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김현우

by 김구일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바깥으로 나온 카페 점원의 말에 성범이 담배를 비벼 껐다. 점원은 성범의 앞에서 보란 듯이 꽁초를 주웠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성범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섰다. 괜스레 짜증이 났다. 그 옛날, 돈이 없어서 남이 담배꽁초를 버리기만 기다렸던 시절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때는 적어도 내가 선 자리가 흡연 구역이었다. 한데 지금은 담배를 피울 자리를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녀야 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눈치 보며 피워야 한다니. 카페에 도착해서도 성범은 청결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주문할 때부터 불뚝 짜증이 치솟아서 담배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그놈의 키오스크. 손님도 없는데 주문 좀 받아주면 어떤가. 불퉁한 얼굴로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하라는 말에 민망해졌고, 한참이나 메뉴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뒤에 손님이 오는 바람에 창피했고, 한숨을 쉰 직원이 나와 딱딱한 말투로 메뉴를 물었을 때 초라해졌고, 이윽고 키오스크라는 망할 기계에서 영수증이 나왔을 때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러니까 소라의 친구를 만나기 전에 담배를 피운 건 모두 기계 때문이라는 거다. 그런데 담배 한 개비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게 하니 원, 시대의 정이 사라졌다 싶은 성범이었다. 화를 삭인 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어젯밤, 성범은 보육원 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소라를 잘 안다는 그 간호사가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했단다. 김현우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아서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물꼬는 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워 뒤척이던 소라의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샤워였다. 평소에 머리도 잘 감지 않던 그는 샴푸질을 두 번씩이나 했다. 혹여라도 몸에서 쉰 내가 날까 봐 옷도 미리 빨아두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옷 중에 가장 깨끗하고 비싼 옷을 골라 입었다.

전에 정양이 동묘 시장에서 사준 셔츠와 점퍼였다. 그때 동묘를 왜 갔더라. 그래, 동네 노래방에 여자사장이라고 우습게 보고 외상값 떼먹은 악질 손님이 동묘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다. 종일 쫑알거리는 정양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가 함께 나섰다. 덩치가 크거나, 싸움을 잘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술만 먹으면 무적이 되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었으니. 그날도 정양이 제공한 소주를 잔뜩 마시고 가게로 향했다. 술냄새가 풀풀 풍기는 허름한 남자가 망치를 손에 쥐고 쌍욕을 퍼부으며 외상값 갚으라고 난리를 피우니 진짜 쌩 양아치 앞에서 한낱 평범한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외상값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정양에게 성범은 4,000원짜리 짜장면 한그릇 얻어 먹고 오늘 챙겨 입은 옷까지 받아냈더랬다. 그게 벌써 작년 일이었다. 제 자식은 어느 놈에게 붙잡혀 말라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엄한 놈한테 가서 행패부리던 한심한 인간의 나날이었다.

“권성범씨?”

옷에 코를 묻고 킁킁거리던 성범을 누군가가 붙들었다. 뒤돌아보니 소라와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가 오도카니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보다 새카맣게 어린 여자애가 자신을 씨,라는 호칭으로 불렀다는 사실이었다.

“저 소라 동창이에요. 보육원 간호사.”

약간 얼이 빠진 듯이 보이는 성범에 비해 간호사는 퍽 당당해 보였다.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든 그녀가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성범이 뒤쫓아갔다. 친구의 아빠로서 성범이 음료값을 대신 내고자 했지만, 이미 메뉴를 누른 간호사는 카드를 내미는 성범을 저지했다.

“제가 마실 건 제가 낼게요.”

민망할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하는 그녀에 성범은 머쓱한 손길을 거뒀다.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 만약에 소라도 이 애처럼 살았다면 적어도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만약 이 애가 내 딸이었다면 자신을 얼마나 경멸에 찬 눈으로 보았을 지 눈에 빤히 그려졌다.

음료가 나오면 받아서 가겠다는 그녀의 말에 성범이 먼저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스로 시킨다는 걸 뜨거운 걸로 잘 못 말해 나온 아메리카노는 이미 다 식어버렸다. 이윽고 커피를 들고 온 윤주가 성범을 마주보고 앉았다. 잠시만 이어진 침묵에 성범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간호사라고? 훌륭하네. 부모님이 아주 뿌듯하시겠어.”

칭찬으로 시작한 대화에 성범은 나름 흡족했지만, 상대는 불쾌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기분을 읽지 못한 성범은 계속해서 본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포석을 깔기시작했다. 보육원에서 언제부터 일했는지, 어쩌다가 보육원에 가게 되었는지, 간호사는 월급 많이 받냐는 질문까지.

“본론만 말하세요. 반말은 삼가시고요.”

그의 질문에 단 한 가지도 답하지 않던 그녀가 말했다. 사실 성범은 자신을 권성범씨, 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돌한 얼굴을 보면 이미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성질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제 앞에 놓인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리는 걸로 감정을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께 들었는데 소라를 잘 안다고요. 친했어?”

“조금요.”

“소라 소식은 알죠?”

“네.”

“소라가 나한테 편지를 남겼어요.”

“유서 같은 건가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성범은 그렇다고 했다. 이 애에게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기도 복잡했을 뿐더러 얼떨결에 동의하고 말았다. 유서, 라고 짧게 되뇌이는 간호사의 얼굴에 왠지 냉기가 감돌았다. 점차 이상한 기분이 든 성범은 빤히 그녀를 응시했다.

부릅 뜬 그의 눈동자에 그녀가 온전히 담겼다. 혼혈이라고 생각될 만큼 하얀 피부에, 밝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인형처럼 예쁜 외모였다. 그러나 어딘가 싸늘해 보이는 이미지는 표정이 없어서 그런 건가. 혹시 무언가를 알고 있겠다는 기대감에 성범이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원장에게 보여줬던 그 사진 속, 소라 옆에 앉은 남자아이를 가리킨 성범이 김현우가 맞냐고 물었다. 한참 사진을 응시하던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몸 어딘가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김현우가 소라의 죽음과 깊이 연관되어있다는 추측이 곧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현우라는 애랑 우리 소라랑 사겼죠?"

“권성범씨.”

그녀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잔뜩 흥분한 성범을 불렀다. 파도가 밀려오기 전, 고요한 바다와 같은 목소리였다.

“자식에 대해 잘 알아요?”

성범은 대답 대신에 자신의 컵을 응시했다. 더는 마셔버릴 커피도 없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소라의 동창이라는 간호사가 대놓고 비치는 적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순간 성범의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원장에게 무슨 말이라도 듣고 온 건가? 그래서 자신을 이렇게 하대하는 건가? 싶어서.

“아가씨. 도를 넘네.”

“김윤주에요. 제 이름.”

“윤주고 나발이고….”

“돈 빌렸어요. 권소라가.”

윤주가 성범을 빤히 응시했다. 자, 이제 어떡할래? 하며 그를 시험하는 듯한 태도였다. 방금의 기세가 우습게도, 성범은 돈이라는 말이 얼어붙고 말았다. 원래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게 빚쟁이라고 했던가. 설마 이 자리도 돈을 받아내기 위한 수작에 불과했던가, 하는 불안감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성범은 돈이 없었으니까.

"저한테는 아니고요. 김현우한테요."

태연스럽게 뒷 말을 덧붙인 윤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자그마한 글씨에 적힌 이름에 김현우라는 글자가 찍혀있었다. 그러나 성범은 선뜻 그 명함을 받을 수 없었다. 그간의 호기로웠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머릿속에는 오직 '돈'생각 뿐이었다.

만약 김현우가 보냈다던 그 택배가 빚쟁이가 보낸 택배였다면?

한가지 다행이라면 윤주가 건넨 명함 속 상호명이 대부업체가 아닌, 평범한 카페라는 거다. 명함과 함께 사진을 안주머니에 넣은 성범이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짧게 남겼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보육원에서 나왔던 그날처럼 정신없이 카페를 나선 성범은 그대로 차를 타고 떠났다.

홀로 남은 윤주는 창가를 응시했다. 카페로 나오기 전에 원장은 꼭 나가야겠냐며 윤주를 말렸다. 소라의 아빠가 다소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으니 꼭 사람 많은 곳에서 만나라며 몇 번이고 당부도 남겼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볼품없어 보이는 행색 때문이었을까.

윤주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가 피곤하다는 얼굴로 사지를 쭉 늘어뜨렸다. 천장에 돌아가는 팬을 보고 있자니, 학창 시절의 권소라가 떠올랐다. 권소라는 뭐랄까. 알맹이를 보는 아이였다. 뭐든 편견 없이 본질만 보던 아이.

“그래서 남자들이 좋아했나?”

혼잣말을 내뱉은 그녀가 홀로 피식 웃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아직 넉넉하게 남은 시각이었다. 오늘의 점심은 음료 두 잔이 전부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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