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도시대의 화가 우타가와 도요쿠니의 우키요에(판화) “가와 연회 자리의 유흥”(출처: 구글)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처음 에도지방(지금의 도쿄)의 땅에 들어섰을 때, 그곳은 뻘투성이 대지에 잦은 침수가 일어나는 시골구석이었다. 천왕이 있는 교토의 우아함이나 자신을 밀어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웅거한 오사카성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도쿠가와 가문이 권력을 회복하면 교토나 오사카로 돌아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도쿠가와들은 절대 권력자가 된 후에도 에도와 간토지방을 굳건히 지켰다. 그들이 에도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일본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맞았고 유럽 및 동남아로 진출하여 상업적 부를 쌓았다. 이때 조닌이라는 부유한 상인 계층이 등장했다. 도쿠가와 가문의 인질정책으로 1년씩 무조건 에도에 와서 살아야 했던 각 지의 다이묘(지역 영주)와 그 가신들은 에도에서 조닌들과 함께 향락에 취했다. 에도성 북쪽의 습지를 메운 곳에 요시와라라는 거대 규모의 유곽촌이 생겨났고 먼 곳에서 팔려온 빈민의 딸들이 나미다바시(눈물의 다리)를 건너 기녀가 되었다. 조닌들과 지배자들의 여흥은 점점 다양해지고 커져 에도시대의 특징적 문화를 만들었다. 출판과 글쓰기, 그림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백년이 넘게 이어지는 평화의 시대. 사무라이들마저도 에도의 가부키초에서 극을 관람하고 기녀들과 연회를 벌이며 손에서 칼을 놓았다. 이때 수 많은 이야기들이 에도의 거리와 밤하늘을 배회한다. 인기 있는 이야기들은 목판으로 인쇄되고 그림으로 그려졌는데, 그런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귀신과 유령, 괴물이 등장했다. 에도사람들은 산속에서 몰래 인가를 찾아든 갓파나 아기를 낳다 죽은 우무베의 이야기를 했다. 불을 모두 끄어 어둠속에서 오래된 자물쇠와 그릇을 쓰다듬으면 그것들에 정령이 씌워 집안을 돌아다닌다고 믿었다. 요괴의 나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백귀야행(百鬼夜行)
옛날 어느 수행승려가 여행을 다니던 중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폐허가 된 절을 발견하고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한밤중이 되도록 경을 일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살짝 밖을 내다보니 어둠속에서 수 많은 횃불이 절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횃불을 든 이들는 사람이 아니었다. 각양각생의 괴물과 혼령들이었다. 승려는 두려움에 떨며 마루밑으로 숨어 들어가 계속 불경을 읊었다. 절에 온 요괴들이 사람의 냄새가 난다고 떠들어대며 집안을 뒤졌지만 승려를 찾아내지는 못했고, 이윽고 새벽이 오면서 모두 사라졌다. 승려는 절을 빠져나와 지나가던 상인들을 만났는데, 이 절이 류센지라는 곳이며 예부터 백귀야행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인들은 승려가 발각되지 않은 것은 독경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에도시대는 ‘요괴 이야기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민간에 전해지는 각종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에도시대 (1600년- 1867년)는 그런 이야기들이 소박한 믿음을 너머 예술과 오락의 세계로 나갔기 때문이다.
사실 요괴라는 개념은 근대이전까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민속학의 발전과 함께 이러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신(神)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신(神)은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고 세상을 창조하는 큰 능력을 가졌으며 제사의 대상이 된다. 오니(鬼), 바케모노(化物), 힌케, 모노노케 등은 신(神)보다는 능력면에서 훨씬 하수이고 모양새도 기괴하며 인간에게 해악을 많이 끼친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은 물론 동물, 각종 물건에 정령이 씌워 탄생한다. 일본의 요괴는 오래된 정령신앙을 바탕으로 불교 같은 외래 종교가 스며들고 거기에 인간이 근원적 불안과 공포를 입고 나타나는 괴물의 총체이다. 그리고 “백귀야행”은 각종 요괴들이 벌이는 대행진으로 일본 요괴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백귀야행은 에도시대 훨씬 이전인 헤이안 시대부터 시작되어 에도시대에 대유행했다. 이는 말 그대로 특정한 날 한밤중에 성 밖에서 백가지 종의 요괴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성 안을 배회하는 것이다. 백귀야행은 정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행해지는데, 이때 잘못하여 백귀와 만나거나 눈을 마주치면 저주에 걸리거나 죽게 된다. 백귀야행은 짧막한 이야기와 함께 두루마리 그림인 에마키로 그려져 일종의 ‘도시괴담’형태로 퍼져나갔다. 또한 이때 성 밖에서 거주하며 천민 계급으로 자리잡은 에타, 히닝(非人) 등에게 덧씌워진 케가레, 즉 부정함(不淨)의 개념과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장의업이나 도살업에 종사하던 천민 계급이 살던 곳은 에도의 북쪽, 지금 도쿄의 동북지역이다. 이곳은 에도 당시엔 성 밖 지역으로 악령이 들끓는 곳이라 여겨진 부정한 곳이다. 에도 말기 간토지방을 평정했던 천민의 우두머리 단자에몬이 뒤에서 언급할 <이노모노노케로쿠>의 대마왕 산모토고로자에몬과 유사한 이미지를 가지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에도 시대에는 동북쪽에서 들어오는 요괴를 막기 위해 중북부에 절을 많이 지었는데, 이런 점에서 보면 백귀야행의 요괴는 사회학적으로 천민계급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배타성을 내포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이누가미’와 ‘누라리횬’. 이누가미는 인간이 개를 목만 내놓고 땅에 묻은 후 굶어 죽기 전까지 내버려두어 원혼을 만든 후 죽여서 만든 요괴이다. 누라리횬은 머리가 크게 과장되고 팔이 하나 없는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백귀야행은 위에서 소개한 승려 이야기처럼 불교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헤이안 시대 츠네유키라는 젊은이의 이야기도 요괴 퇴치에 불교적 요소를 끌어들이고 있다. 고관대작의 아들인 젊은 츠케유키가 한밤중에 몰래 애인을 만나러 갔다가 백귀야행에 걸려 죽을 뻔 했으나 유모가 미리 고승에게 받은 부적을 옷에 꿰매 두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도 이다. 또한 대가문 후지와라의 후손 모노스케가 자신의 가문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백귀야행으로 만났으나 다라니 경을 읽고 죽음을 면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일본 특유의 주술, 저주 문화와 결부되고 나아가 종교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백귀야행이 프린트된 티셔츠. (출처: 야후재팬)
백귀야행의 요괴 퇴치술은 현대에 상품화되어 퇴치의 주문이 유행하기도 하고 츠네유키의 설화처럼 티셔츠에 다라니경의 일부를 프린트해 입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백귀야행이 에니메이션과 만화에서 매력적인 요소로 쓰여 수많은 작품에서 이 요괴들의 행진을 창의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노 모노노케로쿠
에도시대에의 유명한 요괴담인 <이노 모노노케로쿠>도 <백귀야행>과 함께 요괴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이 이야기도 여러 이본과 에키마에로 만들어졌다.
에도시대, 미요시 번(지금의 히로시마)에 이노 헤이타로라는 16세 소년이 살고 있었다. 헤이타로는 친구들과의 담력 시험으로 뒷산의 묘비를 만지러 간다. 묘비는 저주가 걸려 있어 위험하다고 친지들이 말렸지만 헤이타로는 개의치 않고 묘비를 만졌다. 처음 며칠 동안은 별 일이 없었으나 결국 집안에 각종 요괴들이 30일 동안이나 출현한다.
헤이타로는 요괴들에게 놀라 달아나거나 기절하지 않고 용감하게 버티고 싸운 결과 30일을 무사히 넘겼고 마지막에 나타난 요괴들의 왕 산모토고로자에몬에게 인정받는다. 산모토고로자에몬은 헤이타로에게 ‘부다유’라는 새 이름을 주고 자신의 신이한 나무망치를 선물한다.
헤이타로를 유혹하기 위해 나타난 여자 요괴. 머리가 크게 과장되어 있다. (출처: 구글)
이노가문은 현재 히로시마 미요시 지역에서 살고 있다. 15대손이 헤이타로라는 이름까지 계승했고 나무망치는 고쿠겐사에 보관하고 있는데 미요시의 축제 “이노제”때 특별히 공개한다. 이 괴담집은 총 78종의 요괴가 등장하는데, 일단 헤이타로의 집 자체가 요괴화되는 것이 의미있다. 일상적 공간이 언제든 요괴의 세계로 변모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주변의 친지와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이 요괴로 변신해 찾아오기도 하고 친구의 머리가 쪼개지며 그곳에서 갓난아기 요괴가 등장하기도 한다. 혹은 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끈질기게 소년을 유혹한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한 헤이타로의 이야기는 통과의례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노모노노케로쿠>는 헤이타노라는 실존인물의 직접 경험담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경험’, 즉 현실에서의 초현실적 경험담이라는 괴담의 핵심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괴담은 무엇보다도 ‘이거 진짜 겪었던 일이야’라는 한 마디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끊을 수 없는 호기심, 사랑받는 요괴
요괴의 존재를 실재로 믿든 말든, 요괴는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신, 유흥, 예술 ,때로는 사이비 종교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들은 이미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다. 그러기에 진부한 말이지만 요괴를 아는 것은 인간을 알고자 하는 욕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에도의 요괴문화는 현대사회의 애니메이션, 만화와 결합하여 엄청난 산업으로 성장했다.
요괴학의 대가인 고마쓰 가즈히코는 <일본서기>에 나타난 저주술의 예를 들며 반사회적인 존재들, 사술(邪術)을 행하는 이들이 요괴와 가까운 존재이며 인간과 요괴는 상호변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 만화/애니 문화에서도 나타나는데, 공전의 히트작 <진격의 거인>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거인족도 일종의 요괴변형이라 할 수 있다. 이 거인들은 알고 보니 인간이 변신한 것이고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며 공격하고 전쟁이 벌어진다. 최근 큰 인기를 끈 <주술회전>에서도 인간의 부정적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주령’이라는 요괴가 등장한다. 이들은 끝없이 생성되고 진화하여 인간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키운다. 일부의 특급 주령들은 자신이 ‘신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령을 퇴치하던 주술사는 인간의 부정적 마음을 없애기 위해 인간 멸절을 계획한다. 그런가 하면 착한 요괴들이 대거 등장하는 만화/애니인 <나츠메 우인장>의 요괴들은 도시의 한구석이나 시골 마을에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간다. 이들 중 일부는 인간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공존 가능하다. 요괴들은 외롭게 자란 주인공 나츠메와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된다. 이처럼 요괴는 인간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가변적인 성격을 띄며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되었다.
한편 요괴는 인간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서 인간과 사회, 자연의 이면을 드러낸다. 인간은 요괴를 통해 어둠의 세계와 사회적 모순, 비합리적 욕망을 인지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과 세계의 일부인 부정적 에너지를 조절한다. 요괴라는 타자는 곧 인간 자신이며 우리가 외면해 온 세상의 한 단면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에 가려져 있던 비합리적, 원초적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요괴의 기이한 모습은 의식적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이때 사람들은 지배자에게 희생된 피지배민, 파괴된 자연, 사육된 짐승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잔혹함과 지배욕, 그리고 차별과 파괴의 사회적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숨기고 싶던 타자와의 관계가 곧 요괴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요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정하기 싫은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기도 하지만 세상의 이면을 아는 지혜를 가진 이들이다. 요괴는 인간이고 인간이 요괴이다. 그래서 요괴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은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