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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13. 2024

야구장

오라클 파크 방문기


작년 9월에 오클랜드와 에인절스 경기를 본 이후에 야구를 경기 결과만 확인하다가, 마침 학기도 끝났고, 친구의 가까운 지인분이 티켓을 사주셔서 살면서 처음으로 오라클 파크로 직관을 갔다. 예상했던 것보다 출발이 늦어져서 바트를 안 타고 우버를 탔는데, 샌프란시스코를 갈 때 차를 탄 적이 한 번도 없던지라 베이브리지 위에서 보이는 바다와 도시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 주변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됐다. 해안도시에 살지만 바다가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많은 점을 시사하는데, 목감기가 걸려 계속해서 느껴지는 침의 씁쓸한 맛이 나의 그동안의 생활을 비웃는 듯했다.


가장 최근 오라클 파크에 온 건 작년 12월, 자이언츠의 이정후 영입 소식이 뜨고 더그아웃 스토어에 이정후 유니폼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알고 난 뒤 샌프란시스코로 놀러 갈 겸 들러서 유니폼을 샀다. 당시 160달러라는 한국에서는 절대로 사지 않을 금액의 유니폼을 산 건 이곳에 온 이후로 나름대로 자주 야구를 보러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 같은 거였지만, 야구장까지는커녕 집 밖도 잘 안 나가는 생활 속에서 야구장을 갈 리가 없었다. 다른 것보다도 야구는 혼자 아니면 단둘이서 보러 가는 걸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주변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마땅히 없고, 무엇보다 자이언츠도 그렇고 이정후도 그렇고 당장 성적 자체가 실망적이어서 별로 봐야겠다는 끌림이 없기도 했는데, 그러다 학기가 끝난 이후 운 좋게 갈 기회가 생겼다.


내가 지금까지 가본 야구장이 뭐가 있지. 문학, 잠실, 고척, 수원, 그리고 미국에서는 오클랜드 링센트럴 콜리세움 하고 오라클 파크까지 6군데 정도를 갔는데, 오라클 파크가 원래도 바닷가가 보이는 풍경으로 유명해서(그 점을 가지고 친구들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저녁 경기인 탓에 금방 하늘이 어두워져 바닷가 풍경을 계속해서 보지 못했던 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경기장들에 비해서 규모 자체가 비교도 안되게 큰지라 크기에서 어딘가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오라클 파크 정도면 적당히 큰 편인 건데, 다저 스타디움이나 양키 스타디움 같은 곳은 또 어떠려나.


경기는 3시간도 안 돼서 끝났고, 졌다. 그 초반을 제외하면 점수도 거의 안 나왔고, 9회에 상대팀에서 나온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빼고는 경기적으로 재밌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선발로 나온 웹은 작년 사이 영 2위의 성적에 맞지 않게 금방 강판당했고, 타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정후도 부상 때문에 내일까지 결장이라 하니, 여러모로 경기 자체에서 흥미로운 요소를 찾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기서 잘하는 선수가 누구고, 지금 리그에서 잘하는 선수 중에 누가 있는지 등의 메이저리그와 야구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야기해 줬는데, 평소에 함께 야구를 보러 갔던 사람들은 대부분 응원하는 팀이 있을뿐더러 리그나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나름대로의 조예가 있던 경우가 많아서 세부지표나 소소한 TMI 같은 것들로 오디오를 채우곤 했던 것과 달리 야구를 완전히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야구라는 스포츠가 왜 한때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내가 왜 이걸 좋아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안 됐다.


그래서 야구가 왜 재밌냐는 질문에,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야구는 재미없기 때문에 재밌다고 답했다. 뭐라고 할까, 온갖 자극으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가장 자극이 적은 스포츠인 동시에, 찬스에서 찾아오는 기대감이나 위기에서의 긴장감, 중요 상황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적시타를 때려낼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들은 내가 그동안 봐온 축구나 농구, 풋볼, 이스포츠 등에서는 찾아보지 쉽지 않다. 경기 내내 몰입하고 있지 않아도 그 흐름에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선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종합적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띠는데, 온갖 응원가와 이벤트 덕에 분위기 자체가 들떠있고, 게다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탓에 굳이 응원석 쪽으로 가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팀 선수들 응원가는 다 외워두고, 가끔 다른 팀 선수들 유명한 응원가들도 외웠다가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응원가가 야구라는 스포츠가 근본적으로 지닌 지루함을 상쇄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공부할 때 SSG 팀 응원가 모음을 듣고는 하는데, 그럴 때 어딘가 에너지 레벨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는데, 마침 할 것도 별로 없어서 한 번 더 보러 간다. 이번에는 혼자서 가는데,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정보를 경기 중에 직접 찾아보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혼자 보러 갈 때 경기에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다. 그래도 친구의 지인분께서 오라클 파크의 아름다운 풍경은 연인이랑 와야 가장 멋있다는데, 나한테 그런 순간이 언제쯤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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