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훈련 동안 여행 생각만 하다 뜬금없이 든 생각
혹한기 훈련, 포수석 안에서 조준경을 통해 8배 확대된 하늘만 보느라 도저히 바깥 풍경을 보지 못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부의 진동까지 더해지니, 잠들지 않고서는 그 지루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시계가 없어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어딘지 모르는 목적지로 향했다, 점심때쯤에야 도착한 숙영지는 버려진 지 오래된 건지 연병장 사열대 간판의 한자가 흐려져 읽지 못할 정도였고, 주변에도 내부가 비어있는 폐건물들뿐이었다. 전차가 10대 다 들어가도 공간이 충분히 남을 정도의 광활한 연병장,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용 용도를 알 수 없는, 숙영지로 쓰일 작은 공터.
훈련 하루 전 중대 예비병력을 전부 끌고 가 숙영지의 절반 정도를 제설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날이 따뜻해지면서 제설을 한 곳의 얼음이 녹아 흙에 물이 스며들어 걸어 다니면 신발의 밑창은 전부 잠길 정도로 질퍽해졌다. 도저히 텐트를 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어서, 결국 전날의 제설작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걸 무릅쓰고, 옆에 눈 덮인 땅 위에 방수포를 깔고 텐트를 쳤다. 사실 날씨가 따뜻해진다는 걸 조금만 알고 있더라면 이런 헛수고 따위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불만이 생기려다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를 다시 한번 깨달으니 금세 관뒀다.
텐트를 치려고 눈 위를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신발이 젖었고, 날이 점점 추워지자 얼어붙어 한기인줄 알았던 발가락 끝 감촉이 고통으로 전환됐다. 신발을 벗고 말리거나 양말을 갈아 신기에는 공간도 없고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지 않아 어떻게든 발을 녹여보려고 신발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고, 결국 저녁식사 때 지휘소에 들어가 등유난로 앞에 발을 갖다 대서야 겨우 녹일 수 있었다. 작년도 그렇고 혹한기 훈련처럼 추운 날에 훈련을 하면 발에는 좀처럼 열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는 한다. 마치 사람 마음 같다고나 할까. 한 번 차가워지면 열이 쉽게 나지 않는 발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관계에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는 게,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거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불가역적인 반응은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엔트로피 법칙이 현실의 인간관계 속에서도 작용하는 것 같다.
숙영지 편성을 마치고 난 후, 저녁으로 다들 혐오식품 취급하는 청춘전투와, 김치맛이 아니어서 2프로 아쉬운 왕뚜껑을 먹고, 곧바로 야간 주특기 훈련을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혹한기가 군 생활 사실상 마지막 훈련인데, 전차포 사격도 안 나가는 거 이런 사소한 것들은 이젠 좀 빼주면 안 되나 속으로 투정 부리던 와중에, 날도 어두워졌겠다 오랜만에 별을 보고 싶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1년 넘게 봐와서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인제의 밤하늘은 도시의 야경이 제공하지 못하는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가로등, 건물 조명 등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우주적 규모의 조명을 가진 밤하늘의, 마치 축제 음식 부스처럼 다양한 크기와 밝기의 별들이 모여 만들어낸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한눈에 보는 영광을 누린다.
모두들 신기하다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건 무슨 별자리인지, 저 멀리 움직이는 빛은 별똥별인지, 아니면 비행기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하늘의 풍경을 공유한다. 공기도 깨끗한데 거기다가 주변에 빛이라고는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월광과, 산 너머에서 나온 듯한 불빛들 뿐이라 별을 향하는 시야를 가릴만한 게 거의 없어 평소보다 더 많은 별들의 가시광선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낮에는 태양이라는 거대한 항성의 존재감에 가려 보지 못하다가, 밤이 되어서 그가 모습을 감춘 후 찾아온 밝음의 결핍 속에 주어지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빛의 예술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같은 별 이더라도 태양을 찾아서 공기 좋은 곳으로 가진 않으니까... 단순한 풍족함보다도 우리에게 더 많은 만족감을 주는 건 부족함 속에서도 찾아오는 작은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에게 그런 것들이 무엇이 있으려나.
문득 저 하늘에 별이 정확하게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져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세봤다. 그러나 도무지 셀 수도, 두 눈으로 전부 담아낼 수도 없는 저 수많은 별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우주의 광활함과 무한함에 압도되어 ‘와 하늘에 별이 정말 많다’는 말과 함께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세려고 해도 셀 수 없고, 셀 수 있다 하더라도 다 세기 전에 태양의 광채가 모든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라는 건 필연적이었다. 심지어 가시광선의 형태로 나타나 내가 볼 수 있는 별 이외에도, 적외선, 자외선, 방사선 등 수많은 파장의 형태로도 별은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기에, 우리 은하에만 존재하는 수천억 개의 별조차 제대로 세어보지 못한 채 이 우주를 떠나게 되니라. 그러기에 별을 세보겠다는 작은 소망도, 점점 이어지다 보면 결국 끝없는 무의미한 욕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요즘 내 머릿속을 휘젓는 욕망에 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매 순간 새롭게 떠오르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 저 하늘 위에 떠있는 별의 수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세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짓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주체 없는 욕망에 대한 갈망이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최근 욕망의 굴레에 빠져 인생의 방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픈 내 모습이 더 애절하게 다가온다.
여행 준비, 전역 이후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에 최대한 의미 있고 알찬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 3달 넘게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부분에서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 가기 전에 미리 뭘 사둬야 하는지, 어디를 가면 좋은지, 어떤 꿀팁이 있는지 찾아보면서, 관광지를 넘어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여행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가보기도 전에 여행지에 점점 동화되어 가고 있는 건가. 여행 준비도 일종의 여행이라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여행이라도 되는 것 마냥 내 모든 열정과 관심을 쏟아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지만, 정작 여권 유효기간 문제 때문에 가장 중요한 비행기 티켓은 못 끊고 있다. 여권을 발급받더라도 일러야 3월 초이니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안고 떠난 채 여행을 준비하게 됐다. 일말의 변수와 불확실성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하고, 어떻게든 여행을 알차고 뜻깊게 보내려는 동시에 비용은 비용대로 적게 들이려고 하는 욕심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정신을 소모하는 상황에 피로를 느끼던 찰나, 혹한기 훈련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이, 앞으로 찾아올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울림을 줄만한 교훈을 전해오는 것 같다.
내 욕망의 끝은 어딜 향해 있을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 이상과 다른 내 상황이 불만족스럽다가도, 그 불만족의 느낌이 장차 무기력과 회의의 순간이 찾아올 때 나를 다시 이끌어줄 원동력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기에 좌절할 일은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내 욕망과 그 안에서 찾아오는 불만(족)의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다. 욕망이 곧 나를 정의하는 기준일 지도 모르니까.