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의 아체(Aceh) 지역에 치명적인 피해를 남겼다. 공식적으로만 약 17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수십만의 실종자, 파괴된 마을과 남겨진 공포 속에서 아체 주민들은 이 자연재해를 종교적, 신비적 맥락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래전부터 전해지던 바다 귀신과 울음 귀신의 전설이 쓰나미 이후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특히 “한뚜 라우뜨(Hantu Laut)”와 “한뚜 땅이산(Hantu Tangisan)”은 공동체의 상실과 기억, 경외와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메단 위쪽, 바다에 접한 곳이 '아체'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지역이다.(출처:나무위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지만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독립적인 문화를 가진 지역으로 16세기 경부터 말레이와의 무역이나 네덜란드, 포르투갈과의 무역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지리적 요충지이다. 또한 현재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구 2만 7천 대부분이 이슬람) 인도네시아에 최초로 이슬람을 전파했고 거기에 아체만의 독특한 민속까지 합쳐져 있다. 또한 아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가 지배하는 곳 중 하나이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행해지는 곳이다.
“독립”과 “자유”는 아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어이다. 오랫동안 자바섬의 중앙정부에 맞서 비극적인 투쟁을 전개해온 지역으로써, 인도네시아 군의 학살과 인권유린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이처럼 개별성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체의 민속이야기를 살펴보면 우리들이 흔히 들어온 민속담과도 유사한 보편성이 발견된다. 아체 지역의 이야기를 통해 문화적 특수성과 보편성의 한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다의 유령 – 한뚜 라우뜨 (Hantu Laut)
‘한뚜 라우뜨’는 아체어로 ‘바다의 유령’이라는 뜻을 지닌다. 한뚜 라우뜨는 바다에서 죽은 자의 혼령이 응축되어 형성된 존재로,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원래는 죽은 어부가 한뚜 라우뜨가 되어 파도속에 숨어 있다가 인간의 눈에 띄여 알려지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가난한 오지에 속하는 아체주는 어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나가야만 하는 곳이다. 1907년에도 기록적인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고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재난들이 계속되었던 곳이고 바다는 그 모든 재앙과 생존의 근원이었다. 그리하여 어부들 사이에는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으면 재앙이 온다던가 어린 물고기를 잡으면 화가 미친다는 등의 소박한 지역 신앙이 많았다. 이처럼 여러 번의 쓰나미, 특히 2004년의 대재앙 이후, 바다에서 사라진 수많은 이들의 영혼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파도 속에 머물며 밤마다 울부짖는다고 여겨졌다.
2004년 쓰나미의 최대 피해지역 반다아체에서 열린 20주년 추모식. 아픔은 지워지지 않았다.
(출처: 연합뉴스)
이 귀신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전해진다. 먼저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 형상이 많으며 새벽 2~3시 사이 물결 위를 떠다니는 그림자가 한뚜 라우뜨인데 이를 모르고 따라가서 재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한편 바닷가에서 배를 흔들거나 물 위에서 기이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존재도 한뚜 라우뜨이며 2004년 쓰나미 이후로는 바닷가에서 말없이 헤매이는 어린 아이들이 한뚜 라우뜨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을 보면 말 없이 손을 흔드는데, 아이라는 것에 방심하여 가까이 가면 사람들을 이끌고 바다로 사라진다고 한다.
한뚜 라우뜨를 물리치는 방법은 아체 지역의 어부 공동체 구전 속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일단 작은 제물을 던져 위로하는 것이다. 맨 처음 바다에 배를 띄울 때 작은 생선, 흰쌀, 껍질 없는 계란 한 개를 바다에 던진다. 이는 귀신에게 “우리는 생존을 위한 항해를 할 뿐, 네 안식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식이다.
아체는 민속 신앙과 이슬람이 뒤섞인 독특한 문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민간에서 꾸란의 구절 중 재난을 피하는 두아(주문)의 낭송이 일반화되어 있다. 출항 전 바닷가에서 꾸란의 ‘야씬(Yā Sīn)’ 장을 외우면 한뚜 라우뜨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는데,
특히 “Bismillahirrahmanirrahim(비-스밀-라-히르-라흐-마-니르-라-힘-자애롭고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반복적 구절은 귀신을 무력화시키는 보호막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방법은 민간에서 전해지는 주문의 암송이다. 아체지역은 인도네시아어 외에 아체 어를 함께 쓰는데, 문자는 없으므로 영어를 빌려 기록한다.
Laut tenang, roh hilang,
Jangan tarik, jangan datang.
Dalam nama Tuhan Rahman,
Kami pulang dengan aman.
(잔잔한 바다여, 떠도는 넋이여,
이끌지 말고, 다가오지 마라.
자비로우신 주의 이름으로,
우리는 평화롭게 돌아가리라.)
울음의 유령 -한뚜 땅이산 (Hantu Tangisan)
‘한뚜 땅이산’은 울고 있는 귀신으로, 특히 여성과 아이의 울음소리로만 존재를 드러낸다.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 또는 떠나간 아이들의 혼령이 돌아와 “엄마!”, “살려줘!”라는 절규를 밤새도록 되풀이 한다. 이들은 실체가 보이지 않고, 소리만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주민들은 이 소리가 강한 바람이 부는 날 새벽 무렵 숲 근처에서 들린다고 전하며, 종종 이를 “하늘과 땅 사이에 갇힌 혼”이라 해석한다.
한뚜 땅이산을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소리로 맞대응하거나, 빛으로 흩뜨리는 방식이 사용된다. 전해지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르면 밤에 울음소리가 들릴 때 집 앞이나 무덤 근처에 붉은 천과 함께 촛불 세 개를 삼각형 모양으로 세운다. 이는 “완전한 빛”의 형상을 만들어 귀신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체어로 “얀 안깐, 쿠쿤 발리!” 주문을 외우는데 이는 “울지 마라, 하늘의 품으로 돌아가라!”라는 뜻이다. 보통 가족을 잃은 이가 이 주문을 반복함으로써 유령의 울음에 대응하고, 심리적 정화를 얻을 수 있다고 지역민들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슬람의 방식도 있다. 새벽 아잔(이슬람의 기도 부름)을 확성기로 높이 틀면 울음 소리가 멈춘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는 이슬람의 기도와 같이 ‘정결한 소리’가 떠도는 혼을 달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검은 여자, 이농 이땀
어느날 밤, 이유없이 몸이 차갑게 식고 개들이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농 이땀이라는 혼령이 가까이 있지 않은지 의심해야 한다. 이농은 “여성”이라는 뜻의 아체어이고 이농 이땀은 검은 천으로 온 몸을 감싼 여자 귀신이다. 이농 이땀이 가까이 오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마구 웃으며 귀신을 따라간다. 이농 이땀은 누군가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를 쫓아간다. 그러니 한밤중에는 절대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손톱을 깍지 않고 열쇠 등 금속을 머리맡에 두고 자야 한다. 이농 이땀의 존재가 확실해지면 의식용 칼인 pendeung keuneubah로 허공을 세 번 가른다. 이농 이땀은 쓰나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인도네시아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사회적 문제 즉 혼령 출현이 배경이 되는 여성 문제와 연관된다. 아체에서는 여성 반군 참여자였던 '이농바리'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운 여성 전사들이다. 이들의 전통에 자유아체운동의 반군 참여로까지 이어졌는데, 이들에 대한 조사나 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간통한 여자에 대한 공개 태형 장면. 이슬람의 현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여성혐오이다.(출처:나무위키)
아체는 강한 이슬람 전통 때문에 여성들에 대한 금기와 억압이 대단했던 곳이다. 지금도 아체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간통한 여성들에 대한 길거리 태형이다. 그러니 여성의 원혼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출산을 하다가 죽은 여성 원혼이나 원치 않는 결혼의 강요를 피해 정글로 갔다가 죽은 귀신이 노래와 속삭임으로 사람을 꾀어낸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때 여성 원혼은 ‘주펙’이라는 마녀로 지칭되며 부정적 존재로 여겨진다.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도 원혼이라면 여성의 원혼이 대표격이라 할 수 있었다. 쓰나미 이후 샤리아가 강해지면서 여성인권에 대한 염려가 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사회적 문제에 눈을 뜨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도 한다. 앞으로의 진행을 두고 볼 일이다.
수도 반다아체에서 130킬로 정도 떨어진 루무 그우동은 인도네시아 정부군에 의한 납치, 살해, 고문이 행해진 곳으로 유명하다. 많은 이들이 이곳의 민가형 저택으로 끌려와 구금과 폭행, 살해를 당했지만 그 진상은 잘 밝혀지지 않았다. 수 많은 증언에도 불구하고 최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12건의 인권탄압만을 인정했을 뿐이다. 민가도 철거되었다. 그러나 루무에는 아직도 떠도는 혼령들에 대한 목격담이 끊이지 않는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은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사건과 관련되는 혼령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원형적 상징으로서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한 탐구와 정리가 필요하다 하겠다.
루무 그우동의 고문 장소는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출처: 구글)
기억 그리고 치유
2004년 쓰나미는 아체의 역사를 바꾸었다. 30년이 넘게 이어지던 반군투쟁은 극적인 타결을 보았고 쓰나미의 빠른 복구가 이루어져 비교적 성공적인 재앙 복구 모델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리고 쓰나미나 여성과 관련된 전설은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 치유와 기억, 윤리 강화의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쓰나미 희생자들의 죽음을 귀신 서사로 승화시킴으로써, 아체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지속시키고 있다. 아체에서는 복구 작업 내내 혼령을 위로하는 마을 단위의 의식이 곳곳에서 행해졌고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방식의 위령제가 행해졌다고 한다. 바다 귀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울음 귀신을 위로하는 의식을 통해 주민들은 삶의 윤리와 종교적 신념을 되새긴다. 혼령들은 "잊힌 자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자"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일부 지역에서 이런 전승을 활용한 민속관광 프로그램(밤의 귀신 걷기 투어, 혼령 보내기 퍼포먼스 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는 기억과 상업, 공동체 회복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쓰나미 이후 아체의 새로운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다.
고문이나 내전은 우리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항상 전쟁의 불안을 안고 살며 독재정권 시절에는 고문사망한 사람들의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언젠든 그런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 아체는 멀리 있는 곳이지만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아픔과 앞으로 인류의 과제가 될 자연 재해 및 기후 위기의 문제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관심과 사유가 먼 곳까지 향할 때 인류는 더 많은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