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김현우 2

by 김구일

“이 년이 사람을 가지고 노네?”

정양의 말이었다. 윤주가 일러준 카페로 향하는 길에 성범은 정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판단이 서질 않아서였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서 길을 빙빙 도는 시간이 고마울 지경으로 성범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앞서 윤주와의 대화를 전해 들은 정양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기싸움이라도 하려는 듯이 굴었다. 뒤틀린 속을 생수로 달래며 성범은 정양의 조언을 들었다. 그녀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쪽이었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냐며.

평소의 성범이었다면 피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소라가 빚을 졌다면 자신이 책임질 일이었다. 장례식장까지 쫓아와서 깽판을 놓는 모습을 보일바에는 그 어떤 수치라도 홀로 견디는 편이 나았으니까. 이런 성범의 말에 정양은 이렇게 말했다. 진즉 좀 그렇게 하지 그랬어.

그러나 결심과 달리 주머니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김현우가 운영한다는 카페에 도착한 성범은 키오스트가 아닌 대면 주문이라는 사실에 안도했으나 커피값으로 쓴 10,000원이 아까워서 아까워서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그는 속으로 남은 돈을 계산했다. 정양의 차에 남은 기름은 불과 교산에서 남양주 톨게이트까지 통과할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기름 안 채워서 가면 또 지랄할 텐데.”

한숨을 내쉰 성범이 빨대를 쪽 빨았다. 아껴먹는다고 아껴먹었으나, 벌써 반절이나 줄어들어있었다. 정양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려면 곧 출발해야 했지만, 사장은 코빼기도 보일 기미가 없었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는 가게 번호였으니 메시지를 남길 수도 없었다.

커피를 아껴마신 보람도 없이 어느새 잔은 바닥을 보였다. 인내심이 바닥난 성범이 카운터로 향했다. 그의 부름에 카운터 뒤쪽에서 나온 아르바이트생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당당하게 사장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성범에 그는 고민해 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말했다.

그 뒤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놈의 개인정보! 성범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까지 하자,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 바깥으로 나왔다.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할 기세였다. 그 모습에 한풀 꺾인 성범이 은근슬쩍 카페를 나가려던 찰나, 큰 키에 안경을 쓴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를 알아본 아르바이트생이 사장님! 하며 불렀다. 남자가 아르바이트생과 성범을 번갈아 봤다. 이미 기다리는 동안에 머릿속으로 현우와 맞닥뜨리는 모습을 설계해 본 성범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김현우요? 나 소라 아빠 되는 사람이요.”

살짝 주눅이 든 채로 묻는 성범에 현우가 움찔했다. 그의 반응에 성범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놈도 우리 소라한테 잘못한 게 있구나. 그래서 이름만으로 멈칫하는구나 하는. 그다음에는 일사천리였다.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자리 잡은 그가 독사 같은 눈을 하고는 현우를 보려 봤다.

뭣 때문에 기세가 등등해진 건지. 아르바이트생은 도로 자리에 앉은 아저씨를 당장이라도 쫓아내고 싶었지만, 어쩐지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통에 짜증을 삼켜야 했다. 윤주와 그랬던 것처럼 성범과 현우도 마주 보고 앉았다. 아르바이트생이 새롭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까지 그들은 말이 없었다.

성범은 현우를 가늠했고, 현우는 시선을 내리깐 채로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이윽고 주머니를 뒤진 성범이 사진을 내려놓았다. 원장과 윤주에게 보여준 사진이었다.

“소라 옆에 너 맞아?”

“네.”

“소라랑 교제했었고?”

“네.”

“언제?”

“….”

“왜 대답을 못 해?”

천천히 고개를 든 현우의 눈동자에 근심이 깔려있었다.

“소라는 장례를 치렀나요?”

“…이 개새끼야!”

별안간 눈을 부라린 성범이 현우를 덮쳤다. 현우의 시인하는 태도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원형 테이블이 옆으로 밀려나며 사진이 어딘가에 떨어졌다. 동시에 현우가 앉은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가까운 곳에서 들린 비명을 뒤로하고 성범이 현우의 멱살을 쥐었다.

현우는 기침을 내면서도 딱히 반격하지 않은 채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성범은 이 순간을 숱하게 그려왔다. 소라를 죽음으로 몰아간 그놈을 만나기만 한다면 딸의 고통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크게 패 죽여버릴 것이라며 다짐했었다. 현우의 얼굴을 한 대 치자마자,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와 성범의 팔을 붙들었다.

“네가 내 딸을 죽였어. 네가!”

일순 카페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성범의 울먹임에 스스로 몸을 일으킨 현우가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깊이 숙여 인사하는 얼굴에 죄책감이 어려있었다.

“소라가 저 때문에 힘들어 한 건 맞지만, 제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애를 그렇게나 패 놓고. 인간이면 절대 그런 짓을 할 수 없어.”

“여기서 일했어요.”

“뭐?”

“마지막 소라의 직장이 여기였다고요.”

성범의 귓가에 경찰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마지막 직장이 카페였다는 말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가 주춤한 사이, 아르바이트생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얼굴로 성범을 꽉 붙든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미 성범의 몸은 힘이 풀린 상태였다.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어요. 정말, 그런 줄 알았다고요.”

그런 성범의 앞에 현우가 허리를 숙인 채로 가쁜 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 성범은 그제야 현우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현우는 냉혈한도, 사이코도 아니었다. 그저 스물넷 짜리 어린 남자애일 뿐이었다.


****


“오늘 소라 아버지 만났어.”

현우의 말에 윤주가 젓가락을 놓았다. 먹던 그릇에는 초밥의 밥알 뭉치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 현우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밥알이 어쩐지 신경 쓰였다. 윤주의 등 뒤로 널브러진 종이가방들도. 윤주는 화가 나면 뭐든 넘치게 샀다.

옷도, 가방도, 그릇도 심지어 물티슈 같은 생필품까지 말이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으니 현우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아직 부부도 아닌, 동거하는 연인 사이일 뿐이었으니 크게 상관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넘치는 물건이 옷방을 넘어 서재까지 잠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도와달라고 하셔. 소라의 남자친구가 누구였는지 찾는 거.”

“걔 원래 남자 많았잖아. 그중에 한 명이겠지.”

“그런 애 아니야.”

“뭐라고?”

“그냥, 소라는 누구에게나 친절했을 뿐이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더 말하려던 윤주가 한숨과 함께 짜증을 삼켰다. 현우는 애써 윤주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그녀가 남긴 밥알을 집었다. 소라는 언제나 밥을 남기지 않았다. 초등학생일 때 배운 예절을 실천하듯이 먹을 만큼만 푸고, 잔반까지 감사히 먹었다.

“왜 먹던 걸 먹어!”

뭐든 취향대로 좋은 것만 골라 먹는 윤주와 다르게. 자신이 먹던 음식을 집어 먹는 현우가 보기 싫었던지 윤주가 그릇을 옆으로 치우며 턱을 까딱했다. 현우 몫으로 내놓은 그릇이나 비우라는 뜻이었다. 휴지로 손가락을 닦은 현우는 젓가락 대신 컵을 들었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윤주가 물었다. 정성범이 그 사람을 찾을 자격이 있냐고. 소라를 죽인 사람은 결국 무능하고 한심한 제 아비를 뿐이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현우에 윤주는 비명을 질렀다. 그 또한 이유 없이 화가 나면 지르는 비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쇼핑해 온 물건들을 한가득 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현우가 비어버린 컵에 맥주를 따랐다. 자격, 이라고 한다면 자신에게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그 애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그것도 이런 방식으로? 곁에 있는 윤주까지 상처 주며. 겁먹어서 소라의 아버지에게 변명하긴 했지만, 소라의 죽음으로부터 자신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우와 소라는 처음 보육원에서 만났다. 소라는 누구보다 사랑에 목마른 아이였다.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모를, 자신을 사랑으로 꽉꽉 채워 터져 죽는 게 소원이라며 무던히 애를 쓰던 아이. 보육원에 봉사 온 사람들이 금방 떠나가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불리려고 눈앞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소라는 사랑받은 법을 알고 있었다. 사랑, 아니 동정받는 일은 간단했다. 예의 바르고, 울지 않으며, 더 불쌍할 것.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끈기가 없었다. 조금만 질리면 싫증을 냈다. 하나의 사랑이 사라지면, 그 애의 마음에는 한기가 돌았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는 날이면 웃는다고 했다. 히죽이는 게 아프다는 말보다 사랑받기 유리한 선택이었다. 어른들은 소라를 영악한 아이라고 했다. 아이답지 않은, 태연하고 의연한 모습에 낯짝이 두꺼워서 그렇다고 수군거렸다.

아이들은 대놓고 놀렸다. 소라는 모르는 듯했지만, 관심받고 싶어서 발악하는 어린애를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우는 안도했다. 모두에게 미움받는 소라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 같아서. 비록 부모도 잃고, 집도 잃고, 친구들도 잃었다고 하지만 나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이 있어서. 소라를 보고 있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부터 현우와 소라는 사랑도 우정도 아닌, 동정을 나눴다. 소라는 웃어서 생긴 간식과 물건을 나와 나눴다. 현우는 그딴 물건은 싫다고 밀어내다가 결국은 함께 먹고, 함께 썼다. 그런데 갑자기 현우에게 조부모라는 사람들이 찾아온 거다.

잘 가, 현우가 떠나는 순간에도 소라는 웃었다. 현우는 웃지 말라고 했다. 서운하고 슬픈 감정이 빤히 보이는데도 억지로 웃는 그 애가 안타까워서. 떠나면서 할머니가 운영한다던 식당 주소를 알려줬다. 보육원에서 충분히 버스로 이동 가능한 거리였다.

그러나 소라는 현우에게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후에 그들이 같은 학교에 배정받으며 다시 만났을 때, 물었다. 왜 찾아오지 않았냐고 말이다.

“네가 떠난 후로 정말 열심히 움직였어. 움직이지 않으면 추워서 견딜 수 없었거든. 가끔 정말로 보고 싶은 날이면 네가 알려준 주소로 가서 식당 앞을 배회하기도 했지. 그런데 식당이 생각보다 너무 크더라. 내게 담벼락은 너무도 높은데 그 문턱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 네가 미웠어.”

현우도 느껴본 적 있었다. 부모가 데리러 온 아이들에게 느껴졌던 질투를. 아마도 소라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도망쳤을 거다. 함께 초라하지 못하다는 건 창피한 일이었으니까. 그 무렵, 현우는 빨리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었다.

유명한 한식당을 운영하시던 할머니 덕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은 없었으나, 그 대가로 아빠를 향한 온갖 욕설과 비난을 들어야 했다. 멋모르는 순진한 엄마를 데려간 몹쓸 놈, 부모 연까지 끊게 한 패륜아,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있는 저능아, 결국에 제 마누라 팔자까지 잡아먹은 개새끼 등.

할머니는 손주의 앞에서도 서슴없이 고인이 된 사위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안주 삼아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어쩌다가 삼촌들까지 오는 날에는 더욱 심했다. 엄마의 가족, 그러니까 외갓집은 온통 아빠를 싫어하는 사람뿐이었고 아빠를 사랑했던 현우는 견딜 수 없었다.

부유한 집의 자식이라는 친구들의 시선도 싫었다. 겉으로는 부러워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시기하고 이용하려고 했다. 어떤 고민을 말하더라도 답은 조부모의 재력이었다. 비록 부모 없는 고아라도 그 애들의 시각에서는 돈이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삶이 재미가 없어서, 재미가 없었던 이유는 모든 게 무의미했기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누구의 핏줄이 아닌, 그냥 나로 살면 조금은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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