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성적은 답만 잘하면 되지만, 전문가는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할 일이 산더미이긴 한데, 집중력이 흐트러져 잠시 글쓰기로 머리 식힐 겸 지난번에 떠올린 생각들을 정리한다. 오랜만에 아니,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나 카공을 했는데, 밥 먹는 시간과 카페 찾으러 돌아다닌 시간 때문에 기대했던 것보다 집중한 시간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래도 맨날 혼자서만 공부하다 누군가를 앞에 둬 딴짓을 하기에는 적당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니 자연스레 집중력이 높아진 덕에 공부 순도는 높아서 괜찮았던 것 같다. 같이 다니는 사람 없이 혼자서만 공부하는 나에게 이런 낯선 상황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
도중에 한 번 화장실에 갔다 온 후 잠깐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진행하는 사업(?)에 관해 몇 가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지, 매출은 어떻게 나오는지,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걸 구상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능력은 어떻게 터득했는지 등 내가 경험해보지 않아 감각이 아예 없는 영역의 일들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내가 개발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평가할만한 인사이트 자체가 전무해 약간 인터뷰하듯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에 관한 원론적인 질문 위주였다. 롤로 따지면 거의 라인에 오는 미니언을 어떻게 먹어야 하냐는 정도의 질문이지 않았을까.
내가 올해 여름 방학 도중에 미국에 돌아왔을 때랑 얼마 차이가 안 났던 걸 생각하면, 그가 이곳에 온 지도 대략 5개월 정도 지난 건데, 그 사이에 이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게 들면서, 동시에 그 분야에 완전히 문외한인지라 그의 일에 딱히 도움을 못 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막상 내 분야에서 그와 비슷한 수준에 있는가 스스로 되물으면 또 그것도 아닌 어딘가 아쉬운 현재 내 상황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되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요즘 든 생각이라면, 기술이나 지식의 전문성은 내가 어떤 수준의 질문을 할 수 있고, 역으로 나에게 그런 질문들이 던져질 때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질문에 대한 답이 단지 공식에 숫자를 끼워 넣거나 몇 문장의 생각을 말하는 걸 넘어 다양한 상황마다 나만의 틀을 가지고 해석하고, 그에 따른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틀이 충분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와 함께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이 나오고, 또 그걸 답하면서 나만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동시에 견고해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용이해진 세상에서, 내가 가진 틀을 넓히는 건 그 안에서 나온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요즘 밀리는 과제와 시험의 질문의 파도에만 휩쓸린 채, 정작 수평선 너머에 있을 내가 헤쳐나가야 할 세상의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사이트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에너지라는 큰 테마에 있어서 나만의 생각하는 틀이 갖춰지는 속도가 느리다는 문제의식은 나에게 학교 공부를 넘어 존재하는 여러 에너지 관련 이슈들에 관한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토록 구체적이면서도 방대하고, 또 자세한 노력의 방향성은 어떻게 찾았냐고 물으니,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모호하면서도 가장 명확한 답이었다. 사실 집에서 짧게 신세 지는 동안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기에 그런 답이 나올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보면 볼수록 나와 가까운 사람이 연속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이뤄낸 하나의 결과를 통해 실행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실감한다. 내가 질문하기도 이전에 그 문제들을 이미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 나 역시 내 분야에서만큼은 뒤지지 않아야겠다는 자극이 밀려오며, 그동안 불확실한 야망에 반해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노력으로 인해 머릿속을 헤집던 막연한 불안이 잠깐이나마 걷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