박과 구속 말이다.

“개새끼.”

욕설을 내뱉은 성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라도 편지를 찢을 준비가 되었던 손이 힘없이 땅바닥으로 내려앉은 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킨 후였다. 이것마저 잃는다면 어쩌면 딸을 죽였을 지도 모를 범인을 잡을 유일한 단서를 잃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성범은 작년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잖아요, 하고 수줍게 웃는 딸의 얼굴을.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얼굴에는 발그레하게 홍조가 올라있었다. 성범은 흐리멍덩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캐럴이 흐르는 로비와 벽에 그려 놓은 크리스마스트리 따위에 흥분한 사람들이 시시콜콜 떠들고 있었다. 보통 크리스마스트리라고 하면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전구가 달린, 화려한 나무를 상상하겠지만, 폐쇄병동은 달랐다. 혹여나 위협적인 무기 또는 자해의 도구가 될 수 있기에 벽에 그려 놓은 그림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림 앞에 선 성범은 술 생각이 간절히 났다. 하는 수만 있다면 산타에게 빌어서라도 술 한 모금만 마시고 싶었다. 아빠를 위해서 생수병 안에 몰래 소주라도 가져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던 찰나에 소라가 건넨 선물은 루돌프가 그려진 포장지에 싸인 작은 덩어리였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성범에도 소라는 밝게 웃었다. 그런 아이였다. 제 속이 곪아 터졌어도 병적으로 보일 만큼 상대의 기분을 신경 쓰는, 그래서 투정 한번 해보지 못한 착한 아이. 그래서 더욱 가여운 아이. 그걸 알면서도 성범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포장지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도, 소라의 얼굴 뒤로 보이는 거무죽죽한 철장도, 술을 마실 권리와 자유를 빼앗은 이곳도, 따뜻한 조명도, 신나는 캐럴도, 화려하게 빛나는 트리도,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킨 딸도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욕설과 함께 손을 주체하지 못한 비정한 아비의 손바닥이 딸의 머리통을 갈기고 말았다. 긴 머리카락에 휩싸인 소라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에 성범은 그런 생각을 했다. 딸은 지금 자신을 원망할까, 질책할까, 경멸할까.

이윽고 머리카락을 정리한 소라의 얼굴에 보인 감정은 슬픔이었다. 모른 척 눈물을 닦아내며 기어코 웃어 보이는 딸의 얼굴에 성범은 가슴이 철렁했다. 슬픔이 가신 소라의 얼굴에 얽힌 감정은 포기였기에. 성범을 감싸 안은 보호사를 두고 소라가 포장지에서 꺼낸 건, 목도리였다.

“아빠. 다음 크리스마에는 손 잡고 산책하자.”

억지로 웃던 딸아이의 모습은 젊었을 적의 자신보다도 그늘져 있었다.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버지를 힘들게 건사하며 죽지 못해 사는,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처럼. 성범 또한 몸뚱이 하나 믿고 불도저처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비빌 부모도, 긴 가방끈도 없었지만, 뭐든 해낼 만한 자신이 있었던 시절. 사랑만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낭만과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르며 아이 기저귓값을 벌던 패기로 똘똘 뭉쳤던 나날들. 그 시절의 성범은 소라를 위해 살았다.

꼬물거리는 저 아이가 날개를 펼칠 날에 디딤돌이 되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소망하며. 적어도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른 성범은 목도리를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소라는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조용히 떨어진 목도리를 주웠다.

“개새끼.”

편지를 뒤집은 성범이 앉은뱅이 상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이제는 중고상점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낡고 낮은 키의 냉장고에는 술병만이 가득했다. 술병 하나를 꺼낸 그가 뚜껑을 땄다. 초록색 병에 담긴 맑은 액체는 금방 비워졌다.

마신 건 아니었다. 싱크대에 버린 거였다. 그렇게라도 술을 마시고 싶던 충동을 참아낸 그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처음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헛웃음이 나왔다. 상황이 믿기질 않아서였다. 설마 내 딸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는 의심에 그저 경찰이 알려준 병원으로 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퍼렇게 질려버린 딸의 얼굴을 마주하자 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했다. 팔다리에 힘줘봐도 견딜 수 없는, 그렇다고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고통. 경찰이 소라의 사인을 이야기했다. 익사라고 했다. 성범은 경찰의 시선에 불뚝 수치스러움이 솟았다.

하필이면 비가 온 뒤라서 불어난 강물에 신속히 구조를 하지 못했다며 죄송하다는 말끝에 경찰이 본론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장례를 치르기 어렵습니다.”

“수사 결과라니요?”

“그게… 극단적 선택이라고 보고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어서요.”

경찰이 그를 기민하게 보았다. 성범이 숱하게 의심받아 올 때마다 타인에게 받았던 눈빛이기도 했다. 경찰은 딸이 죽은 날 밤에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 밤, 손님이 남긴 비싼 양주가 있다는 지인의 연락에 성범은 한달음에 달려갔더랬다.

폐쇄병동에서 퇴원하며 곱씹은 다짐과 고생했다는 딸의 격려는 잊은 지 오래였다. 딸에게 온 전화도 받지 못하고 인사불성이 된 채로, 그렇게 쓰레기처럼.

“지금 내가 내 딸을 죽였다는 거야?”

딱히 다른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성범이 먼저 경찰의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렸다. 자신이 딸을 죽일 만큼 인간 같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냐고 따지며. 또 다른 경찰과 의사마저 뛰쳐나와 말리고서야 상황이 종결됐다. 잔뜩 흥분해 보이는 성범과 달리 평정심을 찾은 경찰은 구겨진 셔츠의 깃을 바르게 폈을 뿐이었다.

"선생님이야 말로 왜 그렇게 흥분하시는 겁니까?"

경찰이 되물었다. 성범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상식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그물처럼 촘촘히 조여오는 그들의 눈빛에 성범은 더는 역정 내지 못했다. 결국 딸이 죽던 밤에 함께 있었던 정양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고, 정양의 증언과 가게 CCTV 영상이 알리바이가 되어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함께 영안실로 향했다. 누군가의 애도의 말과 함께 소라를 덮어두었던 천이 걷혔다. 소라의 몸이 보였다. 잔뜩 멍들고 상처가 난 몸이. 성범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건 폭력의 흔적이었다. 그것도 무자비하게 휘두른. 흔들리는 눈으로 경찰과 마주한 성범이 그제야 인정했다.

강성범은 딸이 죽었음에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 한심하고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후로 경찰의 간단한 질문 몇 개에 답하고는 소라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성범은 그대로 무너졌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스물넷의 여자애 방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가구 하나 없이 앉은뱅이 상만 덩그러니 놓인 거실에 곰팡이가 가득 핀 방이었다.

소라는 그 방에서 먹고, 자며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치료비까지 내야 했다. 종이가방을 알뜰하게 모아놓은, 헤진 상자의 밑바닥에서 그 편지를 발견하고 오늘에 이르렀을 때. 그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문장의 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 사랑받지 못해본 딸은 주눅이 든 거였다. 자신을 괴롭히는 폭언과 폭력이 관심과 사랑인 줄 착각할 만큼이나 말이다. 성범이 허망한 얼굴로 생전에 딸이 앉아있었을 앉은뱅이 식탁을 응시했다. 알고 있었다. 무릎 꿇은 소라가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이는 바로 아빠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끝내 놓지 못한 썩은 동아줄인 하찮은 아비가 소라를 물밑으로 떨어지게 했다는 것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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