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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un 02. 2024

울란바토르 이야기 3: 용기

높은 곳 올라가기

4년 전 친구들끼리 간 도쿄 여행 중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 갔다. 여타 전망대처럼 창가에 바닥이 투명해 밑이 다 내려다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다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그 위에 올라갔을 때, 이번에 같이 울란바토르에 간 친구가 그 위를 방방 뛰는 바람에 겁에 질린 내가 제발 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자이산 전승기념비와 그 옆 쇼핑몰을 잇는 구름다리도 바닥이 부분적으로 투명했는데, 비슷한 형태의 자극은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거 보니까 생각나는데, 우리 스카이트리 갔을 때 기억나냐. 네가 투명 바닥 위에서 계속 뛰어서 겁줘가지고 내가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한 거"


“그런 적이 있었나?”


“원래 가해자는 잘 기억 못 해. 그다음에 승현이가 우리 보고 이건 코끼리가 올라와도 안 깨진다고 얘기했잖아.”


“아 그건 기억난다. 이상하게 그런 것들은 잘 기억나네.”


“이게 뭐라고 해야 하지. 네가 그때 바닥 위에서 계속 뛰었을 때 느낀 두려움이 맥락으로 작용해서 그런 건가. 매번 고층건물 전망대 갈 때마다 승현이가 한 코끼리 얘기가 생각나더라.”



“(구름다리 위에서) 난 공학도가 이런 걸 무서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알잖아"


“아니 머리로는 내가 뭔 짓을 해도 안 무너진다는 걸 알지. 근데 그거랑 별개로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거야. 이미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면 이성적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머리가 세뇌 비슷한 걸 당하는 거지. 문제는 그런 감정이 한 번 밀려오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 머릿속에 그냥 무섭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안 떠오른다니까.”


이번 몽골 여행동안 높은 곳에 세 번 정도 올라갔다. 사실 높은 곳이라고 해봤자 그냥 올라갔을 때 도시의 전체적인 풍경이 넓게 펼쳐질 정도의 적당한 높이였고, 실제로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내려오고 나서 보면 그 위에 있었을 때 느꼈던 것에 비해 경사가 상당히 완만해 보여서 내가 고작 이런 거에 계속 겁먹고 위축됐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다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런 거 다 까먹고 무서워할게 분명했다. 여행이 끝나고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는데 유독 위에서 찍은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정작 힘들게 올라가 놓고 그 이후에 넓게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있기도 했고, 서서 사진을 찍을 여유 자체가 별로 없었다.


난 온갖 것들에 겁이 많았다. 어두운 곳과 귀신은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기긴 했는데(그렇다고 아예 신경을 안 쓰는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은 좀처럼 떨쳐내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 전 도쿄 스카이트리, 작년 롯데월드타워나 부르즈 칼리파처럼 스스로 매번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찾아가면서 막상 올라가고 나면 무서워서 최대한 난간에서 먼 곳에 붙어있으려고 하는데,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때 느끼는 해방감에 대한 갈망과 높은 곳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불안한 공존을 하지만 후자가 더 강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 느낀 두려움은 단순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와는 다른 느낌을 가져다줬다. 자이산 전승기념비는 계단이 있어서 못 내려간다는 걱정이 있지는 않았지만, 도시 외곽의 산과 테를지의 거북 바위를 올라가는 내내 내가 과연 이 정도의 경사를 올라간 뒤에 멀쩡하게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정작 넓은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까지 힘들게 올라가 놓고도 그 경치를 즐기지 못하고, 그렇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수월하게 내려온 후 뒤돌아 내려온 길을 다시 보니 내가 고작 이 정도에 무서워 위축돼 있었나 하는 자괴감과 후회의 감정이 밀려왔다. 올라가면서도 온갖 두려움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자칫 잘못해서 미끄러지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진의 멋진 풍경이 되어주는 절벽의 끝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지금 돌아봐서 가장 후회가 되는 거라면 어떻게 내려갈지 상상도 안 되는 상태로 바위 위로 올라갈 용기는 내면서, 정작 그 위에 올라가서 난간에 설 마지막 작은 용기를 내지 못한 탓에 벽에 가까이 하늘만 바라본 몇 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 전날에도 산을 오르다 더 올라가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내려가기 전에 쉬고 있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위로 올라갈 용기가 있었더라면 주변 수풀을 배회하고 있던 사슴을 먼저 발견하는 건 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추억과 경험의 기회가 매 순간 두려움을 핑계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들은 매번 높은 곳에 올라갔다 내려왔을 때였다.


뭐랄까 여행동안 높은 곳에 갔을 때 보이는 나의 모습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여러 면에서 닮아있었다. 오르기 전이나, 올라갈 때, 심지어는 다 올라간 후에도 아래를 돌아보며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걱정하면서 불안해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동안 나에게 후회라는 감정을 가져다준 순간들을 완벽한 비유하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새로운 곳을 탐험하길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간 게 아니었다면 혼자서 그런 높은 곳을 올라가지 않았을 거다. 여행 중에서 그랬던 것처럼, 삶에서도 나만의 틀을 깨고 나올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7년 전 고등학교 면접장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처음 대화를 나눴던 그와 달리 후자의 누군가는 내가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과연 내려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사로를 오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길을 오르던, 사람을 찾던,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다른 것도 아닌 의지를 누르는 두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 잘못됐을 때 벌어질 일을 상상하면서도 기꺼이 그걸 감수하게 만드는 용기였다.


아직까지 세상의 많은 것들을 올려다봐야 하는 나이다. 부, 명예, 자아실현, 사랑 등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손에 넣는 과정은 굴러 떨어지지 않고서야 내려갈 수 없는 절벽을 올라가는 순간의 연속이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는 저기까지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온갖 상념에 사로잡히지만, 막상 발을 내디딘 순간 어떻게든 올라가기 위해 온 힘을 쏟고, 도중에 평평한 곳에서 쉴 때 눈앞에 펼쳐져있는 풍경에 취해있다가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시 내려갈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어 또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시선의 끝 너머에 있는 것이 고원인지, 또 다른 오르막의 연속인지, 아니면 정상인지 알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해야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친구에게 고마운 거라면 평소 주변 사람들과 거의 하지 않는 온갖 야구 이야기, 일상적인 고민거리, 삶의 방향성에 관한 고찰 같은 것들에 대한 대화를 쉴 새 없이 나눌 수 있던 게 있지만, 그중 제일은 반강제적으로 내 안에 내재된 채 살아가는 두려움을 마주하면서도 작게나마 위로 올라갈 용기를 발휘하게 해 준 거였다. 친구가 올라가는데, 나 혼자만 무섭다고 아래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요즘 들어 유독 갈망하게 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필수불가결한 가치가 바로 용기가 아닐까. 이번 여행을 통해 마주한 두려움은 역설적이게도 그걸 헤쳐나가기 위한 용기의 중요성을 더 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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