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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미르 Sep 17. 2024

THE GREAT STORY 7
대륙의 신화 - 도교

       신선과 무협의 세계 

강호라는 거대한 세계


무릇 속세의 비정함에 지친 자들은 깊은 산속, 강호(江湖)의 세계로 가야 한다. 그곳엔 신분과 성별을 떠나 누구나 영웅이 되고 불로장생할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이 있다. 물론 그곳에서는 극도의 절제 속에 초인간적 수행을 해야 하고, 때로는 사파(邪派)의 도전에 목숨을 건 전투도 불사해야 한다. 하지만 높은 무공(武工)의 닦고 때로 신선의 경지까지 간다면 속세의 부귀영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강호로 떠나 무공을 익히고자 한다면 정파(正派)에 몸을 담아는 것이 정석이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문파는 태극검법과 태극권으로 유명한 무당산의 무당파이다. 가장 큰 문파답게 제자들이 많으며 대중들까지도 태극권의 기본 동작은 알 정도로 유명하다. 청나라에서는 무당파의 최후의 영웅 리무바이가 한때 청명검을 들고 세상을 호령하며 정의를 실현했다.  무당파 무공의 요체가 적힌 <무당심결>을 무당의 여제자 ‘파란 여우’가 도둑질해 잠시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리무바이와 그의 연인 수련이 모든 것을 바로잡았다. 하나 리무바이는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일 뿐이라며 연인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와호장룡> 중 리무바이와 용의 검법 대결 장면. 무협의 새로운 해석으로 주목받았다.



화산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검법에 정통한 문파이다. 그들의 검은 춤을 추는 듯 아름답고 화려하며 검을 쓸 때마다 매화꽃이 흩날린다. 그러나 명나라 때  문파의 대사부 악불군이 조정의 간신들과 결탁, 부정부패를 일삼아 문파의 명예를 먹칠을 한 일이 있었다.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은 이에 실망, 강호를 떠나는 길에 아마도 사파의 비결인 듯한 <규화보전>으로 무적이 된 ‘동방불패’를 만난다. 그는 <규화보전>으로 최고의 무공을 얻으나 남자에게 여자가 되어  영호충에게 애정을 품는다. 영호충과 동방불패의 미묘한 감정은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영호충은 화산파를 버리고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탄 후 소식이 끊긴다. 


영호충과 동방불패. 국내에서 남장여자 임청하의 붐을 일으킨 영화이다.


여성이라면 아미파나 모산파에 입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미파는 여성만 받는 문파로서 검법과 경공술 (하늘을 나는 술법)에 능하고 모산 파는 의학, 점술, 부적과 주술을 통해 귀신을 다루는 술법에 전문이다. 1600여 년 전 중국 최초의 여도사인 위화존이 모산파를 창시하며 독특한 술법을 발전시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불교 계통의 권법들도 크게 흥했다. 소림사의 그 유명한 소림권법은 불자(佛子)냐 아니냐를 넘어 전중국에서 최고의 권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청나라 말기, 무도인 황비홍은 소림의 권법을 응용, 발전시킨 남파 소림권으로 중국을 위협하는 서양인들을 참교육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남방의 소림 권법은 파이메이라는 고수에게 전해졌다. 그는 서양의 암살자 집단인 빌과 그의 연인 베아트리스 키도를 제자로 거두어 가르친다. 이후 파이메이에게 권법의 핵심을 전수받은 키도는 사무라이 검법까지 활용, 자신을 죽이려 했던 빌을 처단한다.  






이처럼, 무공과 강호라는 거대한 세계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도교 불교 모두 자신만의 무공을 통한 수행이라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근원적으로 무공은 도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교가 행신, 즉 몸의 수행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오랜 세월 무술과 광범위한 연관을 맺어 왔기 때문이고 이러한 무술과 몸의 수행은 도교 고유의 원리와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교에서 비롯된 행신법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발전되다가 후대에 불교와 결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하나 도교의 다양한 갈래와 문파, 이론들은 너무나 광대하여 한 번에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니, 여기서는 무협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문화적 의미를 잠시 짚어 보는 것으로 하겠다. 



한족 고유의 신화, 도교와 무협 


중국 대륙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공생하고 있지만, 그 많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한족(漢族)이다. 그리고 한족의 고유한 종교이며 전통문화가 바로 도교이다.  


도교의 뿌리는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신선가(神仙家)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참된 생명을 유지하고 세상 밖으로 노니는 사람들로, 뜻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삶과 죽음의 영역을 한 가지로 하여 가슴속에 슬픔이 없는 존재(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방기약 편」) ”라고 칭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참된 생명’이란 천지만물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기(氣)인 원기(元氣)를 말하는 것으로, 생명을 이루는 모체가 된다. 이것을 잘 간직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면 소위 말하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몸이 되고 결국은 신선이 되어 불사(不死)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도교의 중심지중 하나로 인정되는 무당산의 모습. 후베이성에 있으며 무당파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견도 만만치 않다. 현재는 무술에 관심이 있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고 약 200여 개의 건축물이 집결된 도교 사원의 성지이다. 


이러한 도교는 노자, 장자의 학설을 논하는 도가(道家)와 구별하여 일종의 민간종교사상으로 변천하여 장구한 세월 동안 중국 문화에 깊은 뿌리를 박게 된다. 물론 도교에서도 그 시조를 노자로 보고 있지만,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도가(道家)의 흐름과는 달리 노자를 태상노군(太上老君) 혹은 도덕천군이라도 부르며 신격화했다. 즉 도교는 신선가라는 초기의 형태에서 시작하여 노장사상에 중국 고유의 민간 신앙적 요소들을 결합하여 독특한 종교적, 문화적 체계로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신은 600에서 1,800위(位)까지 다양하게 논의되었는데 그들 대다수는 신선(神仙)으로 귀신, 천신(天神)과는 구별된다. 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이들 신선(神仙)들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신적 존재였던 옥황상제(玉皇上帝) 같은 천신(天神)들과 달리, 보통의 인간이 수행을 통해 거듭난 존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도교가 뿌리를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진(東晉 371-420) 시대의 갈홍은 자신의 ‘논선(論仙)’이라는 글에서 신선이란 ‘선천적 자질과는 상관없이 수양과 배움에 의해 도달 가능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신분 계급이 분명히 나뉘어 있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갈홍의 이러한 사상은 민중들에겐 매우 혁명적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초기 도교 집단인 ‘오두미교’는 일종의 정치종교적 공동체로서 개혁적 사상으로 민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식인들에게도 도교는 매력적이었다. 타고난 신분은 안정되어 있으나 조정의 혼란이 언제 목숨을 위협할 칼날로 다가올지 모르는 시대, 그들은 마음의 평정과 삶의 평화를 찾아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신선이 되는 방법이었다. 신선이라는 존재가 오랜 옛날부터 실존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이야기가 신화적으로 전해오는 가운데, 선천적 자질이 아닌 노력으로 획득되는 신선이 과연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갈홍같은 이들은  썩지 않는 금속인 금과 수은 등을 섞은 단약(丹藥)을 제조, 그것의 복용을 가장 중시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심신의 수양, 특히 무술이나 수행을 통한 기(氣)의 보전과 단련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 외에도 정기(精氣)의 보존을 위한 심산에서의 수행, 남녀의 정욕에 대한 철저한 금지 그리고 각종 식이요법도 유행했다. 


                                      갈홍의 저서 <포박자> 초기 도교를 집대성한 이 책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갈홍은 단약의 복용과 육체의 단련을 매우 중시했다. 



그러나 그것들 중 민중들에게 널리 퍼진 것은 무술 같은 육체적 수련을 통한 단련이었다. 실제로 명대 이후 도교의 수행법이 민간에도 널리 퍼져 태극권이나 각종 권법들이 유행하게 되고 민간에 무술인들이 등장, 자신들이 도장을 차리거나 제자를 두며 무술수행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지대가 지날수록 민중들에게 널리 퍼져 <수호전>과 같은 무협소설을 낳았고, 그 후로도 중국문화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상상력의 보물창고 


1949년 공산주의 정권의 수립 이후 중국본토에서는 도교를 미신으로 취급, 공공장소에서의 포교를 금하는 등 억압정책을 썼다. 그 후 문화 대혁명 시기, 도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철저하게 탄압받는다. 전국의 도관(도교의 사원)은 파괴되었고 도사들은 자아비판을 한 후 노동자나 농민으로 환속해야 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으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도교는 금세 부활했다. 민중들의 가장 기본적인 기복신앙을 담당하고 있던 종교인지라 아무리 인위적으로 탄압해도 그 뿌리를 없애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청조말기 의화단의 단원들. 이들은 무술, 도술을 익혀 육체를 단련하고 초인적 힘을 얻어 서양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주로 권법을 단련하고 주문을 외웠는데 옥황상제, 손오공 등 전통적인 도교적 신들을 숭배했다. 


아울러 1950년대부터 홍콩에서는 대중적 무협지가 쓰이며 인기를 크게 얻었고 이소룡, 성룡 등 권법을 쓰는 무협영화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도교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무당파, 화산파, 전진교 등 실재하는 도교의 문파들을 무협의 세계에서 재현, 전 세계 약 5억 부의( 비공식 집계. 해적판까지 대략 포함하여)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여겨지는 홍콩계 언론인 김용의 무협소설들은 도교가 문화적 콘텐츠로 활용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1980년대까지 공산당은 김용의 무협소설을 황당무계한 미신이라며 금지했지만, 그 후 덩샤오핑이 자신도 김용 소설의 팬이라며 판매를 허용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도 몇 년에 한 번씩 드라마와 영화, 만화책과 웹툰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신필. 아시아의 톨킨으로 볼리는 무협 소설의 거장 김용. 순수문학과는 다른

                                    대중적 차원에서 무협소설의 세계를 구축한 이로 현대 무협소설의 최대성취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웹툰과 웹소설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시장을 가지고 있고 콘텐츠 강국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쓰이는 작품들의 모티브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서양의 공작, 백작, 왕자, 공주들이 주인공이 되며 드래건, 기사,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마법사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대세이다. 물론 이 가운데사도 무협이나 우리의 전통 무속이 활약하고 있긴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강호의 세계' 혹은 그와 유사한 무술이라는 커다란 상상의 세계는 단지 중국 한족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문화적 유산으로서 활용의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이런 세계관은 적어도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이른바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사는 것을 자신의 꿈과 희망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고 전국 곳곳에 도교적 원리에 바탕을 둔 수련관들이 운영 중이다. 도교적 무술, 무협은 민간차원에서 건강증진의 원리로, 대체의학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웹소설 등 인터넷 기반의 작품들에서는 무협소설들이 남성 취향의 대표 콘텐츠이다. 이러한 콘텐츠로서의 도교적 요소들이 좀 더 세련되고 깊이 있게 활용된다면, 앞으로의 문화산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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