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김현우 3

by 김구일

접시를 나르고, 음식을 나르는 일이 생각보다 고됐다. 급하게 산, 싸구려 구두를 신고 접시를 쌓아 올리는 일이 어색하고 서투르기도 했고, 사람들의 성화에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음료수와 술을 주문하는 테이블을 미처 기억하지 못해서 순서가 뒤죽박죽 엉켰다.

그 순간 현우의 시야에 소라가 보였다. 등을 돌린 소라는 황급히 입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입속에 넣은 건 꿀떡 하나였다. 이미 누군가가 써버린 휴지로 손가락을 닦고 우물거리며 고개를 돌린 소라와 현우의 눈이 마주쳤다.

현우는 소라가 입에 갈비를 넣었던 순간보다 더욱 재빠르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음식물을 씹기만 했다. 그 순간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다홍색 정도. 아주 빨갛지도, 흐리지도 않은 발갛게 오른 우리 둘만이 그 공간에 남은 것 같았다.

“나 대학 가면 교정할 거다? 너도 방금 그렇게 생각했지? 사치한다고? 누가 뭐라고 해도 할 거야.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화장품도 사고, 가방도 사고, 미팅도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거야.”

남들처럼, 이라는 말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소라는 조잘거리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애처로워 보이면서도 어쩐지 예뻤다. 소라는 사계절 내내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런 아이였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그래서 가여운. 가끔 웃지 않는 얼굴은 뭐랄까. 죽어가는 고목 같기도 했다. 반면 소라는 현우가 심각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아니, 원래 심각한 사람이라서 심각한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느 날은 내리막길을 정신없이 달려 불 꺼진 상가까지 달리기도 했다. 지저분한 쓰레기를 밟고 지나가며, 간혹 술 취한 행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발길이 멈춘 곳은 어느 성당 앞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한참이나 성모마리아를 바라봤다. 너도 사랑받고 싶은 거지? 소라가 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혼자 내버려 두어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식당에서 키우는 선인장처럼 말이다.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썩어버리는, 태생적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라의 물음에 어쩐지 반박할 힘이 생기지 않았다. 소라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사랑해줄게. 누구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채워진다는 게 이런 건가. 현우는 전에 소라가 말했던 것처럼 온몸이 사랑으로 꽉꽉 차서 곧 터질듯했다. 얼마나 좋았냐면 언젠가 소라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릴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현우는 소라에게 고백을 결심했다.

한참을 뒤척이던 밤, 소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온 소라는 여느 때보다 예뻤다. 그 애가 미안하다고 했다. 현우는 소라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열 번 고백하면, 소라는 열 번 거절해야 했다. 평소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였다. 본인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도 그랬다.

소라는 누구에게나 상냥했고, 친절했고, 사과했다. 소라의 사과로 우리 관계의 어떤 부분이 사라졌고, 관계가 상실됐다는 사실은 뭐랄까, 슬펐다. 커다란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래서였다. 현우가 좋아하지도 않던 여자애와 사귄 건.

끊어져 갈피를 잡지 못한 실을 누구에게라도 연결하고 싶었다. 그의 안에서 쑥 빠져나간 사랑을 무언가로 대신 채우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소라도 더는 내게 미안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우는 억지로 웃고, 억지로 손을 잡고, 억지로 먹고, 억지로 연락하고, 억지로 함께했다.

한 계절이 지날 때까지 현우의 머릿속에서 소라가 잊히지 않았다. 먼저 다른 사람을 곁에 뒀다는 안도, 네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치기, 치기를 핑계로 소라에게 보였던 무시가 한꺼번에 나를 비웃었다. 현우는 궁금했다. 소라가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자신에게 보였던 눈빛이 한낱 친절에 불과했는지.

현우의 연락에 소라는 기꺼이 나와줬다. 소라는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만 빙빙 돌리고 있을 뿐 먹지 않았다. 그동안 셔벗이 된 아이스크림이 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소라가 물었다. 언제까지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겠냐고.

그리고 마침내 스무 살, 현우는 소라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도, 가끔 보이는 눈물도, 지친 표정도, 그냥이라는 대답도 지겨웠다. 소라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우울했다. 바쁜 소라를 기다리는 일도 더는 즐겁지 않았다.

어느 날은 화가 나기도 했다. 소라가 평범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이 그 아이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군대에 입대한 이후에도 소라는 늘 현우를 뒷전으로 생각했다. 애써 전화를 걸어도, 외박이나 휴가를 나와도 돈을 버느라 바빴다. 어느 날, 현우가 평범하게 살 수 없겠냐고 물었다. 소라가 평범한 게 무엇이냐며 되물었다.

교복을 입고 까르르 웃는 학생들, 멀끔하게 차려입고는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 생기있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여자, 운동복을 입고 러닝을 하는 남자. 현우는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다. 우울한 얼굴로, 늘어진 티를 입고, 종일 접시를 나르다가, 수업에 늦고, 약속에 늦고, 나를 잊고, 너를 잃는 게 아니라.

현우는 아이스크림이 잔뜩 묻은 손등을 급히 감추며 일어서는 소라를 잡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멈춰선 소라가 현우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과 평범하게 살아, 라고 하는 말끝에 휴가 때 잠깐 만났던 윤주의 이름을 덧붙였다.

현우는 화가 났다. 잔인한 말로 소라를 상처 줬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몰래 봤다는 사실에. 싸늘하게 사실을 묻는 현우에 소라가 울먹이며 받아쳤다. 우연히 봤다고 했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그 친구와 밤거리를 걷는 현우를.

그때 현우는 억울했다. 소라가 먼저 바쁘다고 했고, 동기들을 만났고, 술자리에서 시간을 보냈고, 낯선 골목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고, 그곳에 윤주가 있었을 뿐이었다. 현우는 우리 사이가 틀어진 건, 나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고 일러두고 싶었다.

그래서 소라의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스물둘, 겨울. 현우는 선임을 따라서 PX에 다녀왔다. 행정반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초소에 면회 신청이 왔다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평소였다면 낯선 이의 방문은 불쾌했을 거다. 하지만 그땐 사람이 고플 때였다. 면회실로 간 현우를 맞이한 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핏기없는 낯빛에 빨간색 코트를 입은 여자는 자신을 소라의 엄마라고 소개했다. 그녀가 깡마른 손으로 현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손을 맞잡았을 때 느껴졌던 그때의 서늘함, 그건 현우에게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순간이었다. 소라의 엄마가 현우에게 물었다.

조부모가 운영하시는 식당 이름을, 소라를 생각하는 마음의 무게를, 소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사랑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지를. 도와줘요. 소라가 해본 적 없는 말이 그 애의 엄마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소라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소라의 앞으로 진 빚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일해도 갚을 길이 없다며.

불쑥 비겁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이 돈이라면, 소라에게 저지른 배신을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 너를 위해 이 정도까지 했다는 변명으로 나의 죄가 덮이지 않을까. 현우는 종일 찝찝한 마음을 털어낼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 관계의 결말에 조금이라도 내 잘못이 없도록.

외박을 받은 날, 현우는 소라의 엄마가 말해준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줄어든 통장 잔액만큼이나 죄책감도 사라졌다. 그런데 동창과 전화 통화를 하던 와중에 소라의 이야기가 나왔다. 소라가 울고 있었다고 했다. 현우가 휴가를 나왔던 그 날, 골목 어귀에서 홀로 숨죽여.

여기서 왜 울고 있냐는 동기의 물음에 소라는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간수 하지 못한 내 잘못이 커서, 그래서 너무 슬퍼서 울고 있었다고. 사랑받고 싶어 웃던 그 애의 얼굴이 떠올렸다. 고목처럼 죽어가던 얼굴도, 등 돌린 가련한 뒷모습도.

소라는 그날 모든 걸 본 거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현우가 도발하지 않았다는 억지로, 이 정도쯤은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는 오만으로 윤주와 입맞춤을 하는 자신을.

“네 엄마가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돼.”

그 말로 끝이었다. 현우는 소라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윤주와 소라의 사이가 걱정될 때면 술을 마셨다.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가 헤어졌다가, 직장에 입사했다가 퇴사했다가, 소라를 생각했다가 지웠다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현우가 소라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그가 카페를 개업하고 난 후였다. 보육원 원장에게 우연히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환하게 웃는 그 애의 얼굴이 어딘가 억지스러워 보인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딸의 남자친구를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며 초라하게 굴던 그 애의 엄마와 닮아있었다.

소라는 알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마음이 언젠가 변하리라고. 현우와 소라의 열아홉은, 스물이, 스물하나가 서서히 변색 되고 흐려지리라는 것을. 현우가 마음을 끝까지 지켰더라면, 그 애의 눈물을 지겨워하지 않았더라면, 저를 위한 배려를 알아차렸다면, 자신의 상처가 더 크다며 따지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지

금쯤 너는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습관처럼 웃고 있지 않았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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