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부터 이어진 미드텀과 랩, 과제의 연속으로 주말마저 포기하면서 화요일까지만 견디면 된다는 마인드로 버텼다. 사실 돌아보면 이정도였나 싶긴한데, 정말 정신없이 보냈던 지난 5일가량의 시간을 뒤로 하고 오늘 오전 내내 이어지던 시험과 랩을 끝마친 후 평소보다 일찍 돌아와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3년 전에 나왔을 때는 안 보고 미루기만 하던 아케인 시즌 1을 정주행하고, 맛있는 것도 해먹으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지만 정작 그럴듯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던 일상적인 상념을 잠시 내려놓은 채 최대한 머리를 비웠다.
사실 무조건 쉬어야만 할 만큼 힘들거나 피곤하진 않았다. 어제 5시간 정도 잔 것만으로도 피로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긍정적인 변수 없이 똑같은 패턴만을 반복해오면서 무슨 내용인지 갈피조차 잡기 힘든 문장 같았던 일상에 쉼표를 찍을 필요가 있었다. 하루종일 드라마를 보고, 나름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고 여전히 남아있는 일들에 대한 압박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딘가 내일을 열심히 보내야겠다는 일념이 돋아난 생기와 함께 강해졌다. 모르겠다. 막상 내일을 잘 보내는 건 그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다. 전날의 결심이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결국 이 문단을 끝낸 후 다음날까지 거의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조금 과한 휴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렵네. 나에겐 언젠가부터 일과 휴식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나마 있는 순간이라면 여행을 갈 때 정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 역의 김지원이 한 “모든 순간이 노동이에요”라는 말이 내 일상을 설명해준달까. 요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미러 디멘션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시간이 흐르지 않은 채 나 혼자 존재하는 공간에서 그냥 아무 것도 안 한 채 멍때리면서 쉬던, 밀린 일을 전부 처리하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쉬고는 싶으면서 흘러가는 시간이 나를 두고가지 않게 붙잡고 싶고, 하기 싫은데 부담은 잔뜩 느끼는 일에 스트레스 받을 때는 이 시간이 한 순간에 지나가버리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이기심, 정작 그 모든 과정과 결과는 시간이 흐른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웃풋이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PSS(Periodic Steady State)에 도달하는 것처럼, 어차피 하루 중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휴식의 상한선은 정해져있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감이 없을 뿐이긴한데, 요즘 보이는 휴식의 양에 대한 집착은 마침 쉼표 뒤에 스페이스 바를 5번 정도 누르는 것 같다. 아니면 그냥 힘들어서 쉬는 게 아니라 힘든게 싫어서 피하려고 은근슬쩍 휴식이라는 핑계의 회피에 빠지게 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