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쓰는 복학생 Dec 24. 2024

전문성 갖추기

Power Electronics 수업을 마치며

이번 학기에 들은 Power Electronics는 어렸을 때부터 에너지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열망을 가져온 나에게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수업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버클리에서 들어온 수업들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는 거였다. 한 문제에 한 시간씩 투자해도 부족할 정도로 복잡한 과제와 동시에 같이 딸려나오는 비슷한 분량과 난이도의 랩, 매달 있는 어지간한 미드텀을 뛰어넘는 3시간짜리 퀴즈까지. 지금까지 그런 수업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에게 이번 학기는 힘든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면, 전기 공학 베이스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본적인 것들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동시에 그걸 적용하는 걸 당연시여기는 심화 개념들까지 몰아서 익혀야 하는 탓에 학기 초반부부터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단이 전무해 전체적으로 일상의 만족도가 바닥을 기었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의 보상인지 그 덕에 동시에 같이 듣던 전기공학 인트로 수업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초반에는 평균을 조금 상회하던 점수도 두 번째 미드텀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점수 자체는 상당히 잘 나왔으니. 여전히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기준이 너무 높은 탓에 진심으로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유명한 버클리 EECS 학생들 사이에서도 내 점수가 높은 편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당장 시험 점수 정도를 빼고는 내가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 점수도 제대로 안 나오면 가뜩이나 흔들리던 멘탈을 붙잡기 쉽지 않았을 테다.


고등학생 때 작은 태양광 패널을 샀던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시 이해를 하지 못하던 개념이 왜 태양광 발전을 통해 만든 직류 전류를 곧장 공급하지 않고, 인버터를 통해 교류 전류로 만든 후 또다시 사용할 때 직류로 변환하는 지에 대한 거였다. 고등학교 수준 교육에서는 capacitor, inductor, switch 3개를 어떻게 조합해서 실용적인 컨버터를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한 주제는 전혀 다루지 않기 때문에 직접 찾아서 공부하지 않는 이상 대학에 와서나 배울 수 있는 개념인데, 심지어 그 학부 과정에서도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과목을 듣고 나서야 왜 그게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변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됐다. 이번 학기는 그런 이론적인 바탕을 쌓고, 회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직관을 만들어나가는 시간이었고, 다음 학기에는 전기공학 upper div 수업만 3개를 듣는데, 특히 Power Electronics의 두 번째 단계 수업에서는 이론적인 걸 넘어 사용 용도에 따른 컨버터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디자인 하는 데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지난번에 교수님께서 수업 소개를 하시면서 파이널 프로젝트로 실제 태양광 패널에 연결하는 컨버터를 직접 만들고 테스트를 할 거라는데, 개념 자체를 몰랐던 공학적인 요소들에 있어서 이론적인 바탕을 이해하고 실제로 구현해내는 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게든 도달은 하니 이런 게 버클리에 오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싶다.


아직 내 지식이나 열정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 크지만, 여전히 에너지라는 큰 나무에 있어서 내가 선택할 가지가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정해진 게 없다. 비록 지금 배우는 것들은 크게는 그리드나 전력 계통 시스템, 작게는 전력을 사용하는 여러 전자기기에 관한 것들이지만,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관심 영역을 좀 더 확대해나가면서 기왕이면 반도체 관련된 지식을 졸업하기 전에 최대한 터득해나가고 싶다. 다만 그 수업들을 전부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남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개인적인 야망 중 하나라면 에너지 분야 전문가가 돼서 좀 유명해진 후 비례대표 같은 걸로 짧게나마 정치에 입문해보는 건데, 그런 장기적인 계획을 생각할 때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측면에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사실 그런 것들을 이뤄내기 위해선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해나가게 되는 것들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하는 거지만, 내 에너지나 열정이 거기까지는 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든다.


이번 학기도 정말 중요했지만, 다음 학기가 더 중요하다는, 아니 매번 다음 학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만큼 내가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프레임워크를 완성시켜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일거다. 단순히 그걸 완성하는 것만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보장되는 건 아니겠지만, 20대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겨온 여러 과제들 중 하나를 제대로 해결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은 장기적으로 커리어라는 부분에 있어서 핵심적인 자산으로 작용할 거라 믿는다. 무엇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던 분야이기에, 아직까지도 떨쳐내기 힘든 이번 학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에 찾아올 순간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한국에 가서 좀 가져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